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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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가 친솔하는 유격부대의 두만강국경지대와 조선국내에로의 진출이 우리 국제당일군들속에 큰 충격을 준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여기에 와서 알아보니 조선국내의 왕재산에 나가 회의까지 하였다.)

그러나 일부 동지들은 이것을 혁명의 국제주의적의무를 소홀히 하는 민족주의적편향이 아닌가 해서 경솔하게 의문을 가지였으며 또 혹자는 국제당이 내놓은 1국1당제원칙에 대한 위반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이런 반향에 대하여 김일성동지는 어떠한 립장을 취하고있는가?

우선 김일성동지는 분격하고있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이다. 어느 누구도 조선사람을 대신하여 조선혁명을 해줄수 없다.

국제당이나 이웃나라 혁명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지금 강도 일본제국주의는 만주를 강점하고 중국본토에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있으며 몽고와 쏘련의 씨비리평원을 넘겨다보며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있다. 일제에 의하여 도발된 침략전쟁의 불길은 대륙으로 휩쓸어들어가고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 유격대가 무장투쟁을 조선국내에로 확대하는것은 일제침략무력의 배후를 타격하는것으로써 놈들의 대륙침략에 치명적인 난관을 조성한다.

그렇게 되면 이웃나라들의 혁명에도 유리한 국면이 열릴것이다.

우리는 조선혁명과 함께 바로 이것을 생각하며 왕재산으로 나갔다. 이 엄연한 리치, 이 전략적가능성을 보지 못하는것은 정치적근시안이다. 민족배타주의, 좌경기회주의의 열광에 리성이 흐려진 사람들만이 이 모든것을 보지 못한다.

조선혁명은 세계혁명의 한 고리이다.

조선혁명을 잘하는것은 곧 세계혁명에 이바지하는것이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혁명을 통하여 세계혁명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을 하는것은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과는 관계없는 문제이다.

김일성동지는 이렇게 주장하고있다.

나는 그의 강철의 론리앞에서 탄복하였다. 나는 그의 사상에 완전히 공감하였다.

내가 여기로 오게 된 기본목적은 국제파시즘의 대두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견해를 들어보자는데 있었다.

나의 이 목적은 달성되였다고 생각한다.

김일성동지는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파시즘의 정치리념자체에 그들의 패망의 숙명적인 불가피성이 배태되여있다고 보고있다.

그는 파시스트들의 극단적인 개인독재의식과 배타주의를 념두에 두고있다.

모든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정견, 신앙, 민족별의 차이를 불문하고 각계각층 각파의 정치력량들과 인민대중을 파시즘을 반대하는 하나의 전선에 결속하기만 하면 국제파시즘을 능히 타승할수 있다는것이 김일성동지의 주장이다.

여기 유격근거지에서는 그것이 벌써 산 현실로 구체화되고있다. 여기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투쟁, 인민혁명정부로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유격근거지주변의 광활한 지역에 반유격구를 꾸리기 위한 투쟁… 이 모든것이 다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력량들과 인민대중을 하나의 반일통일전선에 묶어세우는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중국민족주의군대인 구국군과도 련합전선을 결성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대책을 취하고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유격근거지의 산 현실은 국제파시즘을 반대하는 전략과 전술문제에서도 생동한 모범을 보여주고있다. 아직 갓 피여난 싹에 지나지 않지만 이 모범은 파시즘을 반대하는 하나의 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새로운 사상을 시사해주고있다. 이 사상은 국제파시즘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국제적전략으로 되여야 한다고 나는 다시금 강조하고싶다.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발견이다.

때문에 나는 아래의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국제당 모스크바뷰로에 제기하고저 한다.

첫째, 통보교환사업을 개선강화하여 두만강연안유격근거지들에서의 혁명실천경험과 성과들을 널리 소개선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국제당은 조선공산주의운동내에 남아있는 종파적경향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이며 그 청산을 돕기 위하여 과단성있는 조치를 취할것이다. 급선무로 국제당의 모든 부서들과 개별적인사들은 종파적 그루빠나 인물들과의 일체 공식적, 비공식적련계를 끊어버리며 오직 김일성동지가 령도하는 새로운 공산주의혁명력량에만 지지나 련대성, 적극적인 성원을 보낼것이다.

지금 내 가슴은 김일성동지에 대한 흠모심에 가득차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그와 퍼그나 오랜 시일을 같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실무적인 보고에서 그의 인품의 전모를 생생하게 재현할수는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만 인상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던 몇가지 점에 대하여서만 말하려고 한다.

그는 유격근거지의 실태에 대하여 중상적으로 써보낸 《통보자료》들과 무기명서한의 필자에 대하여 나에게 묻지 않았다. 범상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그것이 누구인가고 집요하게 파고들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까지 단 한마디도 그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있다.

그는 처음에 근거지의 실태에 대하여 자신이 나서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근거지를 개방하였다. 내가 제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판단하도록 배려하여주었다. 그다음에 나와 마주앉았다. 그는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하여 지어는 무엄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대하여서조차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하여주었다.

