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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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를 데리고 떠나시였다. 림성실은 그이의 곁에서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걸어가며 저고리고름의 매듭도 자주 만져보고 동정에도 손을 가져가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성실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보니 장룡산, 박태화, 김창억, 리재명, 김진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입관준비를 하고있었다.

《아아, 조심조심!》

《자, 놓고!》

장룡산이 캄캄하게 질린 얼굴로 장군님을 돌아보며 김중권동지를 그대로 묻을수 없다고 오풍헌이를 비롯한 마을농민들이 저렇게 관을 짜왔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고마운 일이라고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시였다.

림성실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여 그이의 뒤에 서있었다.

리재명이 림성실의쪽을 흘깃 돌아보는것 같더니 눈물이 가득 어린 눈으로 장군님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은 입관을 시작해도 좋겠는가고 물었다.

그이께서는 림성실의 더운 숨결을 등뒤에 느끼시며 좋도록 하라고 손을 저어보이시였다.…

절통한 비감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한흥권이 꽁무니에서 쇠마치를 빼들자 손자귀를 쥔 오풍헌이도 덧저고리주머니에서 대못을 꺼내 입귀에 물었다.

이때 장군님의 뒤에서 비통한 웨침소리가 터져올랐다.

《잠간만!》

어느 사이에 달려갔는지 림성실이 쇠마치를 든 한흥권의 앞에 막아서서 절절하게 부탁하였다.

《좀 기다려주세요.》

그리고는 사람들을 헤집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림성실은 5분도 못되여 돌아왔다.

가슴앞에 모아쥔 그의 두손에는 푸른 공단천으로 기운 담배쌈지가 들려있었다. 쌈지에는 진달래꽃 두송이가 빨갛게 피였다. 이번에 김중권이 온성에서 돌아오면 주자고 남몰래 기워둔것이다.

림성실은 관으로 천천히 다가가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고 김중권의 얼굴을 정겹게 들여다보다가 단추들이 바로 채워졌는가 손으로 더듬어보고 옷깃을 쓸어만져 잘 여미여준 다음 담배쌈지를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성실이는 말없는 행동으로써 자기가 그의 애인이였으며 안해로 될 녀성이였다는것을 세상에 자랑하는듯 하였다.

문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박현숙이와 윤보금이 손으로 입을 싸쥐고 흐느껴울었다.

리재명이 성실이앞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고 머리를 떨구며 황소같은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부녀회장동무!》

방안은 흐느낌소리로 가득차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이 번들거렸다.

한시간후 큰배나무골의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추도문을 읽는 리재명의 비장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에 젖어들고 영결의 조총소리가 하늘에 메아리쳐오를 때 림성실은 땅에 쓰러져 흙을 그러쥐고 목놓아 울었다.

(둘이서 장군님을 잘 모시자고 그렇게 다짐하고서 혼자 먼저 가는가요! 중권동무의 뜻을 받들어 한목숨을 다 바쳐 장군님을 끝까지 모시겠어요. 부디 안심하고 고히 잠드세요!)

렬사의 묘앞에 세워진 조촐한 패말에는 생전에 그의 군모에서 빛나던 오각별이 새겨졌다.

림성실은 장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도 묘옆에 쪼그리고 앉아 두손으로 봉분의 흙을 쓸어만져 고르롭게 펴고 다독이며 정성스레 다져주고있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은 안식을 모르고 열정에 끊던 심장을 편안히 잠재우려고 있는 정성을 다 기울이는듯 하였다.

그를 벗하여 남으신 장군님께서는 그 모습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묘옆을 돌아가시며 봉분의 흙에서 잔돌이나 풀뿌리들을 치워버리고 손으로 그 자리들을 꾹꾹 눌러주시였다.

산기슭에는 고요가 흘렀다.

그이께서 허리를 펴며 손을 터시는데 림성실이 조용히 얼굴을 돌렸다. 그의 볼에는 눈물방울들이 맺혀있으나 부석부석해진 얼굴에는 놀랍게도 밝은 빛이 보일듯말듯 어렸다.

그는 이 하루사이에 마음이 더 굳세여지고 속이 넓어진듯 흔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정말 오손도손하게 지낸적이 별로 있은것 같지 않아요.》

성실이는 행복한 지난날을 더듬는듯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이런 말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제야 떠나간 동지인데 일이 있나요. 체육대회가 있은 며칠후에 빨래를 했는데 장군님 속적삼이 어찌나 땀에 절었는지 잔등이 삭아떨어졌어요. 그걸 알고 어찌나 꾸짖는지 한흥권동지랑 리재명회장동지랑 다 모여놓고 회의를 하자고 하겠지요.… 그 성미에 편안히 누워있겠는지 장군님,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모두 맘들을 의지하고있는데 그러다가 눕기라도 하시면 어찌겠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앉아 그를 잠재우려는듯이 손으로 봉분의 흙을 정성스레 다독이였다. 그이께서는 손을 천천히 들어 얼굴을 가리우고 조용히 흐느끼시였다.

