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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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산속마을어귀에서 전봉준은 달리던 말을 멈춰세웠다. 몇채 안되는 집이 전부 불타버렸고 나무에는 불에 그슬린 시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너무도 참혹한 전경에 전봉준은 눈을 감았다.

그가 저도 모를 힘으로 말을 때려몰아 농민군숙영지에 당도했을 때는 수림속에 저녁안개가 감도는무렵이였다.

그가 나타나자 농민군들속에서 환성에 가까운 기쁨의 물결이 일었다. 말등에서 내리는 전봉준에게로 태봉이가 달려오고 그뒤로 김덕명이며 최경선이와 같은 두령들이 따랐다.

태봉이가 전봉준에게서 말고삐를 넘겨받으며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선생님! 지금 막 선생님 모시러 가려고…》

《공연한 걱정.》

전봉준은 좀 파리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흰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저녁을 먹은 농민군두령들이 커다란 우등불가에 둘러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는 전봉준의 목소리는 침중했고 불빛이 어린 그의 얼굴은 비감에 잠기였다.

《내 사세에 밝지 못해 우리 처지가 지금에 이르러 만회하기 어렵게 되였으니 여러분 대할 면목이 없소이다.》

자기를 쳐다보는 동료두령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일별하며 전봉준은 회한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때늦은 교훈이긴 하지만 우리는 짐승같은 놈들과의 싸움에서 너무도 우유부단했고 완만했습니다. 우리는 전주를 타고 앉은 다음 그길로 서울을 들이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전주화의이후 휴전기간을 새 싸움준비에 걸맞게 리용하지 못한것과 더우기 왜놈들이 우리 왕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곧 재궐기하여 서울을 치지 못한것입니다. 왜놈들의 왕궁습격으로 조정의 통치기능이 마비되고 왜놈들 역시 청일전쟁에 몰두하고있던 그때에 서울을 공격하였더라면 참으로 대첩(큰승리)을 거두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놈들이 평양싸움에서 이긴지 한달후에야 재궐기했고 진격을 개시한것은 다시 그보다 한달후였습니다. 전쟁에서 시간은 승리의 요인이라고 하건만 이 사람이 암매하고 암둔하여 귀중한 시간을 다 놓쳐버리고말았소이다.》

전봉준은 말끝에 불같은 장탄식을 하였다. 두령들도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세차게 타오르는 우등불을 바라보며 전봉준은 말을 계속했다.

《이 사람의 실책은 그뿐이 아니외다. 병쟁기가 변변치 않은 우리 군사들을 최신식대포와 양총으로 무장한 적들의 정면으로 무모한 돌격을 계속 벌리게 함으로써 많은 희생을 내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병법에 무딘 이 사람이 동학전군을 통솔하였으니 싸움에서 이길수가 없었소이다.》

어느 두령이 불쑥 웃몸을 솟구며 전봉준의 말을 꺾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것이오니까? 삼로로 해서 모여든 군사 아직은 몇천이 되니 우리는 끝까지 싸우다 죽을뿐이오이다.》

전봉준이 그를 바라보며 무겁게 다시 입을 열었다.

《끝까지 싸워 죽는것은 쉬운일이요. 우리는 저 흉악한 왜놈들을 이 하늘아래 두어둘수 없소. 그러기에 승산없는 싸움으로 우리 군사들을 더는 잃지 말아야 하오.》

누군가 또 말중간에 끼여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자는 말씀입니까?》

전봉준은 깊이 한숨을 쉬고나서 말을 뗐다.

《지금당장은 해산하자는거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전에 좌중이 일시에 한무릎 벌떡 일으켰다.

《예?!》

모두 전봉준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현재 인원으로 필사적인 저항을 했댔자 놈들의 최신식무기와 화력앞에 지탱해내지 못하오. 그래서 나는 한명의 군사라도 아끼자는게요.》

김덕명이가 서글프게 웃으며 말했다.

《남은 군사를 아껴서는 무엇하시려구요? 단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웁시다. 구차히 살아서 저 원쑤들과 한하늘을 이고 살바에는…》

어딘가 처참한 웃음, 비감에 넘친 목소리였다.

모두들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못했다.

전봉준이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별 의견들이 없으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매개 부대 대장들은 래일아침 자기 대원들을 이끌고 여기 공지에 모이도록 합시다.》

태봉이가 결기있는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그럼 영영 이렇게 끝나고만다는겁니까?》

전봉준이 그에게 눈길을 주며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그럴수 없소. 우리는 이번 거사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방도를 모색해야 하오. 그래서 재기를 위한 회임을 이달말에 가지자고 생각중이요. 장소는…》

순창두령 김경천이가 제꺽 말을 받았다.

《선생님, 그 회임을 우리 순창 피로리에서 가집시다. 피로리는 울창한 복흥산속의 안침진 마을이여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소이다.》

김경천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입을 다물고있는데 다행히 전봉준이가 그의 말을 되뇌였다.

《순창이라, 순창…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순창이면 김개남이나 손화중 등 각지에 산재해있는 두령들이 모여들기가 유리한 곳이요.》

전봉준은 이어 태봉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위대장은 이제 곧 김개남과 손화중총관령들께 다녀와야겠소. 그들에게 부대를 해산시키고 순창 피로리로 오라고 전하시오.》

전봉준에게 곧 떠나겠노라고 대답한 태봉은 길품을 들여야겠기에 길차비를 단단히 하였다. 그는 도처에 왜놈들과 관군놈들이 깔려있는 형편에서 자신도 관군처럼 변장하였다. 산수털벙거지에 검정두루마기군복인 동달이를 입고 어깨엔 화승대를, 허리에는 장검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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