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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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에 번쩍거리는 물결을 헤가르며 여러척의 배들이 대륙쪽의 대안으로 가고있다.

물살이 빠른 여울에서는 군마들과 사람들이 건너가고있다. 성미가 급한 말들은 잔등에 짐 두짝씩 올려놓고도 앞서려고 물결을 차며 달려나가는가 하면 게으른 놈들은 깊은데로 들어서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린다. 짐을 지고 따라오는 사람들은 말궁둥이에 매를 내리고 앞에서는 고삐를 잡아끈다. 번쩍거리는 물결우에 말울음소리가 달빛과 함께 부서진다.

짐을 지고 이고 멘 사람들은 서로 부축하기도 하고 잡아끌어주기도 하면서 사나운 물살과 싸우며 한걸음, 두걸음 발을 옮겨디디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물결소리, 짤막하고 조심스러운 말소리, 말들이 첨버덩거리는 소리… 벌써 강복판에 들어선 말들은 물결우에 잔등만 보인다.

창억이 탄 배에서는 두사람이 마주서서 노를 힘있게 저어나갔다. 배는 처절썩처절썩 물결을 차며 무겁게 움직여나간다.

이윽고 누군가 이물쪽에서 기겁한 소리를 질렀다.

《물이 넘는다- 배전으로 물이 넘는다-》

다른 목소리가 웨쳤다.

《짐을 너무 실었어- 에익, 도깨비들!》

창억은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다가 물속으로 뛰여내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뛰여내렸다. 무게가 덜어지자 배는 한결 가볍게 떠오르는듯 하였다. 아직도 배에 남아있는 마동호가 배전을 붙잡고 물결을 내려다보며 부르짖었다.

《여- 창억이- 난 헤염칠줄 모르네, 어찔가… 어찔가…》

물장구를 치며 헤염치는 창억은 동호에게 소리쳤다.

《왔다갔다하지 말아! 짐짝에 가만 붙어있어!》

누구인가 뒤에서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웨쳐댔다.

《여- 동호-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그럼 가벼워지네-》

창억은 입으로 물을 푸푸 내뿜고 물결우에 팔을 힘있게 내저으며 헤염쳐나갔다. 앞배에서도 사람들이 뛰여내렸다. 배둘레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둥둥 떠있다.

눈앞에서 설레이는 물결 저쪽에 바라보이는 배들과 말들과 사람들… 창억은 밑에서 힘찬 기운이 자기 몸뚱이를 자꾸 떠밀어올리는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물속에 잠그었다가는 수면우로 가슴을 솟구쳐올리며 힘차게 헤염쳤다.

문득 뒤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창억이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떠나온 기슭의 저쪽어둠속에서 화광이 번뜩이며 폭음이 터져올랐다.

 

×

 

짐배들과 말들과 사람들이 달빛이 부서지는 여울복판에 거멓게 널려서 어른거리고있을 때 두명의 순사가 길을 따라 달려왔다.

길가의 아름드리 버드나무뒤에 붙어서있던 김중권은 놈들을 지나보내놓고 뒤로부터 달려들어 쏘아제끼였다. 그리고 강냉이밭속을 누비며 산기슭쪽으로 올리뛰였다. 뒤에서 짐승의 멱따는듯 한 비명이 터져오르고 총소리가 울렸다. 한놈이 빗맞아 공포를 쏘며 신호하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놈의 명줄을 마저 끊어놓으려고 다시 돌아서 내려가다가 길쪽에서 나는 말울음소리를 듣고 흠짓 놀라 멎어섰다. 말발굽소리들이 땅을 울리고 귀에 선 고함소리들이 들려왔다.

