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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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엎드려 부복하여 아뢰는 박영효의 말을 다 들은 고종은 낯에 신중한 표정을 짓더니 따지듯 물었다.
《그게 사실인고, 내무대신?》
《페하앞에 감히… 양주사태도 그렇고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공사관으로 간것도 사실이옵니다.》
《고현지고.》
고종이 분개하여 뇌까렸다.
《내정개혁때도 일본공사관에 붙어 소란을 피우더니… 괘씸한지고.》
《조희연이 같은 친일배가 저으기 우려되옵니다.》
저도 친일도배인 주제에 같은 친일파인 조희연이를 걸고드는 박영효는 속이 좀 간지러웠다.
《그만 물러가오.》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안에서 박영효는 긴장한 생각을 굴리였다.
(정부에서 일본의 의도대로 독판치기를 하자면 이노우에공사앞에서 알랑거리는 조희연을 제거해치워야 한다.그런데 그가 요즘 김홍집이한테 가붙었지. 김홍집이가 분명 그를 두둔해나설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조희연이를 걸어 김홍집이까지 매장해치우자. 그럼 내가 총리를 할수 있지 않는가. 공자도 독이 없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야심은 사나이의 가장 큰 재부라고 했지. 음, 이놈들! 그러자면 누구에게 의거해야 하는가. 이노우에? 민비?… 3국간섭이후 일본세력은 여지없이 쇠퇴하고있다. 그러니 당분간은 민비에게 의거하는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지금은 민비에게 더 바싹 접근해야 한다.)
집으로 오던 길에 군무관방장으로 있는 자기의 심복 정란교에게 들린 박영효는 조희연의 뒤를 캐라고 지시했다. 그러는 과정에 조희연이가 공금 5천원을 류용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박영효의 상주와 고종의 어명으로 군무대신 조희연의 파면을 의론하는 내각회의가 벌어졌다.
회의에서 박영효는 군무대신 조희연의 파면을 강하게 주장한 반면에 김홍집은 이를 반대하였다. 그는 특등친일매국노인 박영효가 내각에서 제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다 제거해치우고 제가 독판치기를 하려는 속심을 들여다보았던것이다. 그는 친일파인 조희연이도 달갑지 않은자였지만 우선은 박영효의 전횡을 막기 위해 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던것이다. 그는 조희연의 공금 5천원람용도 조사한데 의하면 동학당관계정보비와 일본군접대비용으로 사용하였으며 궁성시위대를 양주목에 파견한 월권행위도 결국 군무관방장 정란교가 자의로 취한 조치라는것을 까밝혔다.
그러자 박영효는 총리대신이 조희연을 싸고 도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하면서 대신들의 찬부를 물어보자고 하였다. 법무대신 서광범, 학무대신 박정양, 농상공무대신 김가진이가 박영효의 제의에 찬동하고 탁지대신 어윤중, 외무대신 김윤식은 반대하였다. 이렇게 되자 박영효는 상감마마의 립석하에 각의를 열어 이 문제를 결정하자고 자의로 결론하였다. 그의 처사를 불쾌하게 여긴 김홍집은 도대체 누가 총리인가, 당신인가, 나인가 하고 소리쳤다. 아무튼 이날 각의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고말았다.
조희연의 파면문제를 두고 조선내각에서 옥신각신하고있을 때 촉수를 세우고 신경을 쓴것은 이노우에공사였다. 그는 이 기회에 조선정부를 철저히 친일일변도적인 괴뢰내각으로 꾸릴 모략을 꾸미였다. 여기에서 유리한것은 조희연의 문제를 가지고 김홍집이와 박영효가 대결하고있으며 고종은 그사이에서 동요하고있다는 사실이였다. 원래부터 주대가 센 김홍집에게서 혐기를 느끼고있던 그는 이 기회에 그를 총리의 직에서 떨구어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면 자연 박영효가 총리로 될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격의 묘책이였다. 요시! 하고 배에 힘을 준 이노우에는 곧 문제해결에 달라붙었다. 그가 김홍집의 매장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타산한것은 그가 총재관으로 있은 군국기무처가 국왕의 권위를 심히 훼손시켰다는것이였다. 국가정무전반을 군국기무처가 토의결정하고 임금은 그것을 재결하게 만든 그것이 바로 국왕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켜 장차 조선의 국체를 공화제로 전환시키자는 심보였다. 일본도 립헌군주제의 정치체제인데 김홍집이는 그것도 무시하고 조선에서 공화제를 실시하여 자신이 초대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그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만적인 내정개혁을 하였다. 그래서 이노우에공사는 그것을 즉시에 간파하고 정권이 일원에서 발하여야 한다는, 다시 말해 국가권력은 국왕에게 집중시켜야 한다는 《20개조개혁안》을 새로 제시한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전개하면 이노우에 자기의 권위는 또한 얼마나 높아지겠는가. 국왕 고종도 이 론리에는 넘어가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이것은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격의 명안이다. 자신의 묘안에 스스로 도취한 이노우에는 곧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작전에 달라 붙었다. 그는 조선내각성원중의 친일파들을 공사관에 불러들여 그들이 자기의 계책대로 김홍집을 탄핵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한편 그것을 궁성안에 여론화시키도록 그물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