(제 71 회)

제 5 장

7

(1)

 

 

꿀벌들이 앵- 앵 소리를 지르며 뙤창문밖에서 날아다녔다.

공기속에도 들크무레하고 껍진거리는 꿀물이 흘러든듯 산이며 나무며 내물이 모두 부옇게 흐려보였다.

근거지병원의 입원실안은 조용했다. 실개천이 반사하는 해빛이 뙤창으로 흘러들어 천장에 현란한 무늬를 그리며 어른거렸다.

뙤창밑 대수 거두어놓은 자리에 두사람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었다.

장룡산이와 김창억이였다.

《정말 만났습니까. 그 녀자를 봤습니까?》 하고 창억은 다그쳐 물었다.

장룡산은 그가 자기 안해를 그 녀자라고 부르는 바람에 다소 아연해져서 시꺼먼 눈을 슴벅거렸다.

《봤네… 내 눈으로 봤네. 봤다뿐이겠나, 두만강가까지 내뒤에서 따라왔다니까.》

《정말입니까?》

《이거 참,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과연 꿈같은 일이군, 허-》

장룡산은 한숨같기도 하고 허거픈 웃음같기도 한 소리를 내며 창억의 무릎우에 놓인 자주색저고리에 눈길을 주었다.

입원실안은 조용했다. 환자들은 모두 소풍하러 밖으로 나갔다.

저 구석쪽에 산에서 굴러 팔을 상한 권일균이 번듯하게 누워서 한가롭게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사이벽저쪽에서는 얼마전에 룡정에서 들어왔다는 안경쟁이의사가 기침을 쿨럭거리며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창억의 얼굴은 심상치 않았다. 장룡산은 요새 큰배나무골의 유격대병원으로 자주 찾아와서 창억의 문병을 하였는데 오늘은 그가 어디서 찾아내였는지 보금이 그의 머리밑에 괴여주었던것이 분명한 저고리를 내보이며 따지고들어 이런 난감한 처지에 빠진것이다.

장룡산은 보금이를 만났던 이야기를 그가 완쾌되여 나온 다음에 하려고 생각했었다.

《다… 죄다 이야기해주십시오!》 창억은 장룡산이 무엇을 감추려는것을 밝혀내려고 눈을 번쩍거리며 다우쳐물었다.

장룡산은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나두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고 그는 벌컥 역증을 냈다. 그러자 창억은 좀 주눅이 들었다.

《내 말하지 않았어, 꼭 꿈같은 일이라구… 범을 쫓다가 놓친 포수군의 잠자리에나 깃드는 꿈같단 말이여.

모두 두만강기슭에 와서 배에 탔는데… 자네도 싣구… 허참, 모를 일이야. 보금이가 탄줄 알았는데 글쎄 어디론가 사라졌네. 물살에 배는 밀려나지… 총소리는 울려오지… 사공령감은 재촉을 하지… 별수 있나, 기다리다가 노를 젓기 시작했지. 허참, 녀자들속이란 조화먹었거던.… 솔직히 말하네만 나는 배가 안개에 묻힐 때까지 고물에 서서 목을 빼들고 찾았네.》

《제집으로 돌아갔겠지요. 지금에 와서야 제가 무슨 남편이구… 그리 귀하겠습니까. 다 잊어버렸을겝니다.… 그까짓것 나두 인젠 속이 편해지겠습니다.…》

《원, 사람이 옹졸해가지구서…》

장룡산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치떠보며 혀를 찼다.

《병원에 엎데있더니 별나게 됐군.… 누가 옷가지들을 다 찢어서 자네를 애지중지 싸주구 덮어주구 괴여줬는지, 누가 자네 가슴에 눈물을 소나기처럼 쏟았는지 알기나 알구 흰소린가, 엉?》

창억이는 머리를 싸쥐고 기여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달콤한 말루 보태지는 말아주우.…》

《뭣이 어째?》 장룡산은 왈칵 어성을 높였다.

《지성이 그랬다면 왜 가버렸겠소?》

《그래서 답답하다는게야!》

장룡산은 저도 안타까와 벌떡 일어나 방안을 거닐며 허벅다리에서 데룽거리는 목갑총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헝, 이건 꿈같은 일이야.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거던. 개판이야. 야, 창억아, 너무 속을 썩이지 말아. 네가 정 소원한다면 내 오늘 밤으루 온성으로 나가겠다. 젠장, 자루속에 넣어 둘러메오든지 가마를 빌어 태워오든지 결판을 내자. 사령관동지께 건의해보자꾸나!》

창억은 펄쩍 뛰여올랐다.

