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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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집이 피둥피둥하고 낯색이 허여멀쑥한 군무대신 조희연은 자기 방에서 엄병무를 희색이 만면하여 맞아주었다.

《자네가 엄병무인가?》

《그렇습니다, 대감님.》

병무는 차렷자세를 취하고 대답했다.

《음.》

흡족한 기색으로 엄병무를 다시한번 훑어보던 조희연은 중궁(민비)과 어떻게 되는 사이인가고 은근스럽게 물었다.

《예?!》

놀란 병무는 얼떠름해졌다.

《놀라긴… 친척벌이라도 되는가 말이네.》

《아닙니다.》

《그래?…》

조희연은 저도 이상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병무가 도리여 의아쩍게 물었다.

《자네를 중궁께서 상경시키라는 어명을 내리셨네.》

《그래요?!》 병무는 놀라마지 않았다. 《중전마마께서 소인을 어찌 아시고?…》

《글쎄지… 무슨 감투끈인지 모르겠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던 조희연은 다시 병무에게 눈길을 주며 엄숙하게 일렀다.

《자네 이제 곧 대궐로 가게. 중궁께서 자네를 기다리고계시네.》

《예?!》

병무는 해가 꺼지고 하늘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은것만치나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어제까지 산속에서 추위에 떨며 목숨의 위험을 시시각각으로 느끼던 자기가 오늘은 삼천리강토와 천여만생령우에 군림한 지엄하옵고 지존하옵신 왕비전하를 알현하게 되다니. 더우기 그분이 자기를 기다리고계신다지 않는가. 엄병무는 자기의 명운이 이렇게도 뒤바뀔수 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중궁께서 자네를 만나시거들랑 내 말도 잘해주게.》

조희연이가 의미심장하게 당부하는 소리였다.

《존귀하신 전하께서 저같은 놈을 어찌…》

《사람일을 어찌 알겠나?》

병무를 건너다보며 부러웁게 중얼거리던 조희연이가 갑자기 생각난듯 말을 이었다.

《참, 자네를 부위(중위)로 승격시켰네. 그리고 며칠 말미를 줄테니 집에서 푹 쉬고 궁성시위대에 출사하게나.》

병무는 또다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사람, 내 말을 듣나?》

《예.》하고 대답한 병무는 이어 허리를 꾸벅했다. 《대감님, 고맙습니다.》

화는 쌍으로 오지만 복은 외톨로 온다더니 웬걸, 오늘 자기에게 몇가지 복이 아름벌게 차례지는가. 그것도 이만저만한 복일세나 말이지.

절을 하고 물러서는 병무의 등뒤에서 조희연의 말소리가 또 울렸다.

《말을 탈줄 알지? 대궐로 내 말을 타고 가게.》

병무는 흥분과 감격과 긴장으로 어떻게 군무대신의 말을 타고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까지 오게 되였는지 자신도 몰랐다. 궁성의 파수군들은 군말없이 그를 통과시켰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병무 자기를 부러워하는 기색이 력력했다. 경복궁의 제일 북쪽 안침진곳에 위치한 민비의 침소인 건청궁의 대문밖에서 늙수그레한 조상궁이 그를 맞아주었다. 아마도 군무대신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던 참인것 같았다.

그의 안내를 받아 낯익은 건청궁의 대문안으로 들어선 병무는 뜨락을 지나고 섬돌계단을 올라 비단휘장을 드리운 긴 복도를 지나서 민비의 편전에 들어섰다. 안쪽 불로장수도가 수놓아져있는 8폭병풍앞의 보료우에 화려한 옷차림에 낯색이 류달리 하얀 아름다운 녀인이 앉아있었다. 그에게 얼핏 눈길을 준 병무는 그가 바로 국모로 불리우는 중전마마 민비란것을 알아차렸다.

곁에서 조상궁이 낮은 소리로 귀뜀했다.

《중전마마옵니다.》

뜨락으로 걸어오며 조상궁이 일러준대로 방바닥에 넙죽 엎드린 병무는 이마를 조아리며 떨리는 소리로 아뢰였다.

《중전마마, 소신 문안드리옵니다.》

병무는 목소리뿐만아니라 온몸이 떨렸다.

챙챙하면서도 부드러운 민비의 목소리가 부복한 병무의 앞에서 울렸다.

《편히 앉거라.》

병무는 차마 민비와 얼굴을 맞대고 앉을수가 없어 부복한대로 엎드려있었다.

《편히 앉으라지 않느냐.》

민비의 음성이 다시 울리고 곁에서 일러주는 조상궁의 목소리도 들렸다.

《어서 일어나 앉아요, 어서.》

그제야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앉은 병무는 차마 지엄한 민비를 마주볼수가 없어 눈길을 떨구었다.

친절하게 묻는 민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엄병무냐?》

《예.》

병무는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참위라지?》

《예.》

《그러니 군교로구나?》

《예, 그러하옵니다.》

《거기 싸움판의 형세는 어떠하냐?》

《…》

병무는 어떻게 답변했으면 좋을지 몰라 대답을 망설였다.

《우리켠이 몰리느냐?》

《우리라면?…》

병무는 중전마마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묻는지 몰라 대답을 여전히 망설였다.

《글쎄다. 우리켠이라고 하면 관군일가? 일본군일가? 아니면 동학군일가? 나도 모르겠구나, 호호…》

민비는 자가당착에 빠진듯 유쾌한 웃음소리를 뿜어던졌다.

이윽하여 정색한 민비는 병무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내싸게 생긴 네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렇다고 내가 너를 붙들고 있을수야 없지.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말한 민비는 조상궁에게 눈길을 던졌다.

《조상궁.》

조상궁이 얼른 대척했다.

《마마, 알아모셨소옵니다.》

그는 병무를 건너다보며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저도 몸을 일으킨 병무는 조상궁이 일러준대로 뒤걸음질로 민비의 앞을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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