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 회)

제 8 장

3

 

하늘에서는 별무리들이 구름속을 날고 땅우에서는 달구지들이 굴러가고있었다.

읍거리에서부터 두만강기슭의 여러 자갈터까지의 사이에는 자갈모래를 실어나르는 달구지들이 장사진으로 늘어섰다. 달구지바퀴들의 삐꺽거리는 소리, 소의 영각소리… 셈판을 모르는 어떤 달구지군들은 이런 공사를 고안해낸 면장에게 온갖 험담을 다 퍼부었다.

《면장인지 낯판대기 긴 자식인지 그 쓸개빠진 놈은 왜 갑자기 읍거리에 자갈을 펼 생각을 했노?》

《도청이나 총독부에서 어느 고관나리가 왕림하시겠지. 에- 라, 우에 잘 뵈야 오래 해먹을게 아니요-》

《아니 성님, 내 말을 들어보시오. 길이라는게야 사람이 다니라는게지 그게 어디 치장거리오다? 엥? 여느때는 가만있다가 도청에서 뭐이 움씰할것 같으면 바들바들 떨면서 우리만 못살게 군다니까. 내 어느때나 그 자식 바지를 벗기구야말겠소다.》

《님자, 바지는 벗겨 뭘 하게?》

《거기에 침을 탁 뱉구 네깟놈두 사내대장부야 하고 소리칠테요!》

《허허허…》

《하하하…》

앞쪽에서 윤치석이 뽑아대는 건드러진 노래가락이 들려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러자 험담을 들으며 벙글거리던 달구지군들은 일제히 소궁둥이에 채찍을 먹이였다. 그들은 근거지에 보내는 후방물자운반에 동원된 농민협회원들과 그 영향하에 있는 사람들이였다.

이때 면장 전수원의 집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있었다. 전수원이 농민협의회의 지시를 받고 물자운반과 도강에 장애로 될수 있는자들을 끌어다가 모조리 술독에 처박아넣을 배심으로 돌잔치를 차린것이다. 손님들은 세방에 가득찼다. 제일 선선한 웃방에는 읍의 경찰들을 비롯한 권력자들과 유지신사들이 술상에 둘러앉았고 가운데방과 아래방에는 면사무소와 은행, 우편국, 역, 세관의 벼슬아치들이 빼곡이 들어앉아 떠들썩하니 마시고 먹어댔다.

전수원이 술병을 들고 아래방으로 내려가서 잔들에 술을 찰찰 넘치게 따라주자 그들은 환성을 올리며 면장의 건강과 행복을 축수하였다. 주색에 녹아 몸이 빼빼 마른 세관 서기는 희떱게 괴짜를 부려 주인에게 한잔 권하고 쩍 벌린 입을 술병밑에 대며 병채로 부어넣어달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전수원은 주저없이 그자의 입안에 술을 부어넣었다. 미친듯 한 환성이 터지는 속에 쏟아붓는 술을 다 넘구고난 놈은 두손으로 궁둥이를 철썩철썩 치며 닭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벼슬아치들은 머리로 벽을 찧기도 하고 서로 어깨들을 치며 좋아라 웃어댔다.

전수원이 가운데방을 지나 제일 웃방으로 올라갔을 때 그 방의 점잖은 손님들은 아직도 취흥에 잠기지 않고있었다. 방안공기속에는 싸늘한 기운이 떠돌았다. 모두 우선우선하여 례절을 차리면서 술을 몇잔씩만 들고 접시에 무둑히 쌓인 안주들은 거의 허물지 않았다.

전수원은 그 까닭을 인차 알았다. 다께가와라는 성을 가진 면경찰관주재소 소장이 표표한 얼굴에 눈알이 꼿꼿해서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하고있기때문이였다. 그의 코밑에 붙은 시커먼 나비수염에서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케 하는 랭기가 뿜어나왔다.

다께가와는 섭생에 철저하며 하루 세번 주재소뜨락에 나와서 체조를 하였으며 도장을 꾸리고 격검술을 장려할것을 계획하고있는 위인이였다.

전수원은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당직경관을 제외하고 올수 있는 주재소의 인원중에서 두명이 오지 않은것을 미루어볼 때 조마조마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두명중의 한자가 지주 서완오의 아들 서기태였다.

