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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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은 뒤설레였다.

박두남은 당회의결정에 따라 자기 직무에서 해임되였다.

회의가 끝난 후 앙심을 품은 박두남은 대원들이 마당에서 구경하던 전리품 38식보총을 앗아 글을 쓰고있던 반성위를 쏘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뭣들을 했는가!》 하고 장군님께서는 절통하게 부르짖으시였다.

《그자가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모두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놈은 체포했소?》

《못했습니다.》

《놓쳤단 말이요?》

《모두 반성위동지를 붙잡고 상처를 싸맨다, 지혈을 시킨다 야단법석을 떠는 사이에 밖에 매놓은 말을 타고 내뺐습니다.》

《박두남이… 그놈이…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그놈이… 왜놈들한테로 넘어갔습니다.》

《종파악당, 거기밖에 갈데 없겠지!》

《훈춘방향도로를 차단하고있던 우리 잠복초에서 발견하고 쐈는데 그놈이 빗맞아 피를 흘리며 훈춘시가쪽으로 내뛰였습니다.》

《그놈이!…》

장군님께서는 무릎우에 놓인 주먹을 꽉 움켜쥐시고 분노와 혐오감에 치가 떨리시여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나직이 물으시였다.

《반성위동지는 어디 안치했소?》

《그 자리에… 기발을 덮어놓은걸 보구 떠나왔습니다.》

《무슨 유언이라도 남긴게 없소?》

《그건 모르겠습니다. 탄알이 가슴을 뚫어 인차 숨이 졌는데…》

《동무… 수고했소. 돌아가서… 우리가 가기 전에 장의를 하지 말라고 전하오.》

그이께서는 이렇게 침착하게 말씀하시고는 그 무슨 가책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성림이를 돌아보며 지휘관들을 불러오라고 이르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달려온 지휘관들에게 반성위의 피살에 대하여 알리시고 근거지형편을 잘 아는 놈이 왜놈들한테로 변절투항하여간것만큼 전투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리고 예견되는 정황때문에 움직일수 없게 된 그이께서는 리재명이와 한흥권에게 훈춘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유격대에서 2개 소대가 그들과 함께 동행하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가서 반성위의 령전에 손수 고별주 한잔이라도 부어주고 맨 앞장에서 령구를 메고 나가 마지막영결의 순간까지 벗을 바래여주면 가슴아픔이 잦아들것 같으시였다. 남아있게 된 그이께서는 가슴에서 불이 황황 일었으나 그런 내색은 내비치지 않고 훈춘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차비를 하나하나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녀회에 호소하여 장의에 쓸 약간의 쌀과 천, 추도식장에 드리울 기발을 마련하시였다. 떠남에 앞서 리재명이 사령부로 헐떡거리며 달려들어와 배갈이 출렁거리는 오지병을 들어보이며 이게 생겨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반성위동지가 우리 집에 들렸을 때 잘 대접도 못했는데 제상에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배갈이 있어 다행스럽게 여기는 그를 서글픈 미소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배낭속에서 비상용으로 간수해두시였던 양초 한곽을 꺼내시였다.

《나는 이것밖에 보낼게 없습니다. 반성위동지 머리맡에 불을 켜서 세워놓아주십시오. 동무가 되게… 벗이 되게…》

리재명은 갑자기 코마루가 시큰거려 외면하며 두손으로 그 양초곽을 받았다.

《가거든 장례를 될수록 조선식으로, 우리 풍습대로 하게 하십시오. 반성위동지는 해외에서 오래동안 조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살아온 동지인데 될수록 우리 풍습대로 하십시오.》

리재명은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알았습니다.》

《아- 참 나는 언제 장례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고 앉아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좀 토론이 있었는데 령구가 묘혈속으로 들어갈 때 훈춘 망원초에서 검은 봉화를 올릴가 합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여기서 그 시각에 반성위동지를 추도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훈춘으로 가는 일행을 멀리까지 바래주시였다.

그 일행은 장군님께서 얼마전 반성위와 가지런히 말을 달리시던 그길을 따라 멀어져갔다.

일행이 먼 산굽이에 사라진 다음에도 그이께서는 사무쳐오는 감회에 목이 메시여 돌아서지 못하고 길복판에 서계시였다.

사위는 고요했다. 미풍이 살랑거렸다.

장군님께서는 반성위와 함께 말을 달리였던 길을 끝없이 바라보시였다.

길은 줄기찬 추억의 흐름처럼 끝없이 뻗어나가며 나지막한 고개들을 기여넘고 산굽이들을 우불구불 감돌아서 저 먼 산골짜기의 검푸른 그림자속에 녹아없어졌다.