 

×

 

《아까운 동지는 가고 제같은건… 제따위 쓰레기는 이렇게 펀펀히 살아있습니다!》

최형준은 지원물자무지에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고 비분을 터뜨리면서 자기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지원물자들의 분배를 보아주시려고 구정부에 내려오셨던 장군님께서는 그의 어깨를 흔들며 달래시였다.

《좀 조용하오. 저것 보오, 물자 타러 사람들이 오고있지 않소. 듣겠소. 진정하오.》

그러나 그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떨며 오열을 삼키지 못하였다.

《저는 김중권동지한테 죄를 진놈입니다. 죄를 졌습니다! 지난 이른봄 왕재산으로 나갈 때도 저는 그의 앞을 막아섰더랬습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였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로 반대했지만 속으로는 그 원정이 실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로 처음 오셔 그토록 타이르고 가르치셨지만 저는… 저는… 조선혁명의 립장에 철저히 서지 못하고 우리 인민을 몰라봤습니다. 그때 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지원물자들이 들어올수 있겠습니까. 국내에서 지원물자들이 들이닥치고 김중권동지가 희생되여 들어오자 저는 정말 괴로왔습니다. 량심이 저려나 사람들앞에 얼굴을 내밀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제 보잘것 없는 일생을 다 돌이켜보게 됐습니다.…》

그의 숙인 얼굴에서는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김중권의 혁명정신이 사람들을 이렇게 반성시키고 분발시킨다는 생각이 드시여 가슴에서 슬픔이 한결 덜어지시였다. 그리고 한편 이런 솔직한 고백을 해온 최형준에게 은근히 믿음이 가기도 하시였다.

(이 동무는 사업을 잘해왔으나 지난날 일시적으로 잘못 생각했던 그 일때문에 다시 몸부림치는게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그의 등에 손을 부드럽게 올려놓으시였다.

《솔직한 말을 해줘 고맙소.… 나는 동무가 자기를 타매하던 나머지 너무 예리하게 과장된 말도 튀여나왔으리라고 생각하오.》

《저는 솔직히 말하면 새 로선이 옳다는걸 이미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중권동지처럼 이 로선을 그렇게 열렬히 옹호하고… 이 로선을 위해 그렇게 헌신적으로 투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 왜 그렇게 됐겠는가 가슴을 치며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이전에 숱한 사람들앞에서 강연도 하고 연설도 하면서… 그렇게 하는게 혁명인가 해서 쏘베트로선을 열광적으로 선전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새 로선을 그렇게 옹호하고 돌아가면 사람들이 저를 무슨 어리광대나 풍각쟁이로 보지 않겠는가? 또 여기엔 이전부터 제가 인연을 깊이 맺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러루한 묵은 거미줄에 걸려 나가다가는 주춤거리고 일어섰다가는 움츠러들게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참 뭐가 뭔지… 저는 그랬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팔을 붙잡고 갑자기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정동무! 젊은 사람이 속이 왜 그렇소? 허허허… 속을 쭉 펴오! 쭉 펴란 말이요. 한때 시까지 썼다는 동무가… 정의를 알았으면 누가 뭐라든 그길로 나가야지!》

그도 자신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숙이고 뒤더수기를 쓸어만졌다.

《안되겠소. 동무를 혼자 놔뒀다가는 무슨 할망구가 되겠는지 모르겠다니까. 한번 내 시키는대로 해보지 않겠소?… 당장 강연제강을 하나 쓰오.

길게 쓰지 말고 격문 비슷하게… 원호물자들이 가는 모든 유격대, 반일자위대, 마을들에 가서… 당신들이 받는 한되박의 소금, 한토리의 실, 한꾸레미의 미역 등에 인민들의 어떤 지지가 담겨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오늘 근거지는 여기에 있는 유격대나 인민들의 근거지일뿐아니라 전체 조선인민들의 조국광복을 위한 근거지로 되였다. 때문에 국내인민들까지도 이렇게 지지성원들을 보내면서 자기들도 근거지방위에 떨쳐나섰다는것을 시위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인민들의 이런 지지성원을 받기때문에 왜놈들의 공세를 격파하고 근거지를 능히 지켜낼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런 내용으로 제강을 짜서 강연도 하고 연설도 하오. 할수 있겠소?》

자기에게 활력을 부어주시려고 이토록 열변을 토로하시는 그이를 우러러 쳐다보는 최형준의 눈에 후더운 이슬과 함께 생기가 불타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이튿날 전체 유격구의 마을들과 유격대와 반일자위대의 모든 부대들에서 국내인민들의 지지성원에 보답하여 근거지를 끝까지 지킬것을 다짐하는 군중집회들을 가지도록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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