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1
의자에 웃몸을 제끼고 앉아있는 이노우에공사에게 보고하는 구스세무관의 얼굴에는 희열에 가까운 웃음이 어려있었다.
《…이상과 같은 동학군이라 표방한 조선폭도들의 주력은 괴멸되고 그 잔여부대들이 산간과 외진 부락에 산재해있는 형편입니다.》
《음.》
볼따귀의 상처자욱을 매만지며 의자에서 일어난 이노우에는 팔짱을 끼고 방안을 거닐었다.
《한달남짓한 사이에 동학군의 수십만대군을 괴멸시켰다. 물론 전과도 크지만 만세를 부르기에는 아직 이르오.》
구스세앞에서 발길을 멈춘 이노우에는 짐짓 엄격한 표정을 띠우고 랭혹하게 뇌까렸다.
《전체 <토벌>군에게 명령하시오. 전봉준이를 비롯한 폭도들의 괴수들을 다 잡아치우라고 하시오. 그리고 다시는 이번과 같은 반일적인 폭거가 유발되지 않도록 동학군잔당이거나 동학군을 동조한 사람들과 부락들을 철저히 초토화해버리라고 하시오.》
들뜬 기분을 가시고 신중한 기색으로 수첩에 이노우에의 명령을 적는 구스세에게 이노우에는 못을 박듯이 찍어 말했다.
《구스세중좌, 당신이 직접 지휘하고 결과를 나에게 보고하시오. 이해를 넘기면 안되겠소. 이해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이요. 알겠소?》
구스세는 병졸처럼 차렷자세를 취했다.
《하!》
일본군군막이 겨울바람에 펄럭이고 파몰아치는 차디찬 눈보라가 땅을 핥았다.
발이 시려들어 참을수 없는 모양 일본군보초가 춤이라도 추듯 두발을 세차게 굴러댔다.
군막안에서는 어깨에 털외투를 걸친 대본영직속 후비보병 제18대대장 마쯔다소좌가 어데선가 빼앗은 조선청동화로불에 손을 쪼이고있고 부대대장인 나이지긋한 대위는 탁자에 펴놓은 지도를 보고있었다.
화로불앞에서 몸을 일으킨 마쯔다소좌가 손을 부비며 탁자로 다가갔다.
《동학군괴수들을 잡으라는 이노우에공사각하의 명령을 대위도 들었겠지?》
늙은 대위는 상관인 젊은 소좌앞에서 차렷자세를 취했다.
《알고있습니다.》
《그래, 지금 전봉준이는 어데 있소? 김개남이며 손화중이는?》
탁자우에 몸을 수그린 대위가 지도를 짚어가며 말했다.
《우금치에서 패배한 전봉준은 여기 론산계선에서 롱성했으나 아군의 포초작전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고 전라도로 패퇴하였습니다. 잠시 전주를 장악하고있다가 아군의 추격으로 금구, 원평으로 다시 퇴각하였습니다. 김개남은 전봉준의 지시로 예하의 동학군을 이끌고 론산으로 북상하여 공주공격전에 참가했으나 우금치에서 패하자 부대를 이끌고 청주방면으로 퇴각, 역시 금구로 남하하였습니다. 그리고 손화중은 고창에 잠복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마쯔다소좌는 으쓱하며 어깨의 털외투를 추슬리고나서 강을 건느는 개대가리마냥 머리를 잔뜩 추켜들고 씨벌였다.
《우리 18대대와 19대대가 담당한 전라도폭도들은 동학군의 주력이며 그 수괴인 전봉준은 전국동학군의 총지휘자요.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자를 잡아야 하오. 전봉준휘하의 수괴들도 마찬가지요.》
대위앞에서 걸음을 멈춘 마쯔다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산재해있으면서 비밀리에 류동하는 그들을 잡는 일은 정면전투가 아닌것만큼 우리 일본군의 힘만으로는 안되기때문에 조선정부군과 지방군을 모조리 동원하도록 하라고 하고나서 전봉준이를 잡는자는 상당액수의 상금과 함께 큰 고을의 원을 시킨다는 광고도 내라고 했다. 어쨌든 금년중으로 조선폭도들과의 전투를 끝장내야 했던것이다.
이윽고 야심찬 표정을 띠운 마쯔다는 털외투소매에 팔을 꿰며 명령했다.
《대위, 전대대에 비상소집명령을 내리시오.》
대위가 주밋거리다가 사정하듯 말했다.
《소좌님, 여러날 계속된 추격전에 군졸들이 모두 지쳤습니다. 다문 얼마간의 휴식이라도…》
《무슨 소리를 하는가!》
마쯔다는 대뜸 어성을 높였다. 일본인특유의 작은 키에 오리발처럼 안짱다리인 그는 끌날같은 눈길로 늙은 대위를 쏘아보았다.
자기와 늘 승벽을 다투던 제19대대장 미나미가 황천객이 된 지금 마쯔다는 조선폭도들의 《토벌》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움으로써 장차 립신양명의 길을 닦을 야심에 차있었다.
그는 뒤짐을 진채 늙은 대위의 앞을 거닐면서 뇌까렸다.
《대위, 군인칙유 전진훈의 제2조 7항을 외우라.》
대대장의 뜻밖의 말에 늙은 대위는 얼빤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이어 그는 대
《외우라!》
갑자기 벼락치듯하는 마쯔다의 노성에 늙은 대위는 덴겁하여 얼른 차렷자세를 취했다.
살기가 어린 부릅뜬 눈, 넙적한 주걱턱, 목이 다밭은 앙바틈한 키, 짧고 휘여든 다리, 어딘가 사나운 부르독크를 련상시키는 마쯔다의 자세에 기가 죽은 늙은 대위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제7항 생사관, 생사를 초월하여 오직 임무의 완수에 만전을 다해야 한다.》
《좋다, 그렇게 하라.》
이어 비상소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어둠속으로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