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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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스치는 열기, 입안으로 휩쓸어드는 쓰거운 초연냄새, 시꺼먼 연기, 날아오르는 흙발… 산포탄들이 여기저기에 날아와 터졌다. 잡관목숲에서 불길이 춤을 추었다. 산중턱에까지 기여올라갔다가 도망쳐 내려가는 왜놈들이 돌아서서 총질을 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총알들이 비명을 지르며 귀밑을 스치고 수류탄파편들이 날아왔다.

바위뒤에서 얼굴에 구레나룻이 시꺼먼 놈이 짐승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나오는 순간 시퍼런 빛살같은것이 휙 날아들었다. 총창이다!

창억은 날렵하게 몸을 피하며 총창으로 놈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놀랍게도 총창은 거침없이 푹 먹어들었다. 놈은 눈이 뒤집혀서 훌쩍 뛰여오르는것 같더니 몸을 비틀며 총신을 틀어잡았다. 놈의 단말마적인 몸부림이 창억에게 전달되여 팔은 물론 온몸이 푸들푸들 떨려 내장이 온통 뒤집혀지는듯 하였다. 창억은 자신도 알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놈의 옆구리를 발길로 걷어찼다. 놈은 허공에 피줄기를 뿜어올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창억이도 힘의 균형이 기울며 모재비로 쓰러졌다. 그는 다시 후닥닥 뛰여일어났다. 총창끝에서 실오리같은 김이 피여올랐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심한 현훈증을 느꼈다. 딸꾹질이 났다. 코구멍에서 피비린내같은것이 풍겨나왔다. 뒤에서 선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번개같이 몸을 돌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가슴팍에 불길이 달린 놈이 총탁으로 그를 내리까려고 접어들었다.

창억은 미처 어쩔사이 없이 뒤걸음질쳤다. 순간 귀가 꽉 메고 놈은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 뒤쪽에서 장룡산이 놈을 갈겨치운것이였다.

장룡산은 얼굴이 험악하게 이그러지며 《한놈도 살려보내지 말라-》하고 웨쳤다.

창억은 그의 뒤를 따라 달려내려갔다.

소왕청하건너쪽의 무명고지에서도 유격대원들이 왜놈들을 뒤쫓아 달려내려오는것이 나무와 포연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왜놈들은 뾰족산밑과 길바닥, 소왕청하의 얼음판과 그옆의 새밭에 몰키면서 와글거렸다.

반돌격서렬은 질풍같이 달려내려갔다. 산밑에까지 달려내려간 창억은 5, 6명의 왜놈들이 깊은 함정에 빠져 뻐드럭거리는것을 보았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크나큰 희열에 하늘을 찌르는 환성을 내지르고싶었으나 웬일인지 목구멍이 꽉 메여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저 가슴팍이 부들부들 떨릴뿐이였다.

옆에서 누구인가 챙챙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야-하하하… 이놈들이 메돼지처럼 배때기를 창날에 찔렸다. 하하하…》

소왕청하의 얼음판우와 그 량옆의 새밭속에서도 치고 받고 찔러넘기는 혈투가 벌어지고있었다. 골안어귀로 도망쳐나가는 놈들의 무리속에서는 시꺼먼 연기를 날리며 작탄들이 터졌다. 폭풍에 허궁 들리웠다가 언땅에 내동댕이쳐지는 몸뚱이, 공중에 뿌리워올라가는 총대들과 돌쪼각들… 아우성, 비명, 욕설, 울음소리들… 이 혈투의 수라장속에서 미쳐버린 군마들이 불붙는 새밭속을 뛰여다니며 사람들과 시체들과 구원을 청하는 부르짖음소리들을 마구 짓밟는가 하면 갈기에 불이 달려 바스러지는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무명고지쪽으로 올리뛰였다.

《저놈들이 말에 술을 멕였구나, 개자식들 야-말을 잡아라-》

창억은 누군가의 이런 고함소리를 들으며 싸움판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는 연기와 화기속으로 달려들어가며 접어드는 놈들을 마구 찔러넘겼다.

눈앞에서는 시퍼런 총창들이 번쩍거렸다. 피투성이 되여 옆으로 날아지나가는 얼굴들, 살이 시뻘겋게 드러난 잔등, 뻐드럭거리는 다리, 놈들을 깔고앉아 주먹벼락을 안기는 유격대원들, 총탁판으로 왜놈의 면상을 후려치는 마동호… 창억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눈에 불을 켜고 두리번거렸다. 불타는 새밭속에서 관자노리에서 피가 흐르는 한 장교놈이 엉기적거리며 기여나왔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바위옆에서 군마를 붙잡고 서있는 사마병놈이 그 장교놈을 향하여 다급히 소리치고있다. 그놈의 소리에서는 사또라는 말마디가 반복되였다. 아마 이름이나 성인 모양이다.

격전장의 모든 소음을 밀어제끼며 사마병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창억이 그쪽으로 달려가려는데 누구인가 쏜 총탄에 사마병놈이 앞으로 푹 거꾸러졌다. 군마가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앞발을 번쩍 쳐들더니 어디로인가 내뛰였다.

창억은 몸을 날려 장교놈앞을 막아섰다.

사또는 군도를 뽑아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이 말쑥한 젊은 놈이다.

군도의 시퍼런 칼날과 놈의 눈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살기를 풍긴다.

창억은 뜨겁게 휘몰아치던 격전장의 대기가 일시에 쩡 얼어붙는듯 한 예리한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어금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두다리를 떡 뻗치고 서서 놈을 쏘아보았다.

놈의 눈에 비웃음이 스쳐지나가는것 같았다. 그 눈은 이렇게 내뱉는듯 하였다.