나는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담화하는 과정에 그들중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파악하고 그에 공명하기에 앞서 그의 인격에 먼저 감화되여 다시말하면 그가 베푸는 사랑에 감동되여 그를 따르게 되였으며 그다음에 그의 사상으로 점차 무장되면서 혁명가로 자라났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근거지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부녀회원으로 일하는 한 녀성과 만나 김일성동지가 그와 그의 가정을 보살펴준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었다. 그의 남편도, 시아버지도 모두 김일성동지의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새 인간으로 소생되여 혁명의 길에 나섰다. 그들이 어떤 풍운속에서나 은인인 김일성동지를 배반할수 있겠는가? 나는 없다고 확신하게 되였다. 김일성동지가 그처럼 짧은 기간에 수백만민중을 쟁취할수 있은 비결의 하나는 바로 인민대중에 대한 무궁무진한 사랑이다.

낡은 사회에서 제일 압박받고 천대받는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가장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근로민중의 아픔과 괴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의 심혼에서 우러나오는 이 심오한 사랑은 그 깊이나 크기에서 어느 누구도 모방하거나 가식으로나마 흉내낼수조차 없는것이다. 그의 초인간적인 정력적활동의 원동력은 바로 무산민중에 대한 이 위대한 사랑이다!

왕청에는 지난날 좌경적과오를 범한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제거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일하고있다. 김일성동지는 그들이 혁명실천을 통하여 자신을 뉘우치며 과오를 씻기를 바라고있다. 몹쓸 사상을 털어버리고 사람을 구원하자는 심정도 가슴뜨겁게 하지만 더 놀라운것은 그의 큰 도량과 포옹력이다.

이 포옹력은 진리에 대한 확신 다시말하면 자기 사상의 견인력에 대한 확신, 자신의 위업이 필승불패한다는 자신심에서 오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는바이지만 그의 철학적신조는 확고부동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은 인간이며 제일 강력한 힘을 가지고있는것도 인간이기때문에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투쟁을 전개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이다. 이 철학적신념은 그의 인격에 체현되여있다.

그는 인민대중의 령도자로서, 인민대중을 위한 헌신적복무와 희생을 최대의 개인적행복으로 받아들이고있다는것이 그의 모든 행동과 언어와 사색에서 강렬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그에게 있어서는 령도라는 개념이 이끌고 다스리는것이 아니라 복무한다는, 헌신적으로 복무한다는 뜻으로 직접 통하여있다.

나는 그의 군사활동의 전로정을 연구고찰하였으며 그의 군사로작도 읽었다.

나는 카륜회의와 명월구회의에서 한 그의 연설들을 비롯한 많은 문건들을 연구하였으며 인민혁명정부결성과 토지개혁실시의 전과정, 기타 제반민주주의적개혁안들을 연구하였다.

나는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하여 그가 친히 창작한 수많은 문예작품들을 읽었으며 그 공연을 관람하는 행운을 지니였었다.

그는 탁월한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이며 천재적인 예술가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민대중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중추로 하여 탁월한 리성과 다감한 감성, 철저한 원칙성과 적에 대한 비타협성, 대해같은 포옹력, 강철의 의지와 비범한 예지… 이 모든 훌륭한 자질들이 결합되여 령도자로서의 그의 인격의 총체를 이루고있다.

그는 조선의 피어린 력사와 인민대중이 낸 유일무이한 걸출한 령도자이다.

동지들, 놀라지 말라!

만민이 흠모하며 따르는 김일성동지는 올해 22살의 청년장군이다.

청년장군!

청춘처럼, 봄처럼 아름답고 순결하고 생동하고 강의한 령도자!

그의 모습과 이 봄은 하나의 조화로 어울러져 나로 하여금 심각한 시정에 자꾸 잠겨들게 한다. 나에게는 근거지의 이 봄이 자연의 봄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에 새 기운을 활짝 꽃피운 혁명의 화창한 봄으로 느껴진다.

지금 흐려진 나의 눈앞에는 웬일인지 첫상봉때에 본 밭갈이를 하던 그의 모습, 그때의 모든 전경이 심각한 의미를 띤 상징적인 화폭으로 안겨온다. 그가 팔뚝에 힘을 주어 땅에 깊이 박은 보습… 그 번쩍이는 보습날우로 물결치며 뒤번져지던 검은 흙밭… 아, 김일성동지는 전인미답의 혁명의 황무지를 새 사상의 보습으로 갈아엎어나가는것이 아닌가!

반성위는 구정부사무실에서 며칠밤을 새워가면서 쓰는 일보다 자료들을 연구하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여 하나하나의 의미와 결론을 도출하여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보고가 거의 완성되여가던 어느날 밤 지쳐버린 그는 붓을 놓고 개천으로 나가 시원한 물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면을 하고 잠시 소풍을 하였다. 돌아들어오던 길에 그는 사무실문에서 안으로부터 나오는 권일균이와 마주쳤다.

권일균은 좀 당황해하는듯 하다가 인차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스름속에서 번뜩이는 그의 눈에서는 찬기운이 풍겼다. 그는 리재명회장동무를 좀 만날 일이 있어 왔댔다고 묻지 않는 말을 하였다.

반성위가 방으로 들어오니 책상우의 원고가 이상스럽게 헝클어진것 같았다. 건망증이 심한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해놓고 나간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김일성동지께 보고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채 망각속에 묻혀버렸다. 그리하여 며칠후에는 비렬한 암살의 총성이 우뢰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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