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8
(2)
뙤창으로 흘러든 저녁해빛이 곰가죽을 덮고있는 옥절의 얼굴을 어루더듬었다. 그의 얇은 눈까풀이 바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정기없는 눈이 떠졌다. 천정의 서까래며 방안의 기물들이 빙그르 돌아갔다. 어지럼증으로 다시 눈을 감는 옥절이의 귀에 밖에서 울리는 인적기가 들렸다.
눈을 뜬 옥절은 방안을 살펴보았다. 서까래며 그사이의 솔가지들, 데룽데룽 매달린 짐승가죽들, 보매 산전막이 분명했다.
문소리가 났다. 옥절은 몸을 일으키려고 안깐힘을 썼다.
《정신이 드느냐? 그냥 누워있거라.》
석쉼한 목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털벙거지를 쓰고 저고리우에 털조끼를 덧입은 나이지숙한 로인이 곁에 와서 앉았다. 그는 어깨의 화승총을 벗어 벽에 세워두었다.
《저, 여기가 어딘가요?》
옥절은 가는 소리로 물었다.
《인적없는 산속이다.》
《할아버진?》
《짐승을 잡아 여생을 살아가지.》
로인은 자그마한 나무함을 무릎께에 끌어다놓고 곰방대에 담배를 담았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길?…》하고 묻던 옥절은 추격당하던 광경이 되살아났다. 그는 할아버지에 의해 사경에서 구원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옥절의 눈귀로 눈물이 흘렀다.
담배를 한모금 빤 로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한마디 묻자구? 체네는 어디서 사는 누군고?》
옥절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어느덧 뙤창밖이 어두워지고 방안에선 고콜불이 타고있었다. 옥절의 눈은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화승대만 줄곧 바라보았다.
이튿날 아침, 옥절은 포수로인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할아버지, 소녀에게 간절한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뭔데?》
《소녀를 당분간 할아버지슬하에 두어주십시오.》
로인은 얼굴에 측은한 동정의 빛을 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갈데도 없겠지.》
《그리고 소녀에게 총쏘는 법을 좀 배워주십시오.》
《응?》
《이대로는 죽을수 없어 그럽니다.》
이후로 옥절은 포수로인에게서 매일 사격훈련을 받았다.
엎드려사격련습을 하는 옥절이의 총신끝에 자그마한 자갈을 올려놓으며 포수로인이 당부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이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훈련해라.》
훈련에 열중한 옥절이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내배이고 바람이 불 때면 목덜미며 잔등이 축축했다. 눈에서는 불이 일고 앙다문 입술에는 이발자리가 났다.
산전막문이 열리고 포수로인이 밖을 내다보며 《옥절아, 밥을 먹고 또 련습해라.》 이렇게 당부할 때가 드문했고 그러면 옥절이가 《예, 조금만 더…》하고 어리광부리는 어린애마냥 떼를 쓰군 하였다.
어느날 옥절이가 신식양총 한자루를 메고 산전막뜨락으로 들어섰다.
땅바닥에 나무토막을 깔고앉아 짐승가죽을 무두질하고있던 포수로인이 눈이 어웅해서 물었다.
《너, 그게 무슨 총이냐?》
《왜병을 한놈 제꼈어요.》
《응?!… 너 정말 예사내기가 아니구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옥절이가 포수로인에게 총을 내밀며 말하였다.
《할아버지, 이 총을 좀 작게 할순 없을가요?》
《거치장스러워서?… 륙혈포라구 주머니에 넣고다니는 자그마한 권총두 있지.》
《지금 당장은 그런게 없으니까 이걸 어떻게 좀… 이만큼 총신을 잘라버리면 안될가요?》
《그래두 총알이야 나가지.》
《할아버지, 좀 그렇게 만들어줘요.》\
그날로 포수로인은 줄칼로 총신을 자르느라 씩씩거렸고 그곁에 쪼그리고앉은 옥절이는 그의 이마에 내밴 땀을 닦아주었다.
이후로 옥절은 단총을 한손에 쳐들고 사격련습하군 하였는데 원래 사당패에서 춤을 추던 그는 총을 쏘고 나무뒤에 몸을 숨기는 동작이라든가 땅에서 딩굴어 몸을 피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민첩하고 날렵한지 몰랐다. 밤이면 피부가 벗겨져 피흐르는 팔굽이며 멍이 든 무르팍에 약을 바르군 하였는데 그러는 옥절이를 보고 포수로인도 주름발이 깊은 얼굴에 감동의 표정을 띠우군 하였다.
이런속에서도 옥절은 언제한번 태봉이를 잊은적이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빛이 매눈같은 그의 잘난 모습이 삼삼히 어려오고 귀전에서는 종을 두드리는듯한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쟁쟁히 울리군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원쑤를 갚기전에는, 왜놈들을 복수하기전에는 그 어떤 사념에도 절대로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모질게 먹고있는 옥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