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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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흩날리는 수림속으로 농민군의 잔여부대가 시진하게 걸어가고있었다. 중상자들을 태운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소리, 부상병들을 부축하며 걷는 군사들의 침울한 표정 … 그들을 울적한 기색으로 바라보던 전봉준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발자국 옮기지 않던 그는 갑자기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몸보다 마음이 더 휘청거렸다.
옆에서 따라걷던 태봉이가 그를 얼른 부축하였다.
《선생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괜찮네.》
괴롭게 대척한 전봉준은 발길을 멈추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강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산기슭이였다.
《날도 저물어가는데 오늘은 여기서 숙영하세.》
《예.》
뛰여가는 태봉이를 바라보던 전봉준은 주위에 다시금 눈길을 주었다. 저쯤 벼랑아래에 퇴락한 집이 한채 있었다. 그는 최경선이와 함께 그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절반은 허물어진 돌집이였다. 안으로 들어가는 전봉준이를 뒤따라 최경선이도 들어갔다. 벽에 무슨 화상이 하나 걸려있고 들보우에는 종이로 오려만든 지전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데 먼지앉은 거미줄이 뿌옇게 드리워있었다.
최경선이 낯을 찌프리며 중얼거렸다.
《산당집이구만.》
《여기에 중상자들을 들입시다.》
전봉준의 시름겨운 말에 최경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최경선이가 부상병들을 데리러 간 후 전봉준은 천천히 숙영지를 돌아보았다.
사위가 하얀 눈천지인데 군사들은 눈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여기저기 둘러앉아있었다. 한쪽에선 화식병들이 돌가마를 걸고 밥을 짓고있었다.
평양전투에서 청국군을 쳐이긴 일본군은 평양전투에 들이밀었던 많은 병력을 조선농민군을 진압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돌렸다.
당시 조선에 진주한 일본군대와 군속의 수는 20여만에 달하였다. 놈들은 조선농민군을 일거에 소탕할 목적밑에 각개 격파, 맹렬한 추격전을 진행하였다. 하여 농민군은 전면후퇴의 길에 들어섰다.
밤도 이슥하여 어느덧 개인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부상자들을 돌보러 다시 산당집쪽으로 가는 전봉준의 귀전에 안에서 울리는 울음소리, 신음소리, 넉두리를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걸음을 멈춘 전봉준은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수만의 군사들을 희생시키고 사태가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 천지간에 용납되랴! 오, 장천이여, 굽어살피소서! 저 광패한 섬오랑캐들의 마수에서 어진 이 나라 백성들을 구원해주옵소서!)
어쩐지 몸이 무거워 전봉준은 솔가지로 대충 지은 산전막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그의 신음소리에 태봉이가 제꺽 다가앉으며 혀끝을 전봉준의 이마에 대보았다.
《이거 불덩이로구나.》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열이 높습니다.》
전봉준은 눈을 감은채 나직이 대척했다.
《일없다. 최경선참모는 어디 있느냐?》
《아마 군사들을 돌아보고있을겁니다.》
어쩔바를 모르던 태봉은 물통을 들고나섰다. 물을 떠들고 달려오느라 한절반 쏟뜨린 물통을 들고 다시 산전막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시원한 물이라도 좀…》
《그만두어라. 그리구 최경선참모를 찾아오너라.》
태봉이가 최경선이를 데리고 오자 전봉준은 그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날이 밝거든 최참모와 태봉시위대장은 군사들을 데리고 장성으로 가시오. 내 곧 뒤따라가리라.》
《몸이 불덩이같은데…》
또다시 눈을 감은 전봉준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최경선이가 태봉이에게 선생님을 모시고 인가를 찾아 내려가라고 일렀다.
정신잃은 전봉준을 업고 방향없이 걷는 태봉이의 얼굴에서 줄땀이 흘렀다. 문득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춘 태봉은 얼굴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을 막아서는 끝없는 어둠뿐 사위는 고요하고 적막하였다. 태봉은 앓는이를 추슬러 업고 다시 발길을 뗐다.
얼마나 걸었을가.… 문득 저쪽앞에 불빛이 보였다. 발길을 멈춘 태봉은 눈을 감았다뜨고 다시 여겨보았다. 틀림없는 불빛이였다. 그는 안도의 숨을 쉬고나서 힘있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