(촌뜨기같은 놈!)

창억은 여태 체험한적이 없는 차겁고 쓰디쓴 증오와 혐오감에 악문 어금이를 으드득 갈며 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무엇이 어째? 살모사같은 놈! 사람의 골수를 파먹고 살이 찐것 같구나!-)

이 순간 창억은 머리우에서 시퍼런 번개가 지끈 치는것 같은 느낌에 몸을 옆으로 홱 피했다. 장교놈이 몸을 날려 달려들며 군도로 그를 내리찍었던것이다. 놈은 무엇이라고 소리치며 뒤걸음질쳤다. 창억은 불길같은것이 터져오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놈의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놈은 뒤걸음질치다가 옆으로 게걸음질을 쳤다. 바로 옆에 말주검이 누워있는것도 모르고 과녁만을 노려보며 돌아갔다. 이제 말주검에 다리가 걸려 넘어질것이다. 창억은 놈이 말다리에 걸려 몸을 기우뚱하는 순간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가 총창을 내찔렀다. 그러나 장교놈은 날아드는 총대를 잡고 그것을 옆으로 홱 나꾸챘다. 창억이는 앞으로 쓰러지고 놈도 말주검에 궁둥방아를 찧었다. 창억은 벌떡 솟구쳐 일어났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그는 말주검에서 일어나려는 장교놈을 향하여 다시 달려들며 총탁으로 골통을 내리깠다. 놈이 머리를 피하는 바람에 총탁은 어깨를 내리쳤다. 장교놈은 악-소리를 내며 말주검우에서 몸을 팽이처럼 굴리였다.

이때 다른놈이 뒤로 덮쳐들었다. 창억이는 그놈을 땅바닥에 멨다꼰지고 눈이 뒤집혀 푸들거리는 상판을 발로 콱 내리밟아 짓이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말주검우에서 딩굴던 놈은 어디로 내뺐는지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놈들이 도망쳐가자 유격대원들은 시꺼먼 연기가 흩날리는 산기슭과 아직도 불길이 날름거리는 새밭을 돌아다니며 적의 시체들속에서 총들을 거두었다.

새밭에서 총대를 깔고 늘어진 적병의 다리를 잡아끌던 창억이는 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쨍쨍한 목소리가 울리는것을 들었다.

그것은 까마득하게 잊었던 살뜰한 목소리이다.

그는 의아해서 머리를 돌렸다. 길우에 커다란 짐을 인 두 녀자가 서서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있지 않는가!

창억이는 무슨 환각이 아닌가싶어 눈을 슴벅거리였다. 동이를 인 키가 좀 큰 녀자는 부녀회장 림성실이고 그옆에 함지를 이고 서있는 녀자는 보금이다.

보금이는 두손으로 함지모서리를 붙잡은채 그에게 소리쳤다.

《여보- 점심을 어디다 차리면 좋아요?-》

이 스산한 격전장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창억이는 거칠어진 가슴에 단란한 가정의 온기를 부어주는듯 한 그 소리가 그지없이 반가우면서도 어정쩡해져서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뒤쪽에서 누구인가 걸걸하게 소리친다.

《아주마에- 어디라구 여기까지 나왔소?-》

《예?-》

《여기가 밭머리인줄 아우? 우리가 뭐 밭김을 맸는줄 아우?-》

《콩마당질을 해도 허기가 나는데 모두 얼마나 시장하겠어요?》

하하하…

허허허…

보금이는 눈이 더 또릿해져서 이쪽을 바라본다. 림성실은 아무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고있다.

 

×

 

산기슭의 여기저기에서는 불길이 날름거리고있었다.

자기 총과 로획한 총들을 두세자루씩 어깨에 건 유격대원들은 보금이와 성실이를 에워싸고 떠들썩하게 웃고 말을 주고받으며 뾰족산으로 오르고있었다. 보금의 머리에서 밥함지를 번쩍 들어 자기 어깨에 올려놓은 장룡산은 긴 허리를 가락맞게 휘청거리며 앞에서 걸었다. 림성실은 더운 국이 든 동이를 누구에게도 내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들은 쏟는다고 하며 동이를 고집스럽게 이고 올라갔다.

아차 하는 순간에 발이 미끄러지면 국동이는 머리에서 떨어져 박산이 날수 있었다. 모두 부녀회장의 머리우에서 위태위태하게 흔들거리는 그 동이에 마음을 썼다.

그들은 가파롭게 턱이 진데를 올라설 때에는 앞에서 한손을 잡아끌어주고 뒤에서 가볍게 떠밀어주는가 하면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로 턱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마동호와 오판단이는 동이에 손을 올리뻗치고 떨어지면 받아안을 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녀자들에게는 남자들로서는 도저히 따를수 없는 신기한 재주가 있어 림성실은 동이를 한번 기우뚱거리지도 않고 사뿐사뿐 걸어올라갔다. 그는 오히려 유격대원들이 동이가 떨어질가봐 쩔쩔매는것이 재미나고 우스운듯 눈을 고요히 내리뜬 얼굴에 보일듯말듯 한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그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유격대원들에게 더운 점심을 먹이자고 국을 동이에 퍼담아 이고 전장으로 달려나온 부녀회장, 김중권의 애인! 그는 유격대원들에게 이렇게 떠들썩하게 둘러싸여 걸어나가는것이 무척 행복한듯 그리고 여기에 자기 생활의 보람이 있고 락이 있는듯 앵두빛으로 타오르는 입술에 이름할수 없이 그윽한 미소를 그리였다.

동이에서는 국물이 찰랑거리고 유격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실거리였으며 부녀회장의 저고리고름은 바람결에 날아올라 목에 휘감기며 나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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