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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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청궁 옥호루의 응접실천정에 매달린 휘황한 무리등이 갖가지 음식이 차려진 연회상을 밝게 비쳤다.
원탁에 웨벨공사부인 그리고 손타크부인과 둘러앉은 민비는 연어알을 맛보더니 못내 감탄했다.
《웨벨공사부인이 가져온 이 연어알이 참 별맛이군요.》
웨벨공사부인이 자못 기뻐하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웠다.
《페하, 어서 많이 드십시오.》
손타크부인도 참녜했다.
《우리 호텔에서도 이 연어알이 인기입니다.》
《잠간 실례합니다.》
손님들에게 량해를 구한 민비가 방구석에서 연회상을 지켜보고있는 아정이에게 손짓했다. 아정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민비한테 다가왔다.
《아정아, 내 잊을가싶어 미리 당부해두는데 래일 새벽식전에 민영환이며 심상훈이같은 궁내특진관들댁에 이 연어알을 고루 가져다 하사하거라.》
아정이 대답하자 민비는 다시 웨벨공사부인과 손타크부인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내 혼자 맛보기에는 아까와 그럽니다. 언젠가 일본공사관에서 보내온 초밥은 그저 달고 시고, 어딘가 역겨운감을 주던데 연어알은 제 구미에 맞습니다.》
《페하, 고맙습니다.》
웨벨공사부인이 재삼 감사를 표시하자 손타크부인도 말에 끼여들었다.
《페하의 말씀까지 듣고보니 우리 호텔에서도 연어알을 특별메뉴로 선정해야겠습니다. 》
《귀하게, 비싸게 파십시오.》
민비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민비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손타크부인이 운영하는 《정동구락부》는 어떤가? 풍문에 듣자니 꽤 흥성거린다던데… 하고 은근스럽게 물었다.
민비와 구면지기인 손타크부인은 이 연어알처럼 아주 인기라고 스스럼없이 굴었다.
이 외국부인은 계속하여 이전엔 주로 조선에 있는 외국인들만 출입하였는데 지금은 조선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자랑했다.
어떤 사람들인가고 호기심어린 기색으로 묻는 민비의 물음에 손타크부인은 유미조선공관들에 나가있던 리완용, 리하영이라든가, 류학생들인 유길준, 윤치호같은 사람들, 요즘은 민비의 친척들인 궁내특진관들도 자주 모인다고 대답한 손타크부인은 목소리를 죽여 그들은 모두 일본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은데 궁내특진관들은 클럽가운데서도 가장 배일적이라고 그 무엇인가 암시하는것이였다.
민비가 측은한 기색을 띠우고 손타크부인의 말을 긍정했다. 일본의 내정간섭에 의해 한껏 속박당한데 대한 불평불만인것이라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웨벨공사부인이 손타크부인에게 슬쩍 눈짓했다. 손타크부인은 정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페하, 제가 보건대 페하의 친척들인 궁내특진관들은 장래도 결코 일본과 융합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은 린방이라 하지마는 그사이에 큰 바다가 놓여있어 륙지로 련결된 조선과 로씨야의 관계만 같지 못합니다. 때문에 지형상으로 볼 때도 조선은 로씨야와 친선을 도모하는것이 유리합니다. 페하, 로씨야는 세계의 강국으로서 일본같은 나라는 이에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료동반도반환문제만 보십시오. 로씨야는 결코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지 않으며 또 내정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페하, 로씨야에 의거하십시오.》
길게 말한 손타크부인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민비는 가볍게 웃었다.
《손타크부인, 부인은 이제보니 상당한 정치가이십니다. 》
손타크부인이 다시 간청했다.
《저는 진정으로 올리는 말씀입니다. 로씨야의 보호를 받아야 조선의 안전도 왕실의 안녕도 보장됩니다.》
민비도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웨벨공사부인과 이렇게 마주앉아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