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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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원들이 김중권이를 메고 마촌에 도착하였을 때 림성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김중권이와 림성실의 관계는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다.

구정부로 달려온 사람들도 고인에게 영결의 묵상을 하고 나오다가는 그가 해놓은 일의 크기를 말해주듯 마당에 산더미같이 쌓인 원호물자의 무지를 쳐다보며 눈물에 젖어 혀를 차거나 무거운 한숨을 짓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그 원호물자들을 근거지로 들여보내기 위해 목숨바친 젊은 투사는 남모르는 열정으로 사모해온 약혼녀의 눈물에 가슴도 적셔보지 못한채 영별의 시각을 기다리며 누워있었다.

장군님께서 구정부마당으로 달려들어오신것은 아침 10시경이였다. 마반산의 유격대진지에 나가 적정을 확인하시다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그이의 행전이며 팔굽에는 전호가의 흙이 누렇게 묻어있었다.

현관과 사무실에 빼곡이 들어선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며 그이께 길을 내드리였다.

김중권의 몸에는 그때까지 붉은 기발이 덮여있었다. 비바람에 씻겨 색이 날고 얼룩이 진 기발이였다. 그것은 셋째 섬을 지나올 때 그곳 일군들이 자기네 촌정부의 지붕에서 나붓기는 기발을 내려 덮어준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군모를 벗고 김중권의 옆에 꿇어앉아 기발을 들치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김중권의 얼굴은 좀 부어보이고 눈은 반쯤 내리감겼다. 아직도 물기가 느껴지는 머리칼에는 강바닥 모래가 몇알 묻어있었다.

그이께서는 손으로 눈을 감겨주시고 꽃나이청춘을 자랑하던 칠흑같은 머리칼을 거듭거듭 쓰다듬어 모래알을 털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김중권의 얼굴에 기폭을 도로 덮어주시고 그옆에 머리를 떨구고 오래동안 움직임없이 앉아계시였다.

시간의 흐름조차 멎는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문득 얼굴을 드시고 옆에 선 사람들을 둘러보시다가 격하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성실이가 왜 보이지 않소?》

옆에 서있던 리재명이 그 말씀에 비분이 울컥 터져올라 머리를 외로 돌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굵은 눈물방울들이 경련이 이는 볼이며 옷자락에 후두둑 뿌려졌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누런 손수건을 얼른 꺼내 눈이며 코밑을 훔치고는 벌겋게 피진 눈으로 그이께 좀 조용히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말하였다. 인민혁명정부 구위원회 회장이 된 이후로는 외모를 갖추는데서도 각별한 주의를 돌려온 그였건만 오늘은 모색이 말이 아니다. 머리칼은 되는대로 헝쿨어졌고 어떻게 된 노릇인지 양복저고리 옷단추도 둘이나 떨어져나가 벌건 가슴이 들여다보인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조용한 뒤울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성실동무는 지금 서대포에 나가있습니다.》

《왜 거기 나가있습니까?》

《아동단학교 아이들 겨울옷 만드는 일에 부녀회원들을 동원하느라고… 당장 눈이 오겠기에.》

《그 동무한테 알렸습니까?》

《너무 기막혀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달려와도 기막혀서 어떻게 알려줍니까…》

그이께서는 흐려지신 눈으로 재빛하늘을 묵묵히 쳐다보시였다.

《오면… 저한테 보내십시오!》

뒤울안에서 나오신 그이께서는 마당에 모여선 사람들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시고 곧바로 사령부로 올라가시였다.

방안에 들어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성거리시던 그이께서는 배낭속에 깊이 간수했던 사진을 책상우에 꺼내놓고 그앞에 오래동안 머리를 숙이고 앉아계시였다. 언제인가 십리평에 가서 찍게 하신 사진이였다.

사진속의 김중권이와 림성실은 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앉아있다. 림성실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활짝 피웠고 김중권은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졌지만 한쪽입귀에 보일듯말듯 한 미소가 어려있다.

그이께서는 문득 책상모서리를 잡고 몸을 떠시며 비분을 터뜨리시였다.

