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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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동남쪽하늘이 벌겋게 타올랐다.

무서운 재난이 배태되여있는듯 한 그 시뻘건 밤노을밑에서 포성이 구궁- 구궁- 하고 둔중하게 울려왔다.

장군님께서는 유격대의 방어진지들을 돌아보시고 소왕청골짜기의 마차길을 따라 사령부로 돌아가고계시였다.

캄캄한 어둠이 골짜기에 내리덮였다. 음산한 마가을바람이 나무가지들에서 울부짖었다.

그이께서는 바람속을 걸어가시며 무거운 생각에 잠기시였다.

유격근거지의 먼 변두리쪽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왜놈들의 《토벌》이 시간의 일치성과 행동의 정연한 순차성을 띠면서 점점 큰 력량으로 전개되여왔다.

왜군들은 벌방에서 가까운 근거지변두리의 촌락들부터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늙은이고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할것없이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는 집들에 미친듯이 불을 질렀다.

두만강연안 수백리 땅에서 벌방과 골짜기들에 오붓하게 보금자리를 틀었던 마을들이 며칠밤사이에 화로불처럼 타올라서 재더미로 되여버렸다.

왜군부대들은 밤이 되여도 불사른 마을에서 물러가지 않았다.

지난 몇달동안에 진행된 《토벌》들에서는 한두번 《토벌》하고는 아주 물러가거나 밤이면 안전한 곳에 퇴각하였다가 다시 공격하여왔는데 이번에는 차지한 계선을 강화하고는 한걸음 또 한걸음 다가들어오면서 모든것을 초토화해버린다.

여러가지 징후로 보아 적은 새로운 전략적단계에 들어선것이 분명하다.

9월 하순부터 왕청현의 유격근거지들은 물론 훈춘, 연길, 화룡현을 비롯한 두만강연안의 거의 모든 유격근거지들이 왜군들에게 완전히 포위될 위험에 처했다. 적은 하나의 큰 전선을 폈으며 전격전의 방법으로 일거에 유격근거지들을 소탕해버리자고 결심한것이 분명하다.

(이건 《토벌》이 아니라 큰 전쟁이구나!)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있다.

사람들은 얼굴빛들이 캄캄해져서 왜놈들이 대무력으로 접어드는데 어떻게 하면 저놈들을 물리칠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고있다. 이러한 론의들은 유격대와 반일자위대, 인민혁명정부와 현당에서도 벌어지고있다.

혁명이 불바다에 잠겨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마당에 이르러 혁명의 지휘성원들은 자기 속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기염을 토하며 또한 자기 주장을 좀처럼 굽히려들지 않는다.

현대적무장으로 장비한 대무력의 일제침략군과 맞선 조건에서 유격근거지를 고수할것이 아니라 내주고 일시 깊은 산중으로 퇴각하여 들어가 혁명력량을 보존해야 하지 않는가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각 유격구들에서 방어진지들을 굴설하고 그것을 피로써 사수하다가 전체 혁명력량을 동원하여 반공격에로 이전하여 왜놈들과의 결사전을 벌릴것을 주장하고있다. 앉아서 죽기보다 일어나 싸우다가 피값이나 하고 죽자는것이 그들의 결심이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

어떻게 하나 근거지를 사수해내고 근거지에 의거하여 혁명을 계속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 의지는 절대로, 절대로 굽힐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 사령부에 돌아오니 마당에 난데없이 높다란 무지가 생기고 그밑에서 담배불이 깜빡이고있었다.

그 담배불이 옆으로 획 날다나더니 웬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누구요?》 하고 장군님께서는 물으시였다.

그 사람은 반기는 목소리로 이렇게 웨치며 그이앞으로 달려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쌍암촌에서 왔습니다. 지유복입니다!》

《아, 회장동무, 이게 웬일입니까?》

지유복은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쭈밋거렸다.

장군님, 저… 사실은 올농사를 다 지어놓고 장군님을 마을에 모시고 큰 잔치를 하자고 했는데 시국이 이렇게 번져지다나니… 모두 얼마나 섭섭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쌀을 지고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여 무지로 가서 낟알섬들을 쓰다듬어보시였다.

《아니 제가 이렇게 많은 쌀은 해서 뭣합니까?》

《이번 전쟁에 써주십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많은걸 어떻게 운반해왔습니까?》

《스무명이서 한가마니씩 지고 산길을 타서 왔습니다. 저희들한테 땅을 주시고 마을에 친히 와서 학교까지 열어주신 장군님께로 간다니 허… 모두 펄펄 날아왔습니다.》

방안에 들어와 장군님앞에 앉은 지유복은 몹시 흥분되여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장군님! 우리 농군들이 목숨이 붙어있어가지구야 어떻게 분여받은 밭을 왜놈들한테 빼앗길수 있겠습니까. 걷어안구 죽는 한이 있더라두…

우리는 장군님만 굳게 믿고 쌍암촌을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를 멀리까지 바래주신 장군님께서는 방에 들어와 목단추를 끌러놓고 벽에 기대여앉으시였다. 석유등잔에서 팔팔 타오르는 불꼬리가 방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이의 눈앞에서는 한없는 기대와 믿음에 차서 쳐다보던 지유복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뾰족산과 마반산에 나갔을 때에도, 이 며칠사이에 만나시였던 수많은 인민들도 모두 그러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는것이였다.

사람들은 쌍암촌의 그 농민처럼 장군님께서는 한칼에 왜놈들을 베버릴 묘술을 간직하고계시며 이제 때가 되면 비상한 예지와 힘으로 놈들을 요정내리라고 믿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을 느끼면 느끼실수록 장군님께서는 어깨가 무거워지시였다.

지금 어둑시근한 방에 홀로 앉아계시는 그이께서는 손가락을 꼽아가시며 인민혁명정부의 창고에 있는 예비식량의 보유량, 그것이면 유격대와 인민들이 얼마동안 왜놈들의 경제봉쇄를 견디여낼수 있겠는가. 그리고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무장상태와 화력을 가늠해보시고 무기수리소의 작탄생산능력을 타산해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목숨과 바꾸기도 하고 피흘려 구해들인 38식보총, 38식기병총, 44식기병총, 칠성자, 양포, 다태갈 등 유격대의 각종 무기들에 대하여 대원들의 얼굴처럼 생생하게 눈에 익혀두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총들로 효률적인 화력조직안을 세웠다가는 허물고 허물었다가는 다시 세워보시는것이였다. 또한 유격대와 자위대의 방어진지들이 적의 공격이 예견되는 방향에 정확히 배치되였는가를 거듭거듭 가늠해보시고 검토해보시는것이였다.

(왜놈들은… 우리가 활동하기 불편하고… 여러모로 생활조건이 불리한 겨울에 결정적인 공세로 넘어올것이다. 겨울이 오면 어쩐다? 병약자들과 로인들과 어린애들은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가?…)

생각하면 할수록 어느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방안은 깊은 호수속처럼 고요하였다.

등잔에서 가물가물 타오르는 빨간 불꼬리만이 세상을 덮은 어둠을 밝히느라고 무진 애를 쓰는듯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문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조용히 뜨시였다.

문곁에 리성림이 그림자처럼 서있다. 그는 수심이 잔뜩 어린 얼굴로 이쪽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무슨 일이 있소?》

《오늘 저녁엔 누구도 안들여놓자구 했는데 정말…》

《누가 찾아왔나?》

《예…》

《누군데… 한영권동무요?》

《아니, 두 아바이가… 저, 김진세아바이하구 마종삼이라는 농민이… 암만 가라구 해도 듣지 않습니다. 사령관동지를 꼭 만나게 해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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