다께가와의 표정에 대하여 전수원이 못지 않게 불만인것은 몸이 뚱뚱하고 눈이 게슴츠레한 순사 나가노인것 같았다. 근무년한이 누구보다도 오래나 술과 권태, 우둔성때문에 승진하지 못하고 국경읍에서 밀도강자들과의 고달픈 싸움을 계속해온 그자는 허리를 구붓하고앉아서 안주그릇이며 술병들에 게걸스러운 눈길을 주다가는 무심결에인듯 잔을 잡고 천천히 맛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전수원은 그의 잔을 다시 채워주고는 다께가와며 문옆의 서완오 등을 둘러보며 태평스러운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퍽 오래전 일이지만 한때 여기에 금주동맹이란것이 무어졌더랬습니다. 에- 술의 해독성을 설교하여 사회적운동으로 양조업과 술판매, 음주를 금지하자는것이였지요. 시세와 류행에 민감한 한 총명한 량반이 서울에 올라갔다가 배워온것이랍니다.》

그의 이야기는 좌중의 주위를 끌었다. 다께가와의 눈알은 여전히 꼿꼿했으나 코수염밑으로는 보일듯말듯 한 미소가 지나갔다.

나가노는 눈을 침울하게 내리뜨고있었다.

《에-또, 그 금주동맹이란게 대단했습니다. 술집들을 들부신다, 주정군들을 불호령으로 닦아세운다, 강연을 한다.… 허, 이러니 그때는 정말 이 세상에 술이란게 아예 없어질것 같았습니다. 술군들, 아낙네들이 제일 좋아했습지요, 허허허…》

주독에 코끝이 시뻘건 금융조합 서기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철썩 내리치며 껄껄 웃었다.

《허허… 그랬을테지. 아무 집 네편네나 주선생하구는 지- 질색이니까…》

전수원은 술병을 들어 빈잔들에 골고루 술을 따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읍에서 점잖다는 로인님들은 금주동맹 사람들에게 찬탄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잘한다, 잘해.… 이제야 방정한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타났군. 어- 어- 전도가 유망해…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됐소- 엉? 술은 없어진게 아니라 그때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그 방정하고 전도가 유망하다던 친구들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어디 사회에 두각을 나타낸자들이 있습니까? 엥? 술은 남아의 혼백과 통하는것이어늘 술을 아주 부정해버리거나 주도를 거역해서는 남아장부로서 구실을 못하는가봅니다. 에- 동서고금에 남아호걸들치고 술을 한생의 벗으로 삼지 않은이가 어디 있습니까. 허허허…》

나가노가 술잔을 입에 대고 기울이다가 기침을 하는 바람에 술방울들이 안주그릇들우에 뿌리웠다. 전수원은 밖에 소리쳐 안주그릇들을 바꿔오게 하였다.

다께가와는 미간을 찌프리고 멸시에 찬 눈으로 목을 움츠러뜨린 나가노를 쏘아보았다.

《오이, 나가노! 약골이다나…》

그는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나가노에게 쑥 내밀며 강박하듯 눈을 부릅떠보였다. 나가노는 잔을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다께가와는 몇잔을 연거퍼 들이대며 《더… 더… 더.》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자기도 큰 잔으로 쭉 들이켜보였다.

두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전수원이 상밑에서 딩구는 종지를 상우에 척 올려놓고 찰찰 넘치게 술을 붓고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켜버리고 손바닥으로 입술을 씻어보였다.

《오- 면장님 겨루자는가?》하고 다께가와는 그때까지 차고있던 칼을 옆에 떼놓고 팔소매를 걷어올렸다. 그자는 술마시기를 검도시합으로나 여기는것 같았다.

옆에 앉은 은행리사가 종지 두개를 상우에 가지런히 놓고 술을 붓기 시작하였다. 박수가 터지고 응원이 시작되였다.

《소장님!》

《면장님!》

《쭉!》

《쭉!》

이리하여 검도시합의 칼부림처럼 놈들의 피를 끓어번지게 하는 술마시기시합이 벌어졌다. 가운데방에 있던자들도 문지방을 넘어와서 박수를 치며 떠들어댔다.

《면장님!》

《소장님!》

《쭉!》

《쭉-!》

나가노를 비롯한 나머지 놈들도 그 틈에 술을 마구 퍼마셔 온 방안이 취흥의 미친듯 한 광기에 들썩거렸다.

