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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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봉준이 사형당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감옥과 고문은 준수하던 전봉준의 얼굴을 수척하고 피기없고 볼과 턱에 수염발이 거밋하게 돌게 했어도 류다른 정기로 번쩍이는 그의 눈빛만은 가리우지 못했다.
그는 곁에 앉은 동료들인 손화중이며 최경선, 김덕명이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로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얻고저 하면서도 정작 얻기 어려운 수양의 경지가 있었으니 그게 뭔고하면 함소입지할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라는것이요. 말하자면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죽을수 있는 사람은 수양의 극한에 달한 사람으로 된다고 일러왔소.》
동료들은 신중한 기색으로 전봉준의 뜻깊은 말에 귀를 기울였다.
《또 일러오기를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두 말을 합쳐놓으면 수양이란 별것이 아니고 세상의 옳은 도리를 깨닫고 그것을 실행하는것이라는 뜻으로 되오. 옳은 도리를 깨우치고 옳은 일에 몸바쳐보게 되였으니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요. 나는 지금이라도 웃으며 편히 죽을수 있는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있소.》
이렇게 말한 전봉준은 따뜻한 웃음을 담고 손화중이며 최경선, 김덕명의 얼굴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마치도 마지막인사라도 보내듯이.
최경선이 저윽 감동어린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전선생은 우리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세상과 하직하게 만들어줍니다그려.》
이윽고 어머니가 보내준 진솔바지저고리를 갈아입은 전봉준은 멀리 남쪽을 향해 절했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속에서 고패쳤다.
《어머님, 이 불효한 자식을 부디 용서하소서. 그리고 동포들이여, 부디 번영의 날을 맞으라!》
옥문이 절컥 열리는 소리가 울리고 들것을 든 옥리와 라졸들이 감방안으로 쓸어들었다.
들것우에 거연히 앉은 전봉준이 옥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교자를 타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요그려, 허허 …》
옥리도 라졸들도 모두 외면하고 말들이 없었다.
사형장마당에서 전봉준은 동료들인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이들에게 부축되여 서있었다.
법관이 그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가족에게 남길 말이 없는가?》
《없다.》 잠시후 전봉준은 말을 이었다. 《너희는 나를 죽일진대 밝은 종로네거리에서 목을 베여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줌이 옳은 일이어늘 어찌하여 이 감옥에서 몰래 죽이느냐! 내 오늘 너희놈들의 손에 죽는다만 우리가 흘린 피는 결코 헛된것이 아니다. 보국안민의 성벽을 쌓는 하나의 주추돌로 될것이다.》
동료들에게 부축되여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는 전봉준의 입에서 시 한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내 뜻과 같더니
운이 다 지니 영웅도 스스로 어쩔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어찌 허물이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오
이때 감옥담장밖에는 모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주름살이 밭고랑같은 로인들, 파파늙은 할머니들도 있다. 그들속에서 동소임 권벽이며 태봉이의 모습이 유표한데 더우기 장옷을 쓴 지난날의 뒤채아씨이고 비구니였던 젊은 녀인의 자태가 이채로왔다.
문득 감옥안으로부터 쾅! 하는 징소리가 울려나왔다.
군중들이 일시에 땅바닥에 꿇어앉고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버드나무가지들이 태를 치듯 바람결에 설레이고 살구나무에서 락화가 눈발처럼 흩날려 떨어졌다.
정녕 민족의 장한 아들은 이렇게 가고마는가!
태봉이 땅을 치며 우는데 뒤채아씨도 장옷쓴 어깨를 세차게 들먹였다. 중치막에 갓을 쓴 도고 최일이도 어깨울음을 울고 그곁의 동소임 권벽이도 가슴을 치며 울었다. 전봉준을 구출하지 못한 통분함을 더운 눈물로 뿌리는것이리라!
감옥으로부터 한 나배기가 전복을 벗어들고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전봉준의 담당옥리였다.
그에게로 다가선 권벽이 허탈감에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끝이 났소이까?》
옥리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혼자소리하듯 중얼거렸다.
《내 수없이 많은 사형수들을 보아왔소마는 그 사람같은이는 실로 처음 보았소. 그는 과연 소문으로 듣던바보다 훨씬 뛰여난 인물이였소. 그는 외모부터가 천인만인중에서도 볼수 없는 특출한 인물이였소. 그의 청수한 얼굴과 정채있는 미목, 엄정한 기상과 강장한 심지는 과연 세상을 한번 놀라게 할만 한 큰 인물이였소.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아니하고 본심 그대로 태연히 갔쇠다. 참으로 고결하고 고경한분이외다.》
말을 마친 옥리는 고개를 푹 떨구고 비척거리며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