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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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동도강장의 여울과 기슭에는 순식간에 사람사태가 일었다.

담배불신호를 보고 말들을 끌고 강을 건너온 근거지인민들은 숲속에서 짐들을 지고 달려내려간 온성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져 왁작 끓어번졌다.

《근거지동무들, 수고했습니다.》

《온성동무들, 안녕하시오?》

《하- 이렇게 만나니 친척들을 만난것 같소다, 하하하!》

《우리야 친척하구두 아주 가까운 3, 4촌간이지오다.》

《에키 이사람, 촌수가 너무 머네. 큰집, 작은집사이네. 형제지간이네.…》

《허허허…》

《하하하…》

서로 손들을 붙잡고 떠들어대는 속에 그사이 쌓이고쌓였던 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뜨겁게 오갔다.

기쁨과 감격, 눈물과 웃음과 롱말들속에서 온성사람들은 근거지사람들에게 짐들을 넘겨주었다. 그들은 서로 도우며 매생이와 짐배와 말잔등에 짐짝들을 실었다.

《자, 빨리!》

《빨리!》

등짐을 지는 사람도 많았다. 달려지나가던 처녀가 등짐을 지고 일어서려는 유격대원을 돌아보더니 머리수건을 훌 벗어 그의 멜바밑에 폭신하게 괴여준다.

《고맙소. 이름이 뭐요?》

《호호호…》

처녀는 붐비는 사람들속을 빛살처럼 누비며 사라진다.

바위옆에서는 한 어머니가 유격대녀대원에게 재봉침을 안겨준다.

《어머니, 집에서 쓰시던게 아닌가요?》

《일없소. 우리는 일없소. 가져가오. 집에 끌끌한 아들자식이 있으면 장군님께 바치겠는데 지난봄에 장질부사로 죽었다오. 아재, 이걸 내 아들루 여기구 잘 살펴주오.》

녀대원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어머니는 그의 중발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흐느낌소리, 속삭임소리…

유격대원들이 짐을 실은 말들을 끌고 달려가서 여울물에 들어선다. 첨버덩첨버덩… 물이 튀여오르며 유리쪼각처럼 번쩍거린다.

《소금가마니들은 짐배로-》 누군가의 나직한 웨침소리가 붐비며 설레이는 사람들의 머리우로 날아갔다. 주영백의 목소리이다. 소금가마니들을 등에 업고 두세사람씩 짝을 무어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속에서 한사람이 무엇에 발을 걸채여 앞으로 푹 거꾸러진다. 소금가마니가 모래불에 푹 박힌다. 사람들속에서 주영백이 나타나서 넘어진 사람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한다.

《아, 아- 덤베지 말라는데. 이게 어디서 온겐지 아오?》

넘어진 사람은 탓하지 않고 벌쭉 웃어보이며 소금가마니를 다시 업는다. 주영백이 소금가마니를 그의 등에 올려주고 돌아서다가 한 유격대원과 힘껏 부딪쳤다. 눈앞에서 불꽃이 펑끗 하고 튄다. 얼굴이 두리두리하고 몸매가 다부진 대원이다.

《하, 이거 미안합니다.》

《피차에… 허허허…》

《어디 상하지 않았습니까?》

주영백은 이마를 슬슬 만지며 빙긋이 웃는다.

《닭알이 생겼는데…》

《예?》

《기념으로 건사하지요. 허허허…》

《저, 그런데 풍인동에서 온분들이 어디 계십니까?》

《풍인동이요? 저- 쪽에 가보십시오.》하고 주영백은 무성하게 자란 버드나무숲쪽을 가리켰다.

