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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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채려장의 지휘부는 시가북단에 자리잡고있는 토호의 저택에 들어있었다.

여러채의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토호의 저택은 높다란 토성으로 둘러막혀 지붕들만 바라보였다. 토성은 세월의 풍상에 시꺼멓게 퇴색했고 군데군데에 이끼와 담장풀까지 자라올랐다. 그 토성에 숭숭 뚫린 가병들의 총구멍들은 적의를 품고 세상을 내다보는듯 하였다.

굳게 닫긴 대문앞에 장총을 멘 쌍보초가 서있었다.

진한장이 대문앞으로 다가가서 오른쪽보초병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전령병 리성림의 무장상태를 언짢게 흘겨보며 팔굽으로 대문을 들이밀었다. 이뿌리까지 저려드는 마찰음을 내면서 대문이 두쪽으로 갈라졌다. 안으로 사라졌다가 나온 보초병은 진한장이만을 데리고 들어갔다. 진한장은 이윽하여 밖으로 나왔는데 그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려있었다. 그는 리청천이도 방에 있는데 담판을 거절한다고 장군님께 말씀드리였다.

이때 뒤에서 《김대장!》 하고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놀라서 뒤를 돌아보시였다. 몸집이 우람하고 얼굴이 호인답게 너부죽한 사람이 다가오며 손을 내뻗치였다.

진한장이 사려장님이라고 그이께 알려주었다.

사려장은 장군님의 손을 잡으며 사과의 말부터 앞세웠다.

김대장, 이거참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어서… 어디 좀 갔다오다나니 좀전에야 오사령한테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사려장은 그이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문쪽으로 가볍게 이끌었다.

《갑시다.… 갑시다.… 저 사람은 성미가 말라놔서… 인차… 인차… 뉘우칠겝니다. 갑시다. 가서 이야기랑 좀 합시다.》

진한장이도 더 지체하지 말기를 바라는 표정이였다.

바깥에는 해빛이 눈부시였다. 땅에 던져진 나무그림자들의 륜곽이 그린듯이 뚜렷하였다.

사려장은 장군님의 결에 붙어서 걸어가며 채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채려장은 한때 이 듬직한 사람밑에서 영장으로 복무한 일이 있으며 그때부터 그들은 결의형제를 무은 사이라는것이였다. 사려장은 그의 지휘부에 리청천이 식객으로 와있는것을 못마땅히 여겨왔었다. 그가 리청천이 온 다음부터 오사령의 명령에 불복하여나서기도 하고 제멋대로 놀며 따로 떨어져나가려는 기운을 보였기때문이였다. 채사령은 용맹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출세도 해보자는 야심이 큰 사람인데 리청천이 이 공명심에 키질을 하면서 그의 환심을 사고있다. 채려장은 그의 군사지식만 습득하면 자기가 맹과 지가 겸비된 두령으로 될수 있다고 확신하고있다.

채려장이 리청천이와 의형제까지 무었을 때 사려장은 분격하여 그를 찾아가 자기와의 관계는 파기하자고 들이대였다. 그때 채려장은 매우 섭섭해하며 리청천이에 대한 속심을 털어놓았다. 채가는 자기가 리청천이와 이런 관계를 맺는것은 진심이 아니며 그의 군사지식과 전술들을 긁어내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사형에게 위험이 닥치면 그래도 자기가 제일먼저 뛰여들것이라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이랬는데 이제는 저 리가의 꾀에 아주 넘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는 못합니다. 오사령과 내가 김대장네와 손을 잡으면 저 사람도 아주 떨어져나가기 전에는 공산당에 대한 적대행동은 못합니다. 저 사람은 나한테 맡기면 됩니다.》 하고 사려장은 락관적인 기분으로 말하였다.

구국군사령부로 돌아왔을 때 오사령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듯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사려장과 진한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채가는 그저 갈범같은 성미라니까.…》

오의성은 밝게 웃으며 김일성동지를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응접실에는 성대한 오찬이 마련되여있었다.

