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3

 

뜨락의 감나무줄기에 매여놓은 군마들이 헤쳐놓은 짚단에 코를 들이박고있었다. 사랑방앞 대돌우에는 벗어놓은 여러컬레의 장화며 군화들이 딩굴고있는데 그곳으로 노복들이 반빗간에서 끊임없이 음식그릇을 날랐다.

방안에는 일본군 후비보병 제18대대장 마쯔다소좌이하 장교들과 교도중대 중대장 현홍택, 부중대장 우범선이 집주인 강주사와 마주앉아 술판을 벌려놓고있었다.

술상을 휘둘러보던 강주사가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놈들아! 빨리빨리 가져오너라. 높은 일본군대어른이 우리 집에 들렸는데 이런 생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법이나 한 일이냐!》

우범선이 술병을 두손으로 잡고 마쯔다의 잔에다 술을 따랐다.

《소좌님, 어서 드십시오. 소좌님의 용병술에 감탄감탄입니다. 소좌님의 그 용심출력에 실로 홈탄하는바입니다.》

우범선의 너무도 로골적인 아첨에 현홍택이 쓰거운 표정으로 슬쩍 곁눈질해보았다.

잔혹한 표정을 띤 젊은 마쯔다는 일체 말이 없었다.

반빗간쪽에서 반빗아치들을 다몰아대느라 포악을 쓰는 강주사마누라의 앙칼진 소리가 울렸다.

《야 이것들아, 왜 이리 굼뜨냐? 주사님 노엽혔다 어찌될랴고…》

방안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강주사가 벌떡 일어섰다.

《어서들 많이 드십시오. 내 반빗간에 잠간…》

마쯔다소좌에게 머리를 숙여보인 강주사가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그는 뒤축을 꺾어신은 신발을 질질 끌고 반빗간문앞에 와서 버티고선채로 두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선 반빗아치들에게 호령했다.

《일본어른들은 회를 좋아하시니 소고기회, 잉어회 같은것을 많이 해라.》

사박스럽게 생긴 강주사마누라가 주름진 낯에 애교를 띠우고 아양을 부렸다.

《여긴 걱정마시우. 참, 뒤채의 군대들한테루 한번 가보시우. 뭐 부족한게 없는지.》

《음, 대대장을 호위해온 군대들…》

뒤짐을 진 강주사는 뒤채로 휘적휘적 걸어가며 혼자소리로 씨벌였다.

《전봉준이 이놈들, 집강손지 개나발인지 차려놓고 악삭을 먹이더니 꼴좋게 됐다. 이놈들, 량반세상이 그리 쉽게 뒤집힐줄 알았더냐, 고현놈들!…》

뒤채뜰로 들어서던 강주사는 눈을 뒤집으며 우뚝 멈춰섰다. 화토불을 피워놓은 일본군병졸들이 소 한마리를 통채로 자빠뜨려놓고 날고기를 저며내여 칼끝에 꿰여가지고 불에 굽고있었던것이다. 땅바닥에는 피자욱이 질펀했다.

동이의 술을 사발로 퍼마시는 놈, 닭을 총창끝에 꿰여 털채로 불에 튀기는 놈, 웃고 떠들어대는 놈들, 어쩐지 사람같지 않고 피를 즐기는 지옥의 아수라들같았다.

하지만 강주사는 애써 웃음을 띠우며 그들한테로 다가갔다.

《일본군대어른들, 뭐 부족한게 없소이까?》

상판이 원숭이엉덩짝처럼 새빨개진 놈이 강주사에게 응대했다.

《오 조선량반상, 여기에두 폭도들이 있는가?》

《아, 있다마다요. 저아래 백정촌같은 부락이야 거의가 비도들이거나 비도로 나간 집들이지요.》

《소까?(그런가?)》

그러자 한놈이 군도를 쳐들고 광기를 부렸다.

《니뽄도(일본도)에 짐승피나 묻혀서야 되겠는가!》

《요시, 가자!》

살기가 뻗쳐 윽윽하던 20여명의 왜병들이 뒤문으로 욱 빠져나갔다. 너무도 광패스러운 그들의 거동에 강주사도 어안이 벙벙해 서있었다.

고부 백정촌의 초가마리들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마을사람들이 왜놈군대들에게 쫓겨 울부짖으며 드달려다녔다. 그들을 쫓아다니며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는 왜병들, 고요하던 마을이 삽시에 생지옥으로 변하였다.

이때 노랑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고 칡뿌리가 담긴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옥절이가 동구길로 걸어오고있었다.

