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2

(1)

 

전봉준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녀승이 그를 만류했다.

《아직은 일어나지 마십시오. 이제 겨우 해열이 되였을뿐이온데…》

《아니, 정신이 좀 든것 같습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여앉은 전봉준은 어딘가 낯익어보이는 녀승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뜻밖에 큰 페를 끼칩니다. 스님이 아니셨던들 제 어찌 살기를…》

전봉준은 진정을 담아 말했다. 혼미한 정신속에서도 전봉준은 자기에게 약을 끓여먹이고 다리의 상처에 약을 갈아붙이던 젊은 녀승의 그 정성스럽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젊은 녀승이 도리여 황공해하였다.

《소승이 아는것이 없고 가진 약이 없어 잘 구완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나이다.》

전봉준은 녀승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님을 어데선가 꼭 뵈온 기억인데…》

녀승이 고개를 숙이며 나직한 소리로 아뤘다.

《인사가 늦어 죄송하옵니다. 소승은 고부에 살던 강주사네 뒤채아씨옵니다.》

《고부, 강주사?…》

말끝을 끄는 전봉준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아, 이제야 생각납니다.》

녀승은 수집은듯 얼굴을 붉혔다.

전봉준이 관심깊이 물었다.

《그런데 어인 일로?…》

그는 젊은 녀승의 수건밑으로 드러난 민머리며 장삼차림새를 새삼스럽게 눈여겨보았다.

녀승이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라 할지… 선생님앞이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인간세상이 귀찮습니다. 그래서…》

《속세를 떠났단 말씀이지요.》

《불가에 귀의했습니다.》

녀승은 변명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같은 말입니다.》 전봉준이 신중하게 그러나 타이르듯 말했다. 《무엇때문에 젊은 인생을 이 산속에서 허무하게 보내려고 그러십니까. 옛글에 이르기를 한 농부가 밭을 갈지 않으면 열사람이 굶주리게 되고 한 녀인이 길쌈을 하지 않으면 열사람이 헐벗는다고 하였습니다.》

녀승이 아미를 더욱 깊이 숙였다.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잠시후 문밖으로 눈길을 주던 전봉준이 물었다.

《내가 여기에 온지 얼마나 되였습니까?》

《오늘이 나흘째입니다.》

《예?!》

깜짝 놀란 전봉준은 급급히 의관을 차렸다.

《아니?!…》

녀승이 놀라와했다.

전봉준이 그를 안심시키려는듯 부드러운 웃음을 띄웠다.

《많은 신세를 지고 갑니다.》

《아직…》

녀승의 눈에 걱정스런 빛이 비꼈다.

《가야 합니다.》

전봉준의 결연한 태도를 보고 녀승이 섭섭함을 이기지 못해했다.

《제 어찌 선생님이 가실 길을 지체시키오리까? 바라옵건대 후날 큰뜻 이루시고 돌아가실 때 소승의 암자를 다시한번 찾아주시기 소원일뿐입니다.》

《고맙소이다.》

《선생님!》 녀승이 절절한 눈길로 전봉준을 쳐다보았다. 《무슨 당부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전봉준은 문쪽을 이윽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녀승에게 정애가 흐르는 눈길을 주었다.

《태인에 내 로모와 어린 남매가 있습니다. 혹…》

전봉준은 말하다말고 다시 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선생님가족은 걱정마시고 부디 옥체건강하시여 크신 소망 이루소서.》

녀승은 물기어린 눈길을 떨어뜨리며 허리숙여 절하였다.

《자, 그럼…》

전봉준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말에 오른 다음에도 한동안 떠나지 못하며 녀승의 얼굴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말머리를 돌려세우더니 채찍을 높이 쳐들었다. 백마는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전봉준이를 바래우던 녀승이 갑자기 생각난듯 품속에 손을 넣더니 종이 한장을 꺼내 펼치였다.

관아에서 돌린 포고문이였다.

《동학군대장 전봉준을 잡아바치거나 거처를 알리는자에게는 1만원의 상금을 주며 큰 고을의 원을 시키리라.》

한숨을 내쉬던 녀승은 혼자소리로 조용히 뇌였다.

《부디 무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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