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11

(2)

 

이튿날, 청신한 새벽녘이였다. 새벽안개가 나무줄기를 휘감고 산새들의 지저귐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가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등뒤에 들으며 태봉은 숲속으로 스적스적 발길을 옮겼다. 머리우에서는 나무가지에 돋은 야들야들한 새싹들이 하늘을 향해 손들을 벌렸고 발밑에서는 묵은 락엽을 헤치고나온 새 풀잎들이 세상을 향해 고고지성을 지르는듯싶었다. 봄이라 하지만 아직 새벽날씨는 쌀쌀하여 태봉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허연 입김이 숲속에 서린 안개속에 잦아들군 하였다.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뜨리며 문득 삭정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나는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태봉은 그만 눈이 커다래졌다. 장바 둬기장앞에서 두마리의 메돼지가 뛰여가고있었다. 앞의것은 큰놈이였고 뒤의것은 좀 작았다.

얼결에 어깨에서 화승총을 벗겨든 태봉은 화승에 불을 달고 총박죽을 어깨로 가져갔다.

《땅!》

총소리가 숲속에 울려퍼졌다.

뛰여가던 메돼지들이 홱 방향을 바꾸더니 태봉이를 향해 달려왔다. 헛맞힌 모양이였다. 그런데 선불을 맞은 메돼지란 여간 사납지 않은 법이다.

태봉은 황황히 다시 장탄하기 시작하였다. 총신으로 흑색화약을 다져넣고 연탄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화승에 성냥을 그었다. 어쩐셈인지 불이 달리지 않았다.

눈길을 든 태봉의 앞으로 두 메돼지가 기승차게 달려들고있었다. 짓숙인 대가리, 상아처럼 앞으로 뻗은 어금이, 락엽을 휘뿌리는 맹렬한 다리움직임… 금시 받을듯 한 메돼지의 우악스런 상통을 보고 태봉은 눈을 꾹 감았다.

이때 돌연 한방의 총성이 되알지게 울렸다.

태봉은 총성에 놀라 눈을 떴다. 앞에서 달려들던 큰 메돼지가 픽 쓰러지는것이 보였다.

또다시 총성이 울리고 이번엔 뒤따르던 작은 메돼지가 푹 꼬꾸라졌다.

태봉은 급히 메돼지한테로 뛰여갔다. 두마리가 다 대가리에 명중되였다.

《어떤 명포수가?!…》

태봉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저쪽숲속에서 말의 호용소리가 울리고 뒤미처 숲속을 꿰질러 달려오는 말의 자태가 보였다. 발굽으로 가랑잎을 걷어차며 달려오던 적토마가 저쯤 앞에서 멈춰섰다.

단총을 꼬나들고 말등에 앉은 사람은 수건을 쓰고 감물을 들인 저고리우에 개털등거리를 덧입고있었다. 보매 미목이 수려한 총각이였다.

신비경에 잠긴듯이 명포수총각을 황홀하게 쳐다보던 태봉은 머리를 숙였다.

《고맙소이다, 도령.》

《…》

총각은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태봉이가 고개를 쳐들자 총각은 적토마의 고삐를 잡아채더니 숲속으로 달려갔다.

《아니 도령, 여보시오!》

태봉은 적토마를 뒤쫓아 허둥지둥 뛰여갔으나 말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맹랑하여 락엽우에 털썩 주저앉은 태봉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모를 일이다.》

백호의 등에 앉은 태봉은 생각에 잠겨 웃몸을 흔들거리며 산속의 고샅길을 가고있었다. 그는 지금 옥절이를 그리고있었다. 얼마전까지는 전봉준대장을 구출할 일에 전념하다보니 미처 옥절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전봉준을 잃은 지금에 와서는 오직 옥절이 생각뿐이였다. 더우기 며칠전 가람의 숲속에서 자기를 구원해준 명포수총각을 만난 이후로는 옥절이의 모습이 어느 한시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달아나다싶이 사라진 그 총각의 모색이 어쩐지 옥절이와 방불하다는 느낌이 뇌리에 강하게 마쳐왔다. 하다면 옥절이가 왜 남복을 했으며 그런 명사격술은 언제 익혔으며 그리고 자기를 보고 달아난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고부 백정촌으로 빨리 가서 옥절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말고삐를 틀어쥐는데 한적한 산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무줄기들사이로 노루 한마리가 햇풀을 뜯고있는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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