《중권이!》

오후에 입술이 새까맣게 탄 전령병이 달려들어와 부녀회장동무가 온다고 알리였다.

림성실은 새로 지은 장군님의 통버선을 가슴에 안고 들어왔다. 달려오느라고 발그무레 상기된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그는 말없이 통버선을 아래목에 놓고는 어리둥절해진 눈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는 눈길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성실이를 옆에 앉히시고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다가 그를 조용히 돌아보시였다.

림성실은 자기 운명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것을 막연하게 느끼는것 같았다.

《오다가 누구를 만났소?》

《리재명회장동무를 만났는데 부르신다고 해서…》

《또 누구를 만났소?》

《창억동무를 만났습니다. 먼발치에서 인사를 하고는 어째 그러는지 피하는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방바닥을 내려다보시며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큰 한숨을 쉬시였다.

《성실동무, 혁명투쟁과정에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막상 당해놓고보니 어떻게 말했으면 좋겠는지… 아, 기막힌 일이요.…》

그이께서는 다음말을 어떻게 하였는지 모르시였다.

림성실은 놀란 눈으로 그이를 돌아보았다. 크게 떠서 불꽃처럼 타는 그의 눈은 잘못 전달된 소식이 아닌가, 왜 하필 그이가 그렇게 됐겠는가고, 다시 알아봐야 될 일이 아닌가고 완강하게 주장하며 요구하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꽉 잡으시였다.

그이의 머리칼이 이마우에 흩어져내렸다.

《나도 믿어지지 않소. 이게 거짓이고 사실이 아니였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김중권동무는 지금 저 구정부사무실에 누워있단 말이요!》

그이의 절통한 음성이 방안공기를 흔들었다.

림성실은 아래입술을 깨물고 어딘가 먼 앞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것 같았다. 그의 속눈섭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그것은 피할길 없는 불행을 막아보려는 마지막저항의 눈물이였다.

《두만강에서… 어제밤 그렇게 됐소.…》

장군님께서는 김중권이 희생된 경위를 말씀해주시였다.

림성실은 저고리고름을 쥐여 눈을 가리우며 소리없이 울었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국내 혁명조직들에서도… 최동무를 오래오래 잊지 못할게요. 성실이… 여기서 숨을 좀 돌리오. 좀 있다가 내가 동무해줄테니 같이 구정부로, 김중권동무한데로 가자구.》

장군님께서 그가 마음놓고 비분을 터칠수 있도록 방을 내주시고 밖으로 나가신지 얼마 안되여서였다.

성림이 밖에 내다 거풍을 시킨듯 한 이불을 안고 들어와서 웃목에 내려놓고 나가려다가 림성실쪽을 돌아보며 울먹이였다.

새 이불이다. 언제인가 림성실이 장군님께 만들어왔던 그 명주이불이다. 한번도 덮어보지 않은것 같다.

림성실은 의아한 눈으로 성림이를 쳐다보았다. 어린 전령병은 외면하여 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조용히 말했다.

사령관동지는 이 이불을 김중권동지한테 주자고 하시며 새것대로 간수해두라고 했어요. 누기가 들세라 내내 거풍을 시켜왔는데…》

전령병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휘뿌리며 달려나갔다.

그가 나간 다음 이불을 쓸어만져보던 림성실은 약혼사진을 찍도록 배려하시고 자신께서 덮으셔야 할 이불까지 덮지 않고 간수해두신 그이의 심정이 가슴가득 안겨와 이불등에 얼굴을 묻으며 쓰러졌다.

마당가를 거니시던 장군님께서는 방안에서 터져오르는 비통한 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추시고 흐려진 안색으로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불에 시꺼멓게 탄 먼 산발들에서는 광풍이 휘몰아치는지 재가루가 뿌옇게 날아올라 하늘가를 덮었다. 어딘가 먼 서남방향에서는 포성이 구궁- 구궁- 울려왔다.

저 아래 소왕청하우의 하늘에서는 메새 한마리가 바람속을 날아돌고있었다.

한동안이 지나서 림성실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었고 옷매무시도 산뜻하게 바로잡았다. 얼굴은 피기가 가셔져 해쓱해지고 눈은 약간 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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