전수원은 다께가와의 팔을 끌어 일으켜세우고 놈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구석쪽으로 밀려난 서완오만이 정신이 점점 또릿또릿해져서 멸시에 찬 눈길을 전수원에게 흘끔흘끔 던졌다.

(미욱한 자식, 잘 논다. 유격대가 물건너에 들랑날랑하는판에… 에- 저 자식이 저렇게 미련한 놈이였던가. 죽을 날이 다 되니 환장을 한겐가?… 이런 술판을 벌린것부터가 미친짓이야.… 이번엔 네가 첫째 처단감이다. 이 서완오가 아니라 네야. 흐흐흐… 좋다, 마셔라, 부어라, 추어라. 그래두 으뜸가는 현자는 여기 있노라, 흐흐흐…)

다께가와가 술상에 이마를 붙이고 딸꾹질을 하다가 마루로 달려나갔다. 전수원이 이윽고 마루로 나가 그를 방안에 떠밀어들여보내고 돌아서는데 마당으로 손에 보총을 든 순사가 헐떡거리며 달려들어왔다. 서기태였다. 그의 얼굴은 험악하게 이그러지고 눈은 끌날처럼 번뜩였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면장님, 소장님을 불러주시오.》

전수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마당으로 달려내려가 그의 말을 잡아끌었다.

《어- 반갑소. 어서 들어가기요. 부친께서도 와계시오, 어서. 자, 어서!》

서기태는 팔을 홱 잡아뽑으며 주재소장을 불러내달라고 고집스럽게 요구했다. 전수원은 그의 앞을 막아서서 비틀거리며 팔을 내저었다.

《소장님도 나도 다 고주망태가 됐어. 유격대라도 건너왔는가? 왔으면 이 면장한테 보내… 한잔 멕이고 얼려서 들여보내지…》

서기태는 목을 길게 빼들고 란장판이 된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부르르 몸부림쳤다.

전수원은 비칠거리며 그의 팔을 다시 잡아끌었다.

《자, 서순사님 어서 들어갑시다!》

《젠장, 사포동쪽에 적정이 나타났단 말이요!》

서기태는 그를 와락 밀쳐버리고 마당에서 달려나갔다. 엉덩방아를 찧었던 전수원은 툭툭 털고 일어나 마루에 올라가 기둥을 붙잡고 비칠거리며 부엌쪽에 큰소리로 호령하였다.

《야- 통닭을 들여오너라, 통닭을- 안주가 다 동이 났다》

그것은 부엌에서 아낙네들속에 끼여 지지고 볶는 일을 하는 보금에게 주는 비상신호였다.

뜬김이 뽀얗게 서린 부엌간에서 보금이 앞치마를 풀고 저고리고름을 바로 매며 밖으로 나가니 전수원은 벌써 울타리밖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취기에 얼굴이며 눈이 시뻘개진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속삭였다.

《놈들이 눈치챘소. 빨리 사포동여울로 달려가오. 도강시간을 앞당겨야겠소. 길을 아오?》

《예.

《서기태놈이 왔다갔는데 면주재소놈들은 다 저렇게 너부러졌으니까 파출소들에 전화를 걸게요!》

보금이는 주먹을 쥐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40분후 사포도강장의 모래불에 다달은 그는 전장원을 찾아 전면장의 말을 전하였다.

그의 보고를 들은 전장원은 놀라서 소리쳤다.

《뭐요? 그럼 파출소놈들이 곧 달려들겠구만!》

《괜찮소, 괜찮아.…》하고 누긋한 목소리로 말하며 김중권이 그의 옆으로 나섰다. 그는 태연하게 웃는것 같았다.

《제까짓놈들이 겁이 나서 함부로 접어드오? 내가 저 갈림길에 나가 망을 볼테니 빨리 물건너에 신호해서 도강을 시작하오. 허참, 약에 감초처럼 적구공작에서는 언제나 이러루한 일이 생긴다니까…》

보금이는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안고 어둠속에 밀어지는 김중권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강바람에 흩어져내린 머리칼이 눈앞에서 나붓겼다. 웬일인지 풍인동의 달밤에 그가 부르던 석쉼한 노래소리가 가슴속을 짜릿하게 누비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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