그 유격대원은 뛰여다니는 사람들속을 누비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마동호였다. 근거지의 나날에 그처럼 온성을 그리던 창억은 물을 건너오자 사사로운 감정은 아주 묻어버린듯 사람들속을 누비며 짐짝운반에 정신이 없었다. 너무 체면을 차린다고 생각한 마동호는 장룡산중대장에게 창억의 경우를 슬쩍 비쳐봤다. 중대장은 여기에 그의 가시아버지도 와있을지 모르니 사람들속에서 찾아보고 없으면 소식이라도 알아오라고 일렀다. 의협심이 많고 또 이런 일에 소질이 있는 마동호는 정신없이 뛰여다니며 윤치석이와 보금이를 찾았다.

버드나무밑에 묻었던 짐짝들을 파내놓고 운반해가던 풍인동사람들은 마동호의 말을 듣고 펄쩍 놀라며 보금이와 그의 아버지가 여기 와있다고 하였다.

《어디 계십니까?》

《짐을 지고 짐배쪽으로 갔는데 인차 옵니다.》

동호는 기다릴수 없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총기가 밝게 생긴 청년이 동호의 손을 잡고 이끌어갔다. 달려가는 그들의 앞으로 짐들을 지고 이고 메고 혹은 맞들고 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마동호와 청년은 도중에서 멜바를 어깨에 걸고 마주 걸어오는 윤치석과 만났다. 키가 작달막한 청년의 말을 듣자 윤치석은 마동호를 사위이상으로 반겨하며 손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아-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여기 왔단 말인가?》

《예, 저-기 있습니다. 갑시다!》

윤치석은 두손으로 옷깃을 툭툭 털며 따라나섰다. 그들은 여울기슭의 바위옆에서 창억이와 만났다. 그러나 이 상봉은 동호를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동호를 만나 그처럼 기뻐하던 로인이 사위를 눈앞에 보게 되자 별스럽게 위엄을 차리며 뚝해졌다.

창억이는 인차 모자를 벗어쥐고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엉, 님잔가?》

어머님이랑 모두 무고하십니까?》

《음… 우리야 그럭저럭 지내지… 그래 량친께서는 다 무고하신가?》

《예-》

《음…》

아버님, 지난날은 제 처신을 잘못해서… 얼마나 노여웠습니까?》

그러자 로인은 가슴에 얹혔던것이 쑥 내려간듯 얼굴이 훤해졌다.

《이거 이런 소리 싹 그만두게. 진세형님도 그렇구 나도 그렇구 옛날부터 쬐쬐하지 않았네. 자네를 만나니 정말 기쁘네.》

《저희들은 장군님이 돌봐주셔서…》

《얘기를 들었네… 다 들었네… 나는 장군님을 한번도 만나뵈온 일은 없지만 내내 그분 생각이네. 이제 들어가서 장군님을 만나면 인사를 꼭 전해주게. 온성에 있는 한 무식한 농군이 만수무강을 축수하더라고… 이 사람! 내 심정까지 보태서 장군님을 잘 받들구 모셔주게. 알겠는가?》 로인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갈리였다.

《예… 아버님!》

《근거지에 왜놈들이 접어드는 모양인데 장군님께서 부르신다면 내 병정이 돼서 달려들어가겠네!》

창억이는 로인의 막돌같은 손을 뜨겁게 잡아쥐였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보금이 아버지곁으로 다가섰다. 사위와 딸을 곁에 가지런히 세우게 된 윤치석은 딸의 동실한 어깨에 손을 척 올려놓으며 목이 메여 말하였다.

《허- 이런데서 다 만났구나! 사진이라도 한장 철컥해서 남겠으문 좋겠다. 허허허…》

이때 뒤에서 배가 떠난다 하는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창억이와 보금이 그리고 마동호는 로인과 헤여져 물가로 달려가서 짐배에 뛰여올랐다.

윤치석은 요긴한 말을 채 하지 못한듯 그리고 무엇인가 후회되는것이 많은듯 물가로 달려가서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얘들아- 잘 가거라!》

배는 기슭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로인의 모습은 기슭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였다. 이윽고 사람들은 흩어지며 강뚝 저쪽의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창억은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온성사람들이여, 잘 있으라!)

그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여울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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