김중권은 다시 돌아서 산으로 올리뛰였다. 동솔이 우거진 나지막한 산봉우리에 오른 그는 여울쪽부터 바라보았다. 희푸르스름한 어둠속 저 멀리에 바라보이는 여울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강냉이밭 저쪽 길에서는 한개 분대가량의 기병들이 말에서 뛰여내리고있었다. 국경경비도로로 지나가던 기마순찰병들이 련락을 받고 달려온것이 틀림없었다. 놈들은 순사들을 안아일으키고 정황이 나타난 방향을 묻는듯 꿱꿱 소리치고있었다.

빗맞은 놈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알수 없다. 김중권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덧저고리속에 두른 탄띠를 쓰다듬어봤다. 탄알 두탄창과 수류탄 한개밖에 없었다. 이제 근거지방위에 필요한 전략물자들이 왜놈들의 포위에 들어 전부 략탈당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주저없이 권총을 쥔 손을 애솔가지우에 내뻗치고 길바닥에서 어물거리는 기병들을 향하여 어방대고 쏘았다. 말들이 바스러지는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뛰여오르고 기병들은 강냉이밭속으로 뛰여들어 꿱꿱 소리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올라왔다. 강냉이밭은 와스스와스스 설레였다.

이때 검은 그림자 여럿이 김중권의 량옆으로 날아들어 아래에 대고 몰사격을 퍼부었다. 전장원, 주영백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의 청년 셋이였다.

김중권은 전장원에게 버럭 소리쳤다.

《정신이 있소? 빨리 집으로 돌아가오. 동무들은 로출돼서는 안되오!》

《혼자서 어떻게 당해냅니까?》

《내 걱정은 말고 빨리 피하오! 빨리! 동무들은 발견돼서는 안되오. 근거지에서는 이제 큰 싸움이 벌어지겠는데 국내조직들이 다 제대로 살아있어야 전략물자들을 보장하지 않겠소. 때문에 동무들은 드러나서는 안된단 말이요.》

《챠, 이거 괜찮다는데. 저놈들이 부엉이눈이라고 얼굴을 일일이 알아보겠습니까? 다 두만강을 건너온 유격대로 알지요!》 이렇게 말하며 전장원는 배포유하게 웃어까지 보였다.

김중권은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자기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그때문에 목구멍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이 동무가 사령관동지께서 왕재산에까지 친히 나오시여 조직해주시고 지도를 거듭해주신 온성반유격구의 중요성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 앙칼진 비명을 지르며 날아드는 총탄에 나무가지들이 잘리워 우수수 떨어졌다.

다음순간 김중권이 무엇이라고 부르짖으며 어떻게 뿌리쳤는지 전장원와 주영백은 산봉우리뒤로 허궁 나가떨어져 잡관목덤불속에 딩굴었다.

김중권은 혼자서 적을 맞받아 달려내려가다가 방향을 꺾어 산중턱을 에돌며 쏘고 또 쏘면서 놈들을 유인하였다. 적들은 총을 쏘아대며 뒤쫓아왔다. 윙윙 울부짖으며 귀전을 스쳐가는 총탄들에 얼굴이 데는듯 하고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날아가는것 같았다. 숲속을 누비며 종성방향으로 한동안 올리뛰던 그는 어느 산기슭의 선바위옆에서 무엇엔가 흠칫 놀라 뚝 멎어섰다. 그는 바위에 맥없이 기대여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에 뜨끈하고 끈적거리는것이 만져지는 순간 화약내가 코를 찔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였다. 모진 마음을 먹고 손을 저고리속에 밀어넣어보니 옆구리의 질벅질벅한 피속에서 탄알이 뚫고 지나간 상처가 만져졌다.

그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도강장쪽을 돌아보았으나 산이 가리워 사포여울쪽은 바라보이지 않았다. 먼 총소리마저 들리지 않는것으로 보아 전략물자들이 무사히 도강한것 같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두만강의 물결은 지척에서 주절거렸다.

그는 내의를 찢어 상처를 동여맨 다음 왼팔굽으로 피가 나오지 못하도록 옆구리를 꽉 누르고는 물결소리가 들려오는쪽으로 비칠거리며 걸어갔다.

