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8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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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의 나날, 백병전의 하루하루가 지났다.

다른 모든 군수물자들과 같이 식량도 떨어졌다. 왜놈들의 량곡소각책동으로 손실을 본데다가 멀고 가까운 유격구들에서 피난민들이 밀려들어 근거지에서 생산된 식량과 지원물자로 들어온 식량마저 거덜이 났다.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고 근거지를 지켜 끝까지 싸우기 위해 무서운 추위속에서 떨며 송기를 벗기고 칡뿌리를 캐냈다. 소나무숲들을 료정내다싶이 송기들을 벗겨내여 희끗희끗 벌거벗은 나무줄기들이 멀리에서도 바라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느라면 근거지가 겪고있는 난관이 극한점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억이를 쳐다보는 누렇고 부어오른 얼굴들은 말없는 가운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묻는듯 하였다. 탄알이 떨어져가고 작탄이 떨어졌다. 무기수리소에서는 인민들이 가져온 마지막솥까지 깨여서 작탄을 만들었다. 맥없이 잦아내리는 풀무의 불길을 바라보는 대장간아바이의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에도 그 무서운 질문이 어리였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지들에서는 굴릴수 있는 바위들은 모조리 굴러내렸다.

멀고 가까운데서 언뜻거리는 송기를 벗겨 희끗희끗한 소나무줄기들, 산에서 굴러내려 골짜기의 눈속에 구겨박힌 바위돌들, 깨져딩구는 그릇들, 포격에 시꺼멓게 파헤쳐진 산봉우리들, 불타버린 마을들, 사람들의 몸뚱이를 겨우 가리는 누데기같은 옷들… 그것들은 모두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묻는듯 하였다.

왜놈들은 마촌에까지 들어왔다.

베천으로 기운 사령부의 빈 쌀주머니가 나무가지에 걸려 바람에 펄럭거리였다.

부엌간의 솥에서는 칡뿌리가루와 통강냉이알 몇줌이 들어간 멀건 죽이 끓고있었다.

창억이는 드디여 분이 터져 성림이를 귀틀집뒤로 끌고갔다.

《이럴수 있는가? 저게 뭐요? 저런걸… 저런걸 음식이라고 사령관동지께 대접한단 말이요? 동무도 사람이요? 량심이 있소?》

《여보, 어찌겠소? 손에 쥔게 아무것도 없는데.》

《없다구? 없다구? 그런 소리가 나오우?》

《동무는 나를 뭘로 보는거요?》

《내 알기엔 쌍암촌에서도 쌀이 스무가마니가 들어왔댔는데 동무가 속궁냥이 좀 있는 사람이면 그걸 한두가마니만 어디다 묻어놨대도 이 지경이 되겠소? 쌍암촌 지유복회장이 저 솥뚜껑을 열어본다면 우리를 때려죽이자구 할게요.》

《창억이, 사령부에서 반년만 더 근무하고 나하고 의견을 나눠보자구.… 신발여벌도 있었고 쌀도 세가마니나 감춰뒀더랬소. 사령관동지께서 아동단학교 아이들에게 다 보내줬소!》

창억이는 목구멍이 꽉 메였다. 안에서 사령관동지께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방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온 창억이는 허기증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또다시 절골로 넘어가 그곳 부대에 야간기습전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여야 하였다. 그는 길을 떠났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허기증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밑에서 땅이 파도치고 눈앞에서 노란 반점들이 날아돌았다. 옆을 스쳐가는 나무가지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나 이상하게도 눈가루는 흩어져내리지 않는다.

절골로 넘어가는 새골치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눈에 덮인 다래넝쿨뒤에서 한 녀자가 달려나왔다. 눈가루가 안개처럼 뽀얗게 쏟아져내렸다. 그 녀자는 달려나오다말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검정치마에 무릎우까지 내려오는 남자들의 덧저고리를 입고 어깨에는 기병총을 걸었다. 희멀겋게 부어오른 얼굴의 눈섭이며 인중에는 하얀 성에가 보르르 불리였다. 빠끔히 열린 눈만이 그리움에 타는듯, 반가움에 겨운듯 따뜻하게 빛나며 웃고있다.

《여보…》 하얀 입김과 함께 날아나온 한마디 속삭임에 창억이는 안해를 온몸으로 느꼈다. 아, 사람이 이렇게 몰라보게 되다니!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달려나가 두손을 꼭 쥐고 입김으로라도 손과 마음을 녹여주고싶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보금의 손에서 다래끼가 맥없이 떨어졌다.

《그사이 너무 바빠 못 갔소. 집에서는 다 무고하오?》

《저 건너 범골에… 마을사람들이랑 다 막을 치고있어요. 무고해요.》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요? 있었다면 있었다고 하오!》

《무고해요.》

보금의 발밑에 떨어진 다래끼에서는 풀뿌리같은것들이 튀여나와 눈우에 시꺼멓게 흩어졌다. 그것들은 그의 모든 대답들이 거짓이라는 비통한 고백인듯 하였다.

창억이는 풀뿌리들을 쥐여들어 살펴보았다.

《이게 칡뿌리 아니요?》

《…》

《집에서 낟알이 떨어진지 오래오?》

아버님은 이런걸루 뭘 끓여도 좀 드시는데 어머님은 통…》

보금의 눈에 눈물이 가랑거렸다.

창억이는 안해의 눈물을 못 보는척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해서 먹소?》

《끓여 물을 우려내서…》

《통채로?》

《예…》

《허, 아직 모르는구만.… 가루를 내오. 떡가루같다니까. 그 가루에다 통강냉이알 몇줌을 넣어서 죽을 부글부글 끓이면 괜찮소. 구수한게 감칠맛도 있고…》

순간 보금의 얼굴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눈에서 눈물이 싹 말라들고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와락 달려들어 남편의 손을 두손으로 꽉 싸쥐며 질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보, 거기도… 사령부도 이런걸… 이런걸 자시나요? 장군님도?》

《아니요, 사령부야 사령부지. 아니요, 아니… 허허허…》

《그럼… 세간살이안속은 통 모르던 당신이 어떻게 그런걸 다 알아요? 어떻게요?》

《원… 유격대원이 그쯤한걸 모를가, 허참…》

보금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눈물이 말라든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애끊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여보, 사령부도 같은 형편이니 이 일을 어찌면 좋아요? 마을사람들은 피난막에서 모두 맥을 놓고 쓰러졌어요. 유격대가 근거지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린다는 뒤숭숭한 소문도 돌아요.》

《그건 나쁜 놈들이 퍼뜨린 소리요. 아버진 뭘하오?》

《지난밤에도 왜놈들을 잡겠다고 도끼를 갈았어요.》

《여보, 기운을 내오. 장군님은덕을 생각해서도 우리 가정은 꿋꿋해야 되오. 흔들려선 안되오. 당신도 유격대를 돕는 일에서 마을사람들 앞장에 서오! 알겠소?》

굼실거리는 안개속에 보금의 얼굴이 꿈속에서처럼 서서히 묻혀버렸다.

절골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에 올라서서도 창억이는 안해를 만났던것이 사실인지, 허기증이 심한데서 온 환각인지 분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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