그는 불타는 마을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뚝 멈추었다. 하더니 집을 향해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마주 뛰여오던 한 아낙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어딜 가느냐, 옥절아?》

《우리 할아버지가?》

《야, 왜놈들이 사람들을 막 죽인다. 가지 말아!》

《안돼요!》

옥절은 아낙네의 손을 뿌리치고 집쪽으로 그냥 달렸다. 저고리고름이 등뒤로 나붓기고 헝겊쪼박으로 덧기운 검정치마가 부풀어오르고 짚신이 벗겨져나갔다.

왜병들이 옥절이네 집의 문짝을 열어젖히고 방안으로 뛰여들어가 앓는 할아버지를 끌어냈다.

《어이쿠!》

할아버지는 왜놈에게 떠밀리워 땅바닥에 쓰러졌다. 왜병 하나가 다짜고짜로 개털등거리를 입은 그의 잔등을 총창으로 푹 찔렀다.

할아버지의 몸에서 흐른 검붉은 피가 땅을 적시였다. 한놈의 왜병은 불방망이로 집처마에 불을 싸질러댔다. 거멓게 고삭은 겨릅이영은 대뜸 불길에 휩싸였다.

왜병들이 살기등등하여 다음집으로 옮겨갔다.

이때 자기 집 삽짝을 열어젖히며 뜨락으로 뛰여든 옥절은 너무도 처참한 광경에 경악하여 두눈이 커졌다. 칡바구니가 땅에 떨어졌다. 옥절은 울부짖으며 쓰러져있는 할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쓰러진 주변의 흙은 그의 몸에서 흐른 피로 즐벅했다.

《할아버지!》

개털등거리를 입은 할아버지의 가슴팍에 쓰러진 옥절은 그를 마구 흔들고 소리쳐부르며 울었다.

하지만 뚝 부릅뜬 원한서린 할아버지의 눈동자도, 굳어진 몸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옥절은 너무도 억이 막혀 할아버지의 가슴을 종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쳐울기만 하였다. 옥절은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분간할수가 없었다. 그처럼 인정많고 그처럼 너그럽고 그처럼 부지런한 할아버지, 병으로 부모를 일찍 여읜 자기를 품에 안고 때로는 등에 업고 키워주신 할아버지, 자신은 강피죽을 자시면서도 어린 손녀인 자기에게만은 보리가 섞인 쌀밥을 먹여주신 할아버지, 점점 철이 들면서 옥절은 한생을 고생하신 할아버지를 심청이처럼 효성스럽게 모시려고 마음다지군 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정답고 귀중한 할아버지를 졸지에 왜놈들에게 잃은 옥절은 눈앞이 그저 캄캄하기만 하였다. 할아버지 변로인은 옥절이에게 있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이 세상의 전부였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지금 옥절은 자기의 생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여생조차 지켜드리지 못한 나같은게 살아서 무엇하랴. 할아버지를 뒤따라 저승에 가서라도 손녀의, 효녀의 본분을 다하자. 성미가 순진하고 단순하고 곡직한 옥절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어리고 건너편 산들은 보라빛황혼속에 잠겼는데 강물은 노을빛을 담아싣고 고요히 흘렀다.

참혹한 인간세상과는 너무도 판이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야속하고 거짓같기만 했다.

옥절은 허탈감에 잠겨 그냥 강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공허한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도 없었다.

어느덧 강물이 그의 허리를 쳤다.

무엇인가 자기 허리에 부딪치고 감겼지만 옥절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밀어치웠다. 다시 그것이 허리에 감겼다. 다시 손으로 밀어치우려 했으나 헛손질을 했다. 저도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것을 굽어보던 옥절은 본능적으로 《악!》하고 비명에 가까운 놀란 소리를 질렀다.

눈을 까뒤집고 죽은 왜병의 시체 하나가 그의 허리춤에서 떠돌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을 혐오스럽게 노려보던 옥절의 눈빛이 깨도한듯 홱 달라졌다.

(내가 죽긴 왜 죽어. 죽더라도 할아버지의 원쑤를 갚고 죽어야지. 왜놈들을 죽일테야!)

그는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쑤 왜놈들과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끝까지 싸우기로 마음다졌다. 그러면 태봉이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심중이 복잡해졌다. 그와 함께 있으면 어차피 잔치를 해야 할게고 그들사이에는 자식들이 태여날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남편을 섬기고 자식들을 키우는 려염집아낙네가 되고말것이 아닌가. 그래가지고야 어떻게 왜놈들과 싸운단 말인가. 태봉이를 만나지 말아야 했다. 그토록 정든 태봉이를 쉽사리 잊지 못하리란것을 그도 깨닫고있었다.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했다.

론개나 계월향이 같은 기생들조차 나라를 위해 한목숨을 터럭같이 버리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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