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9
(3)
으스름달밤이였다.
백여명의 마군(기마대)을 야산뒤에 은페시킨 태봉이는 왜놈군대들의 천막이 줄느런히 전개되여있는 곳으로 오십여명의 농민군기습조원들을 이끌고 살금살금 접근해갔다.
얼비치는 달빛속에 왜놈들의 천막이며 보초를 서고있는 놈들, 말뚝들에 고삐를 매여놓은 수백필의 군마들이 우렷이 보였다. 동지추위때라 한겨울의 날씨가 여간만 맵짜지 않아 왜놈보초들은 화토불을 피워놓고도 덜덜 떨고있었다. 그런데 간밤에 내린 싸락눈이 벌판이며 논뚝이며 모든것을 하얗게 덮고있어 흰옷입은 농민군들의 위장에 제격이였다. 기습조원들은 거의 모두가 태봉이또래의 혈기왕성하고 겁을 모르는 젊은이들이였다. 오늘밤의 싸움은 기습전이라 적들과 단병접전을 해야 하므로 그들이 휴대한 무기는 총보다 칼이나 창과 같은 도창무기였다.
그리고 그들은 가슴에 폭약꾸레미를 하나씩 안고있었다. 기습조원들은 두명이 한조가 되여 자기들이 분담받은 천막을 향해 기여갔다. 밤새 추위에 떨다가 새벽녘에야 굳잠에 들었는지 천막안은 잠잠했고 보초놈들도 화토불앞에서 끄덕끄덕 졸고있었다.
한편 태봉이는 먼저 날랜 젊은이 몇을 데리고 왜놈군마들의 다리사이로 살살 빠져다니며 안장끈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이렇게 전봉준대장이 시킨대로 만단의 준비를 끝낸 태봉이는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여 뚜껑을 열었다. 이 회중시계도 전봉준이가 그에게 준것이였다. 시계바늘은 5시반을 가리키고있었다.
아직 시간이 일렀다. 동틀무렵인 갓밝이때에 놈들을 들이쳐야 추격하는 왜놈들을 뒤에 달고 농민군이 매복해있는 곳까지 유인할수 있었던것이다.
드디여 시간이 되였다. 희붐히 밝아오는 동녘하늘에서 유난히 크고 밝은 새별이 등대처럼 빛나고있었다.
태봉이는 주머니에서 왜성냥을 꺼냈다. 곁에 엎디여있던 쇠불이가 폭약심지를 태봉이에게 내밀면서 그 무슨 싱갱이를 하듯 나직이 수군거렸다.
《불은 자네가 붙여두 던지는건 내가 던지겠네.》
태봉은 긴박한 속에서도 웃음이 나갔다. 한것은 쇠불이의 태도도 우스웠지만 보다는 《천우협》의 왜놈들이 가져다준 폭약에 왜놈들의 성냥으로 불을 붙여 왜놈들을 통쾌하게 몰살시키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어쩐셈인지 성냥가치가 세개씩이나 부러져나가도록 불이 일지 않았다.
《왜놈들 물건짝이란게 워낙 그런 가짜투성이라네. 차라리 내 부시로 불을 붙이세.》
이렇게 두덜거린 쇠불이가 주머니를 뒤지느라 부스럭거릴 때 확 하고 성냥가치에 불이 당겼다.
태봉은 얼른 성냥불을 쇠불이가 두손으로 받들고있는 폭약의 심지에 가져다댔다. 쏴 하며 불이 달린 심지가 타들어갔다.
벌떡 몸을 일으킨 쇠불이가 좀 덤비면서 그러나 있는 힘껏 폭약을 왜놈군대들의 천막을 향해 뿌려던졌다.
《꽝!》
별안간 눈부신 섬광과 함께 뢰성벽력같은 폭음이 어둠과 정적을 깨뜨리며 울려퍼졌다.
거의 동시에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다른 천막들에서도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앉은 벼락이 아니라 누운 벼락을 맞고 혼비백산하여 지르는 왜병들의 비명소리, 장교들의 악청, 폭음소리, 총소리로 왜놈군대들의 숙영지는 순식간에 수라장, 란장판이 되였다.
군마곁으로 뛰여간 왜놈기마병들이 안장우에 올라앉자마자 안장과 함께 땅에 나동그라지는 놈, 등자에 한쪽발만 꿴채 말에 질질 끌려가는 놈으로 기마병들속에서도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때 야산뒤에 숨어있던 농민군의 마군이 칼과 창을 휘두르며 적진속으로 뛰여들었다. 비호같이 적진속에서 종횡무진하는 그들의 눈빛은 어둠속에서 불을 뿜는 호랑이눈빛 한가지였다. 왜적들을 무자비하게 치고 찌르는 그 용맹스런 모습은 참으로 통쾌하고 장쾌하였다.
왜놈들의 숙영지일대는 어느덧 죽어너부러진 놈들의 더러운 시체로 한벌 쭉 깔렸다.
태봉은 농민군들에게 철수를 알리는 징소리를 크게 울렸다. 기습전에서 다대한 전과를 올린 농민군들이 전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아닌밤중의 홍두깨격으로 농민군의 불의의 기습으로 얼혼이 빠져있던 《대본영》직속 후비보병 제19대대장 미나미소좌는 이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악에 받쳐 고아댔다.
《추격하라! 모조리 죽이라!》
태봉이는 철수하면서 농민군기습조와 기마대를 점검해보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누군가 태봉이곁으로 헐썩거리며 뛰여왔다. 쇠불이였다. 그는 어깨에 메고온것을 벗겨내려 태봉이앞에 내대면서 싱글벙글하며 자랑했다.
《이것 보게. 왜놈들 련발총일세.》
《아니, 그건 언제?》
태봉은 진정 놀랐다. 그 혼잡통속에서 언제 이 귀한것을 다 구했단말인가.
《농사군의 속궁냥은 천길물속보다 더 깊다네.》
《아저씨, 용수다. 이제부대에 가면 전대장께서 크게 칭찬하실거웨다.》
《아니, 칭찬은 자네가 받아야 하네. 오늘 보니 자네도 큰 대장감일세.》
태봉이를 바라다보는 쇠불의 얼굴에는 감동과 선망의 기색이 짙게 어려있었다.
천태봉의 기습조는 추격하는 왜병들을 골짜기가 을개살개한 농민군매복지역으로 유인하였다. 매복조에 걸린 왜놈들은 또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후비보병 제19대대장 미나미소좌는 이날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