오의성은 장군님께 자리를 권하고 그이의 곁에 앉아 은잔에 술을 따르며 상공당건에 대하여서는 이 사죄의 술로 씻어버려달라고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사건은 오사령의 뜻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아이들의 장난같은것인데 사령께서도 다시 상기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오의성은 그 말씀에 만족하여 배갈이 찰찰 넘치는 잔을 그이께 권하였다. 그이께서는 감사를 표시하고 사양하시였다. 오의성은 펄쩍 놀라며 무인이 술을 사양하다니 이 어인 일인가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항일대전이 승리한 다음 큰 잔으로 축배를 들자고 하시였으며 오의성은 그 말씀에 통쾌한 웃음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 그이께 식사를 권하였다.

오찬이 거의 끝나갈무렵 밖에서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사령부마당으로 구국군 군인들이 밀려들고있었다.

오사령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그이께 말하였다.

《우리 병사들이 김대장을 보고싶어 모여드는겝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오사령과 사려장의 뒤를 따라 현관앞에 나서시였을 때 마당에 빼곡이 들어서서 와글와글 끓어번지던 구국군 군인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장군님만을 우러렀다. 그이의 젊음과 기상에 경탄하는 조용한 탄성들이 회오리바람처럼 군중들의 머리우로 날아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혈색이 좋지 못하고 옷차림도 람루하였다. 헐어빠진 구동북군군복과 일본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태반이고 군복저고리에 사복바지, 사복저고리에 군복바지를 얼럭덜럭 섞어 입은 병사들도 보였다. 총을 멘 병사, 탄띠만 두른 병사, 채양이 꺾어진 둥글모자를 쓴 장교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털모자를 쓴 병사들이 있고 맨머리바람의 병사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시큼한 땀냄새와 곰팡이냄새 같은것이 확 풍겨왔다.

그들속에서 여느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이는 병사가 총을 높이 추켜들며 피타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김사령님- 한가지 물어봅쉐다.》

그 병사는 군중속을 비집고 걸어나왔다. 피골이 상접했으나 강기가 있어보이는 얼굴이다. 움푹 꺼져들어간 눈확에서는 시꺼먼 눈동자가 탐욕적인 빛을 번쩍이고있었다. 병사는 앞줄에 나와서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김사령님! 형제가 되자면서 조선유격대는 왜 자꾸 우리를 시비하는겝니까? 마적이다! 토비다!… 백성들한테서밖에 량곡을 징발할데가 있습네까? 우리는 배고픕니다. 군대야 먹어야 싸울게 아닙네까?》

그 병사의 뒤에서 털모자를 제껴쓴 익살군얼굴의 병사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주눅이 좋게 벙글거렀다.

《여보게 꺽다리, 님자는 남보다 내장이 더 기니까 배고픈게야, 흐흐흐…》

오의성은 뜻밖의 창피를 당할 일이 벌어져 몹시 당황해하며 그 병사더러 어서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진중하신 안색으로 병사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다가 절절한 동정이 흐르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언제부터 배고픈 고생을 했습니까?》

병사는 뜻밖의 동정에 설음이 북받치기도 하고 무안스럽기도 하여서인지 얼굴빛이 수수떡처럼 되여 분격을 터뜨리듯이 거칠게 대답하였다.

《일본놈들한테 저 동녕현성을 떼운 다음부터는 내내 이 모양이웨다. 거기에는 우리 군량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는데 젠장, 거기를 떼우니 내내 이 고생이웨다.》

장군님께서는 군중들쪽을 바라보시며 큰소리로 그 병사의 말을 되뇌이시였다.

