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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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태봉은 마을공지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우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있었다. 왜놈을 한놈이라도 더 죽이고 자기도 죽고싶었으나 오늘의 이 참경을 전봉준대장에게 꼭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하여 천백배의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각오가 그로 하여금 자중하게 하였다.

느티나무밑 공지로 포로된 농민군들이 바줄에 묶이여 끌려왔고 마을사람들이 총칼에 몰려왔다.

미나미가 느티나무가지에 자기 부루마의 고삐를 비끄러매고나서 끌려온 사람들앞으로 장화신은 발을 뚜벅뚜벅 울리며 다가갔다.

사람들앞에 못미처 두다리를 떡 벌리고 선 놈은 살의와 살기가 잔뜩 어린 낯짝으로 사람들을 쭉 일별하였다.

《너희들, 폭도들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것은 너희들자신이 잘 알것이다.》

그러자 묶이운채로 제일 앞줄에 서있던 고창두령이 서리발찬 눈으로 놈을 쏘아보며 뢰성같은 소리로 놈을 질타하였다.

《이 섬오랑캐 쪽발이놈들아!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나라에 기여들어 살인, 방화, 강탈을 자행하느냐! 이 천참만륙할 왜놈들아!》

미나미는 그의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좁고 메마른 상판에 야멸찬 웃음을 띠우더니 병졸들에게 말뚝을 여러개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말뚝이 다 서자 왜놈들은 말뚝마다에 농민군을 한명씩 끌어다 묶어놓았다.

미나미가 총을 들고 서있는 사병놈들에게 호령하였다.

《이제부터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창격전훈련을 시작하겠다. 목표는 너희앞에 서있는 폭도들이다. 정확히 심장을 찌르라! 손은 물론 눈길 한번 흔들려서는 안된다. 대원수 천황페하의 제국황군은 무자비성을 본분으로 한다.》

이렇게 지껄인 미나미는 몇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흰 장갑낀 한손을 쳐들고 악청을 질렀다.

《도쯔께끼! (돌격!)》

그의 구령에 따라 여러놈의 왜놈병정들이 앞으로 달려나가 말뚝에 묶이운 조선농민군의 가슴에 총창을 박았다. 그들의 가슴에서 붉은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왔다. 그런데 애숭이 왜놈병정 하나는 조선농민군의 분노에 찬 눈길에 예기가 질렸는지 총창을 떨어뜨린채 머뭇거렸다.

《칙쇼!(개자식!)》

애숭이사병에게 멸시조로 뇌까린 미나미는 뒤전에 서있는 자기 부관에게 무슨 훈시를 주었다.

잠시후에 부관은 또 한놈의 사병과 함께 어느 집 외양간에서 작두와 함께 소가죽 한장을 가져왔다.

미나미는 만또와 흰 손장갑을 벗어 부관에게 던져주고는 허리에 소가죽을 앞치마처럼 둘러감았다.

미나미는 묶이워 서있는 고창두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놈을 여기로 끌어왔!》

고창두령은 자기곁에 다가선 왜놈군대들을 어깨로 떠밀어치우더니 자기 발로 작두있는 곳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하더니 스스로 땅에 누워 작두날밑에 자기 목을 들이댔다. 그의 이런 태도에 조선사람들은 경악했고 왜놈들은 공포와 전률을 느꼈다.

고창두령은 미나미를 치떠보며 배심유하게 말했다.

《이제 네놈이 조선사람들에게 개처럼 맞아죽을 날이 올것이다.》

보다 멋진 통쾌한 장면을 상상했던 미나미는 어쩐지 일이 싱겁게, 너절하게 된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끼며 장화발로 작두날을 꾹 밟았다.

조선애국자의 붉은피가 미나미가 치마처럼 앞에 두른 소가죽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날염과도 같은 얼룩을 진하게 새겨놓았다.

《또 다른 놈!》

눈에 달이 뜬 미나미가 고아댔다.

끌려나온 젊은 농민군은 《출전가》를 부르며 고개를 쳐들고 씩씩하게 걸었다.

바다건너 왜놈무리 휩쓸어든다

축멸왜적 토왜구국 우리가 할 일이니

우리가 안하면 그 누가 하여주랴

《또 …》

사람의 피빛과 비린 피냄새에 온몸이 절어버린 미나미는 진정 야수, 흡혈귀와 같았다. 앞치마로 두른 소가죽은 물론 장화도 두손도 상판대기도 온통 피칠갑이 되였다.

소가죽앞치마를 벗어서 홱 집어던진 미나미는 맹수의 울부짖음같은 포효성을 질렀다.

《죽이라! 고마(조선)놈들을 모조리 죽이라!》

이어 조선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주민들에 대한 왜놈살인마들의 치떨리는 살륙만행이 감행되였다.

조선사람들의 몸에서 뿜어나온 붉은 피가 땅을 적시고 도랑을 지어 흘렀다.

하늘에는 피로 물든듯 붉은 저녁노을이 짙게 어렸다.

분노를 참느라 깨물고깨문 태봉이의 입술은 피투성이가 되였고 가슴속에는 분노로 응어리진 철덩어리가 무겁게 매달려있었다. 매눈같이 날이 선 눈빛을 번뜩이며 천태봉은 허리춤에서 천천히 비수 두자루를 뽑아들었다. 그는 철천의 원쑤 미나미를 향해 비수 두자루를 힘껏 뿌려던졌다. 하나는 미나미의 목줄띠에, 또 하나는 놈의 염통에 자루까지 푹 박혀 놈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죄많이 지은 조선땅에 사죄라도 하듯 두팔을 앞으로 펼치고 코를 땅에 처박은채 푹 꼬꾸라지고말았다.

느티나무우에서 미나미의 부루말등에 뛰여내린 태봉은 고삐를 끊어가지고 말을 짓쳐 내몰았다. 그를 발견한 왜놈들이 뒤늦게야 총을 쏘며 추격하였으나 날은 이미 저물었고 더우기 태봉이의 기마솜씨를 그 누가 따른단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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