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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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무슨 소식이 실렸느냐?》

《관보》를 읽어주고있는 아정이에게 민비가 지루한 눈길을 쳐들며 시진하게 물었다.

아정이가 《관보》를 훑어보며 대답했다.

《동학군과의 싸움소식이 있소옵니다.》

《그걸 읽어라.》

《네.》

아정은 억양을 돋구어 《관보》를 읽었다.

《공주대전에 대한 관군의 선봉장 리규태의 보고입니다.

<아, 수만이나 되는 비도들이 련련 40~50리에 걸쳐 두루 둘러싸고 길이 있으면 길을 싸워서 빼앗고 봉우리가 있으면 그를 싸워서 차지하려고 성동격서하고 섬좌홀우…>》

《응?》

《저 왼쪽에서 번쩍 나타났다가 바른쪽에서 훌쩍 없어지는것을 말하옵니다.》

《계속해라.》

《<섬좌홀우하면서 기발을 휘날리고 북을 울리며 생사를 돌보지 않고 앞을 다투어 기여오르는것은 어찌된 일인가. 적정을 말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하다.… 산마루에 느런히 서서 일시에 총을 쏘고 또 동으로 올라 총을 쏘았는데 이렇게 하기를 40~50차나 하니 시체가 쌓인것이 산에 가득하다.…>》

《그만 읽어라.》

민비가 괴로운듯 낯을 찌프렸다.

생각같아서는 동학군을 불러올려 얄미운 왜인들을 싹 쓸어버렸으면 좋을상싶은데 그들이 임오군란때처럼 자기까지 없애려 할가봐 우유부단하게 강건너 불보듯 하고있는 민비였다.

이윽하여 민비가 호기심어린 기색으로 아정이에게 물었다.

《아정아, 너 저 동학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도들이옵니다.》

아정이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대꾸했다.

민비가 자못 언짢아하며 쌀쌀하게 내뱉았다.

《머리를 들어라.》

고개를 드는 아정이에게 민비가 진정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거짓없는 대답을 듣고싶어 그러니 네 본심을 말하거라.》

아정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어렸다.

《중전마마, 쇤네는 그들을 애국자들이라 생각하옵니다.》

《무어라?!》

민비가 깜짝 놀라 어성을 높였다. 두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조아린 아정은 부복하여 아뢰였다.

《쇤네는 마마의 분부대로 이실직고하였을뿐이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잠시후 한숨을 내쉰 민비가 부드럽게 일렀다.

《바로 앉거라.》

아정은 허리를 펴고 앉았다.

《그들을 왜 애국자들이라 생각하느냐?》

《마마께옵서 진실만을 요구하시니 쇤네는 진심만을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중전마마, 전봉준은 우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기 위해 토왜구국의 기치밑에 농민군을 일으켰소옵니다. 어이하여 그의 이 토왜구국의 기치아래에 동학군뿐이 아닌 수많은 농사군, 쟁인바치, 아전, 유생, 군사들이 떨쳐나섰겠소옵니까. 그것은 바로 왜적들을 물리쳐야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할수 있다는것을 그들이 깨달았기때문이 아니겠소옵니까. 그들에게도 다 부모처자들이 있건만 한집안의 일보다 나라일이 더 중하다고 여기였기에 식솔도 제 목숨도 돌보지 않고 왜놈들과의 싸움길에 나선것이옵니다. 하오니 그들이야말로 애국자들이요 충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이렇게 말하는 아정의 눈굽에 어느덧 비감의 눈물이 그렁거렸다.

민비는 저도 비감에 잠겨 벽의 한점만 그윽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아정이에게 고개를 돌린 민비는 은근스럽게 물었다.

《참, 너 좋아하는 병정총각이 어데 있느냐? 혹 그 애도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느냐?》

아정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서 말해라.》

《생사를… 모르옵니다.》

불시에 슬픔에 잠긴 아정이가 이렇게 떠듬거리자 민비도 걱정스럽게 뇌였다.

《장위영소속의 교도중대에 있다고 했더라?》

《그러하옵니다, 마마.》

《음.》

민비는 생각에 잠겼다. 이 순간 그의 뇌리에는 문득 홍계훈이가 떠올랐다. 한갖 무예별감이던 그는 자기의 심복이 되여 임오군란시에 민비, 자기의 눈과 귀가 되였으며 수족노릇을 하였고 지어 자기의 생명까지 구원해주지 않았던가. 아정이도 그렇지만 엄아무개라는 그 젊은이도 잘 구슬리면 자기의 손발노릇을 할것이 아닌가. 더우기 지금처럼 나라의 형세가 뒤숭숭한 때일수록 자기의 측근에 자신에게 충실한 젊은이들이 많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민비는 합문밖에 대고 소리쳤다.

《게 누구 있느냐?》

합문밖에서 정중하게 아뢰는 조상궁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장 군무대신 조희연이를 들라 해라.》

《알아모셨소옵니다.》

급히 옮기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두 궁녀가 새 청동화로불을 민비곁에 맞들어다놓았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급히 달려온 조희연이가 민비앞에 부복했다.

《소신 조희연이 문안드리오.》

평소에 친일파인 군무대신 조희연을 밉광스럽게 보고있던 민비의 안색은 랭랭했다.

《대감, 한가지 당부할게 있어 불렀소.》

《분부하십시오, 전하.》

《지금 공주에 내려가있는 교도중대에…》 민비는 말하다 말고 아정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뭐냐?》

아정은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대꾸했다.

《참위 엄병무라 하옵니다.》

민비는 조희연에게 다시 눈길을 던졌다.

《교도중대의 참위 엄병무를 곧 상경시켜 입궐하도록 하세요.》

《예잇.》

제법 무인답게 대척한 조희연은 몸을 일으켜 복도를 걸어가며 혼자소리로 되뇌였다.

《엄병무라… 참위라지…》

그는 영문을 알수 없어 고개를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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