《여러분, 이 병사는 왜놈들한테 동녕현성을 떼운 다음부터 고생이 컸다고 합니다. 우리야 남남도 아닌데 속을 터놓고 말못할게 있습니까.…

우리가 손을 잡고 왜놈들을 친다면 군량도 얼마든지 로획할수 있고 무기도 빼앗을수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편견과 오해를 가시고 지난일을 캐지 말며 오직 왜놈들과 싸우기 위해 손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일제의 침략을 당하여 나라를 빼앗겼으며 우리 부모들도 다같이 일제의 야만통치밑에서 마소처럼 부리우며 갖은 고생을 하고있습니다. 일제는 우리들의 공동의 원쑤입니다. 같은 처지인 우리들에게는 서로 적대시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일련합전선을 하자고 당신들을 찾아와서 존경하는 오의성사령과 진지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회담은 조중련합전선결성의 확고한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우리는 근거지로 돌아가면 오사령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준 신의와 환대에 대하여 전체 부대들에 통보하고 앞으로 구국군 여러분들의 군사행동과 생활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돕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 우리는 오사령님이 결심을 내려 적절한 기회에 동녕을 공격한다면 언제나 당신들과 함께 싸울 용의가 있다는것을 확언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주먹을 높이 들어 이렇게 웨치시였다.

키꺽다리병사는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총을 높이 쳐들어올리며 목이 터지게 소리쳤다.

《김사령이 제일이요-》

군중들은 그의 웨침에 호응하여 저저마다 제나름으로 뛰여오르기도 하고 총을 흔들어대기도 하면서 웨쳐대기 시작하였다.

《조선유격대는 우리 형제요-》

《손을 잡자-》

《항일전을 함께 하자-》

오의성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자기 군대의 이런 기세와 정신적앙양에 만족하여 장군님의 두손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을 하여주어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도 감격에 겨워 그를 뜨겁게 포옹하시였다.

《손을 잡읍시다! 오사령님, 손을 잡읍시다.》

장군님께서와 자기네 사령이 손을 뜨겁게 잡아흔드는 모습을 보는 군중들은 더욱 환희에 넘쳐 열광적으로 뛰여오르며 환호했다. 높이 쳐들려 설레이는 총창들의 숲우로 군모들이 산새처럼 날아올랐다.

 

×

 

그날 밤 오사령은 사려장과 함께 련합전선결성에 동의하였으며 두 군대사이의 호상 통보와 련락을 위하여 라자구에 반일부대련합판사처를 두는데도 찬성하였다.

이튿날 오전 김일성동지께서는 라자구를 떠남에 앞서 작별인사차로 오사령을 방문하여 그에게 보총 세자루를 선물로 주시였다. 오의성은 처음 만나서 하였던 롱말이 생각나서 몹시 당황해졌으나 인차 례의를 차려 막료들을 다 불러들여 자기옆에 세우고 두손으로 정중하게 선물을 받아안았다.

장군님께서는 친선의 정이 넘치는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령님, 약소하나마 련합전선결성기념으로 받아주십시오.》

오의성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그이의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련합전선결성기념으로 받겠습니다.》

그날 오의성사령은 김일성동지를 멀리에까지 바래워올리고 돌아와서 방에 오래동안 홀로 앉아있었다. 그는 원탁우에 놓여있는 세자루의 보총을 거듭 쓸어만지며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김사령은 사살사건에 대해 끝까지 한마디도 없었지. 나라면 가슴이 찢어지고 분통이 터져오르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마디, 한마디도 없었지. 반일련합전선이란 거사를 생각해서… 그런 감정도 다 희생시켰지. 어허, 얼마나 큰 도량인가! 그 토비 동가때문에 우리는 도의상으로 꿀리고 큰 망신을 당했다. 엑- 미치광이같은 놈!)

오의성은 세자루의 보총우에 머리를 떨구고 오래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장군이시여, 당신은 나를 덕으로 깨우치셨소!)

그러나 문득 다른 생각이 엄습해들어 머리를 천천히 들고 흐린 눈으로 창문을 내다보았다. 이제 채세영부대가 어떻게 나올지 근심스러웠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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