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0 회)

제 6 장

저물어가는 갑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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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정은 역관인 아버지를 통해 베이징조약의 내막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베이징조약은 제2차 아편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련합군에게 패배한 청국이 1860년에 서양렬강들과 체결한 굴욕적인 조약이였다. 이때 짜리로씨야도 극동으로 세력을 뻗칠 야망밑에 부패무능한 청나라통치배들에게 강요하여 우쑤리강동쪽연안을 차지하였다. 이리하여 유럽에 수도를 둔 로씨야는 머나먼 아시아의 극동에 위치하고있는 조선반도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륙지로 련결되게 되였다. 그것이 불과 30여년전의 일이였다.

아정은 지난날 청나라에 의존하여 자기의 통치를 유지해온 민비가 이번엔 로씨야에 의거하려 한다는것을 깨닫고있었다. 그는 이것이 분하도록 안타까왔다. 대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수 없단 말인가. 왜 자수자강하여 부국강병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 아정은 언제든 틈을 보아 민비에게 자기의 심정을 터놓아야겠다고 작정했다. 고집불통인 민비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리란것도 그리고 이것이 지극히 위험한 일이란것도 아정은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나라의 형세가 경각에 달한 오늘 제 한몸의 안위나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웨벨공사부부가 돌아간 다음에도 민비의 얼굴에선 노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고종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들뜬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방안을 어정대였다.

《오늘 밤은 참 좋구만.》

고종의 말에 민비도 얼른 응수했다.

《저도 그래요.》

처녀애들처럼 볼이 빨갛게 상기되고 눈빛이 반짝거리는 민비를 고종은 다함없는 믿음과 존경과 애정을 담고 바라보았다.

《곤전, 나는 부인을 참으로 좋아하오.》

마치 처음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이처럼 어색해하는 고종에게 민비는 눈을 곱게 흘기며 핀잔을 주었다.

《상감마마, 그런 경우엔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적중합니다.》

《그까짓 표현이야 아무런들.》

민비는 생각깊은 눈길로 고종을 바라보았다.

《상감마마, 우리는 늘 이이제이정략을 써야 하옵니다. 일본이 날치면 지금처럼 아라사의 힘을 빌어 그것을 억제하고 아라사가 득세하면 또 다른 나라의 힘으로 눌러놓고…》

《그래야지.》

늘 기가 살아 펄펄 날뛰던 이노우에가 오늘은 시르죽은 상을 하고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서창으로 흘러들어온 락조를 받아 얼굴은 물론 온몸이 붉게 물든데다 미동도 없는 그는 마치도 구리로 부어 만든 조각 같았다.

이노우에는 오늘 오전 조선정부의 외무아문의 호출을 받고 그곳으로 찾아갔다. 이전같으면 스기무라서기관이나 또 다른 공사관 관원을 보내도 되였지만 구태여 그가 간것은 으시대기 좋아하고 연설하기 좋아하는 제 습성대로 조선의 외무아문에서 리준용사건을 가지고 한바탕 기염을 뽑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총리대신 김홍집이며 외무대신 김윤식이들이 랭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리준용사건은 신빙성이 없는 패설적인 사건으로서 그것은 조선황실과 조선정부에 대한 모독이므로 사건진행을 즉시 중지하라는 요구를 들이대는것이였다.

더우기 김홍집은 내각의 수반인 총리대신과 조정의 수반인 령의정의 직책을 걸고 리준용의 사형선고를 결사반대한다고 못내 강경한 태도를 취했는데 만약 그의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엔 사임까지 마다하지 않을 결심이 분명했다.

그가 다시 사임하게 되면 먼저번처럼 그를 추종하는 다른 대신들도 사표를 낼것인바 이것은 이노우에 자기가 그토록 고심하여 꾸리고 가까스로 유지해나가는 조선내각의 총붕괴를 의미하는바 절대로 허용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런 일로 하여 오침도 설쳤는데 오후에는 또 로씨야공사 웨벨과 프랑스공사 쁠랑시 꼴렌데가 일본공사관에 찾아와 요즘 대원군합하의 손자인 리준용의 모반사건이란것이 조작되여 조선사람들의 감정이 팽배한데 그들이 또다시 척양척왜의 구호밑에 들고일어난다면 재류외국인들의 생명재산이 위험에 직면할수 있으니 이 문제를 의제로 한 주조외교관회의를 시급히 소집할것을 촉구한다는것이였다.

사태가 이렇게 역전되자 공사관원들과 고문관들은 이것은 민비의 책동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오까모도 류노스께가 찾아와 자기 끄나불들로부터 입수한 정보라고 하면서 어제 낮에 조선정부의 총리, 탁지, 외무의 세 대신이 민비의 처소인 건청궁으로 갔으며 저녁에는 그곳에서 로씨야공사 웨벨부부를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가 진행되였다는 정보를 제공하였었다. 이제는 모든것이 불을 보듯, 하늘의 해를 보듯 명백하였다. 리준용사건이 파탄되게 된것은 그 암여우같은 민비의 작간때문이였다.

이노우에는 민비의 연약한 팔에 목조르기를 당하는것과 같은, 그런데 그 팔이 굵은 철사처럼 강하고 힘이 세서 도저히 거기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직감했다.

그는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손도 주먹으로 부르쥐여있었다.

(민비, 이 여우같은 년, 어디 두고보자!)

그가 이렇게 윽벼르고있는데 오까모도와 스기무라 그리고 호시가 방에 들어섰다.

오까모도가 이노우에의 집무탁앞으로 다가서며 한마디 건네였다.

《리준용의 처형으로 뜻하지 않은 불집을 일으킬것 같습니다.》

호시가 대뜸 그에게 눈을 흘겼다.

《그럼 오까모도군은 일보 후퇴하자는거요?》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기회도 있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제국의 대조선정책수행에서 걸리는것은 민왕후이지요. 그러니…》

《음.》

호시는 쓴입을 다셨다.

여직껏 잠자코있던 스기무라도 한마디 했다.

《오까모도상의 의견인즉은 도꾜의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면 조선에서의 나의 첫 공작은 실패라?…》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해하는 호시를 오까모도가 구슬렸다.

《왜 실패겠습니까?》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네. 난 일단 결심하면 죽어도 해내고야마는 성미라는걸 이노우에, 당신도 잘 알지 않소?》

《…》

이노우에는 귀찮은지 아무 말도 없었다.

이때 스기무라가 지금껏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이노우에에게 내밀었다.

《공사각하, 도꾜에서 이또총리의 급전입니다.》

급급히 문건을 본 이노우에는 말없이 그것을 호시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호시의 낯색이 컴컴하게 죽었다.

《…리준용사건을 사형일변도로 나가지 말고 민심의 폭발과 외국공사들의 우려를 감안하여 적절하게 조절처리하되 호시 도오루는 더이상 그 일에 관여하지 말고 조선 대군주의 특지로 처리하게 하라.

이또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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