두만강의 물결은 달빛을 받아 차겁게 번들거렸다. 그는 한걸음 또 한걸음 강복판으로 걸어들어가다가 갑자기 깊은 곳에 풍덩 빠졌다. 물결이 가슴을 치는 순간 발밑에서 모래바닥이 아득한 밑으로 허물어져내리는듯 하면서 몸이 물살에 밀려 둥둥 떠내려갔다. 그는 왼팔굽을 옆구리에서 떼지 않으려고 마음을 쓰며 한팔로 첨버덩거리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 왼팔까지 휘두르며 헤염을 쳤다. 그는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물속에 번지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가닿아야 할 기슭이 점점 멀어지는듯 하고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뿌연 안개속에서 노랗고 파란 반점들이 춤을 추었다.

그의 몸은 물살에 밀려내려가며 점점 가라앉아내리였다. 그지없는 고요속에서 팔다리를 서서히 허우적거리던 그는 갑자기 무엇에 놀랐던지 뿌리치며 반발하듯 모래바닥을 걷어차고 팔을 마구 휘저어대였다. 그의 몸은 다시 솟구쳐오르며 앞으로 떠나갔다. 강기슭 저쪽에서 노을이 황황 불타오르는 하늘을 등지고 동지들이 달려온다. 한흥권, 박훈, 최춘국, 리재명, 김창억 그리고 장룡산이도 팔을 내흔들며 뛰여온다.

(동무들- 근거지에 왜놈들이 달려들었소?- 왜놈들의 공세가 시작됐소?- 원호물자들을 빨리 유격대와 인민들에게 나눠주오- 힘들을 내게 나눠주오-)

달려오는 동지들속에서 림성실이 제일 앞장에 섰다. 여전히 검정치마저고리… 목도리가 나붓긴다. 어느덧 강가로 달려온 성실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내려다본다.

(성실동무, 지원물자들속에 내가 따로 싸넣은 양복천과 솜이 있소. 겨울이 다가오는데 그걸로 장군님 군복을 짓소. 알겠소? 들었소?)

(찾아봤는데 없던데요?)

(왜 없겠소. 내가 따로 싸넣었는데.)

(없어요!)

(있소! 있다는데!)

그럼 빨리 나와 찾아달라고 림성실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는 처음에는 한손으로, 다음에는 두손으로 자기에게로 내민 그 손길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놓지 않으려고 온힘을 두손에다 모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문득 림성실에게 미안한 일이 한두가지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을 찢었다. 다정한 이야기를 하고싶어할 때 다정한 이야기를 끝없이 해줬더라면… 노래를 부르자고 할 때 한껏 노래를 불러주었더라면… 그저 만나면 꾸중부터 했지. 아, 왜 그랬던가, 왜 그랬던가! …

두만강가를 오르내리며 김중권의 종적을 찾던 장룡산이와 김창억은 사포여울에서 한 십리 더 올라가 무인지경의 강기슭을 헤매다가 소스라쳐 놀라 뚝 멎어섰다.

후미진 강굽이의 물속에 드러난 여러 가닥의 나무뿌리에 옷같은것이 걸려 너울거리고있었던것이다. 눈여겨 들여다보니 사람이였다. 김중권이였다.

창억이 정신없이 뛰여들어가보니 김중권의 몸에서는 아직도 온기가 느껴졌다. 뒤따라온 대원들까지 물속으로 뛰여들어 그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두손이 한가닥의 나무뿌리를 어찌나 굳세게 틀어잡았는지 도저히 건져올릴수 없었다. 돌처럼 굳어진 손가락들은 좀처럼 풀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하는수없이 도끼로 나무뿌리를 찍어버리고 그를 물속에서 건져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모두 달라불어 상처를 싸매고 물을 토하게 한 다음 인공호흡을 조심스럽게 시키니 알릴듯말듯 맥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김중권이를 담가에 눕혀 싣고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달리고 또 달리였으나 셋째 섬을 좀 못미처 아주 숨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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