《중대장동무, 이러지 마십시오. 저때문에 또 무슨 변을 당하자구 이럽니까. 제가 이런 일로 속을 썩인다는걸 아시면 뭘로 여기겠습니까. 요전날 병원에 와서 온성에 나가 잘 싸웠다고 치하하실 때 정말 잔등에서 진땀이 흘렀습니다. 내 다시는 이런 시시한 일로 속을 썩이지 않을테니 싹 그만둬주십시오. 유격대원으로서… 말하는겝니다.》

장룡산은 두손을 허리에 올리고 몸을 뒤로 젖힐사 하며 실눈을 지어 그를 내려다보더니 벙글거리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허- 과시 창억이로다! 내 님자가 이렇게 시원하게 나올줄 알았다니까. 허허허… 한데 여보게, 나두 소시적에 지내봤지만 이런 생각이란게 엉큼해놔서 안하자 맘을 먹는다구 나무판대기에 박힌 모다구처럼 쑥 뽑아지는게 아니야. 단단히 잡도리를 해서 아예 썩둑 베버려야지. 좋기는 애초에 들크무레한 생각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게거던!》

《중대장동무, 걱정마십시오!》

《됐다!》

장룡산은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고는 그의 옆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더니 들고온 보꾸레미를 풀어 음식들을 내놓았다. 그는 량수천자와 백초구, 라자구 어디를 돌아보나 왜군들이 득실거리고 사처에서 총포성이 울려오는데 이제 큰 싸움이 붙을게라고 하며 어서 나와서 같이 본때를 보이자고 하면서 유격대식당에서 보내온 절편떡을 창억에게 련거퍼 권하고 자기도 먹었다.

창억은 장룡산이 가버리자 그의 텁텁하고 덜퉁해보이면서도 진정이 밴 사랑에 가슴이 뻐근해져서 한동안 움직일줄 모르고 앉아있었다. 그가 곁에 있을 때에는 방안에 활기와 생기가 가득차는듯 했으나 지금에는 모든것이 허전하고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는 음식들을 보자기에 도로 싸서 머리맡에 밀어놓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꿀벌 두마리가 날아들어 앵- 앵- 하고 야릇한 소리로 울며 천장밑을 날아돌았다.

창억은 크게 뜬 눈을 까딱 움직이지 않고 천장의 한점을 응시했다.

그는 담가에 실려 유격대병원에 들어온 날 상처에서 붕대를 풀며 의사가 누구인가와 주고받는 말을 몽롱한 의식속에서 들었었다.

그것은 어떤 녀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의 새옷을 다 찢어서 상처를 싸매준 녀자에 대하여 의사는 칭찬의 말을 했다. 그러나 창억은 캐여물을 힘조차 없었다. 그는 인차 의식이 몽롱해졌으나 구름바다가 흐르는 밤하늘에서 순간적으로 비치다가 사라진 별빛에 대한 인상처럼 그 이야기는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며칠후 지팽이에 의지하여 밖으로 나갔다가 병원앞에 높이 늘인 바줄에 깨끗이 빨아넌 붕대오리들이 바람을 안고 가볍게 날리는것을 보았다. 붕대오리들과 나란히 색색의 천쪼박지들이 바람에 날리고있었다. 창억은 거기로 다가갔다. 그것은 녀자의 저고리안이며 치마자락, 저고리고름들이였다. 창억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부드럽고 매끈한 저고리고름을 만져보았다. 자기가 의식을 잃고있는 사이에 살뜰한 손길이 몸을 스쳐지나간것이 분명하다.

그 녀자는 누구일가? 창억이는 연분의 일깨움이였던지 그 녀자를 온몸으로 느끼고있었으나 차마 그렇게 생각할 렴치가 없는듯, 그러다가 아니면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가 더 무서운듯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도 부르지 못하였다. 그는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러다가 오늘 장룡산이 오자 단도직입적으로 따져물었던것이다.

(어째서 돌아가버렸는가?)

창억이는 몇십, 몇백번 이 물음을 되풀이하며 자기 가슴을 짓이겼다. 난생처음 이런 무시와 배척을 당한다고 생각한 그는 훼손된 자존심때문에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뚤렁뚤렁 떨어져내리는것 같았다.

그리고 보금이가 이제는 보고싶으면 오고 싫으면 물러가는 호락호락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 밖에 서있는 존재로 느껴지며 허망하기도 하고 분한 생각도 들었다.

그는 환자들이 다 잠든 깊은 밤중에도 끙끙 앓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뒤채기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앉아 눈에 불을 켜고 허공이며 문쪽을 바라보다가는 도로 쓰러지기도 했다. 지금에야 보금의 진가가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고 못견디게 그리워지는것은 무슨 까닭일가?

전에없이 보금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것은 이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마음씨 곱고 보기좋게 수수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어디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녀성이였다.

무서운 가책이 엄습해들었다. 자기와 보금이사이에 있었던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것은 어느날 밤 자기를 뒤쫓아온 보금이를 다른 녀자인 박현숙이 보는 앞에서 윽박질러 느티나무밑으로 끌고갔던 일이다. 왜 사람을 그렇게 업신여겼던가?… 눈물이 번들거리던 보금의 얼굴… 당신 일만 잘된다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일없다고 눈물을 머금고 속삭이던 보금이… 물동이를 떨구고 마당복판에 쓰러졌던 그… 지난 생활의 갈피갈피에 피자욱처럼 찍힌 그 얼룩들은 그를 단죄하는 론거로 되여 눈앞에 언뜻거렸다.

(아, 무슨 정신에, 무슨 미친바람이 들어 그따위로 놀았던가? 내가 그처럼 가혹하고 그처럼 우직한 놈팽이였던가? 제 안해도 그렇게 몰라봤으니까 내가 천대받고 압박받는 무산민중의 심정이야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창억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보금의 소행이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가 짧게 생각하고 자기와의 깊은 인연을 제 혼자서, 제멋대로 앙갚음하듯이 끊어버린것이 아닌가싶으면서 은근한 분노가 가슴밑창에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자기의 의지 밖에 있어 자기로서는 어쩔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 안타깝게 끓어번졌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