석양의 해빛이 아늑하게 깔린 길바닥에서는 지금도 어제날의 가지런한 말발굽소리가 흐르는듯 하고 석별의 정을 못이겨 반성위가 석쉼하게 부르던 《사향가》의 가락이 들려오는듯 하였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마차길 여기저기에 황토색먼지구름을 휘몰아올렸다. 길가에 피여난 하얀 꽃들과 풀포기들이 회오리치는 뿌연 흙먼지속에 묻히며 몸부림쳤다.

그이께서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시며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나가시였다.

(그처럼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왜 보냈던가? 그때 무작정 십리평에 데리고 가 하루이틀 더 붙잡아두었어야 하는건데… 아, 그랬더라면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않았을가?… 아니, 그 열정에 충돌은 불가피했을것이다. 그저 할빈으로 돌려보냈어야 하는건데…)

그이께서는 너무도 비통하고 분하시여 먼지가 날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나가시며 비분을 삼키시였다.

그날밤 권일균이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기미를 알아차리고 선참으로 추격한 홍병일이 놈이 쏜 총탄에 팔을 부상당하여 병원에 업혀들어왔다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곧 놈에 대한 추격을 조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박두남의 도망과 권일균의 행방불명을 련관시켜 생각하시였다.

그놈들은 엠엘파와 화요파로서 지난날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새 로선을 반대하기 위해 은밀히 손을 잡았을것이다. 반성위를 사살하기 전에 그들사이에 무슨 공모가 있은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박두남이 도망치자 권일균이 켕겨서 자취를 감춘것이다. 놈들이 뒤에서 벌린 종파책동을 생각할수록 장군님께서는 분격을 참으실수 없으시였다. 사람들은 선량한 마음으로 권일균이 새 로선을 받들고 일한다고 믿고싶어했으며 또 그렇게 믿었었다. 그러나 놈은 겉으로만 새 로선을 따르는척 하면서 동상이몽을 해오다가 끝내 간악한 배신의 길을 걷고만것인가. 왜놈들은 틀림없이 근거지형편을 잘 아는 박두남을 《토벌》의 앞장에 세우려고 할것이며 복수심에 독이 오른 놈은 광적으로 호응해나설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놈의 도주로 하여 생길수 있는 후과를 생각할 때 치가 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시였다.

이튿날 오전 훈춘방향의 먼 고지들에서부터 봉화들이 련이어 타올랐다. 대왕청과 소왕청유격구의 모든 망원초들이 그 신호를 보고 일시에 약속된 봉화를 올렸다. 높은 봉우리들에서 엇비스듬히 타래쳐오르는 시꺼먼 연기들은 하늘에 날리는 조기의 댕기처럼 엄숙한 비장감을 풍겼다. 고지들에 배치된 유격대원들도, 아동단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어린이들도, 밭에서 김을 매던 농민들도 모두 일어나 1분간 묵상하며 반혁명의 흉탄에 쓰러진 국제당의 사절을 추모하였다. 경건한 고요가 깃든 하늘밑에서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울렸다. 십리평쪽으로 뻗은 마차길을 따라 장군님께서 말을 질풍같이 몰아가고계시였다. 길을 따라가며 길게 피여올라 하늘에서 타래치는 흙먼지구름… 산천을 뒤흔드는 말울음소리…

이윽고 말은 내버려진채로 길가의 풀을 뜯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길에서 좀 떨어져 서있는 느티나무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그루를 안고 훈춘쪽 하늘에서 피여오르는 검은 연기를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주먹으로 나무그루를 치며 오열을 터뜨리시였다. 그 울림이 가지들에 퍼지며 잎사귀들이 와스스 설레였다. 잔가지들과 잎사귀들사이로 쏟아져내리는 수백수천가닥의 해살들로 땅바닥에 아롱다롱 그려진 눈부신 동그라미들이 기겁한듯 튀여오르며 불찌처럼 날아다녔다.

비분에 찬 음성이 터져올랐다.

《동지여, 고이 잠드시오!》

먼 하늘가에서 검은연기가 다스러졌을 때 장군님께서는 질풍같이 달려왔던 그 길을 따라 마촌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가시였다. 비감에 젖은 그이의 안광에서 번개불같은것이 번뜩이였다.

(이것은 반성위 개인에 대한 살해가 아니다! 이제 우리에 대한 반혁명의 총공세가 시작될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위협도, 어떤 난관도 뚫고 우리 로선을 끝까지 관철할것이다!… 반성위동지의 희생은 우리 가슴속에 아픈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을것이다!)

군마는 머리를 수굿하고 뚜벅뚜벅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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