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6

 

《우리는 목전의 세력만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소. …》

이노우에는 자기 방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오까모도와 스기무라의 앞을 거닐며 말하였다. 그는 걸으면서 말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렇게 하면 장기들뿐아니라 뇌수의 활동도 활발해지기때문이였다.

이미 여러번의 접촉을 통해 국왕과 왕후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고 장담한 그는 이제는 대원군이라든가 기타 정계인물들과의 리면공작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지금 섬에서 류배살이를 하고있는 대원군의 손자 리준용을 사면시켜 대원군의 환심을 사며 그 교환조건으로 청국의 베이징에 쫓겨가있는 민비의 척족 민영준의 사면도 동시에 실현시키면 민비도 좋아할것이라고 타산했다.

이노우에의 이런 계획을 전해들은 오까모도와 스기무라는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공사각하, 한달사이에 조선정략이 180도로 변했습니까?》

이렇게 말한것은 스기무라였고 오까모도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처럼 쉽게 살려줄 리준용이를 그때엔 왜 그렇게 지독히 죽이자고 했습니까?》

이노우에는 대꾸없이 걸음을 옮겼다.

국왕의 친조카이고 대원군의 친손자인 리준용이, 어쩌면 조선정계에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두각을 나타낼지도 모르는 리준용이, 바로 그때문에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리려고 했던 리준용이, 하지만 지금은 그를 다시 살려주어야 한다. 대세에 따라 인간의 운명을 롱락하는것이 정치가의 본분이고 또 여기에 정치를 하는 재미가 있는것이 아닐가.

《오까모도.》

발길을 멈춘 이노우에는 년장자답게 말했다.

《변하고 발전하는것은 사물현상의 리치라는걸 모르는가. 철학에선 이런걸 변증법이라고 하지. 변할줄 모르는것은 시체와 바보뿐이라는 영국속담이 있네. 새 환경에 적응하는것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세계만이 아닌 정치로 유지되는 인간세계에도 부합되는 법칙이란것을 명심하게.》

이노우에는 다시 발길을 떼며 말을 계속했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중도적인물인 전총리 김홍집을 재신임하는 방향으로 내각을 개편시키는것이요. 친일계로 내각을 다시 꾸려야 한단 말이요.》

이노우에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스기무라가 걱정어린 어조로 말을 꺼냈다.

《각하, 그런데 조선정부에서 300만엔기증금에 대한 독촉이 심합니다.》

이노우에는 볼의 허물자리를 슬슬 쓸어만졌다.

《곧 온다고 하라.》

그러나 스기무라는 안심치 않은지 또 물었다.

《한데 300만엔기증설은 사실입니까?》

이노우에는 아픈 곳을 찔리운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 이 이노우에 가오루가 거짓말을 하는것 같은가!》

《저, 그런건 아니지만…》

《이제 림시의회에서 재결만 받으면 그 돈이 곧 온단 말이야.》

 

일본공사관으로부터 내각을 개조할데 대한 검질긴 독촉을 받은 민비는 그것을 의논하기 위해 미국공사관 서기관 알렌을 불렀다.

알렌은 가방에서 약곽을 꺼내 민비에게 주면서 설명했다.

《왕후페하, 우리 미국에서 새로 발명한 약인데 태자전하의 병에 특효약입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빈번히 신세만 져서 뭐라구…》

《우리야 벗이 아닙니까?》

알렌에게 안락의자를 권한 민비는 자기도 그곁의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알렌선생,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는데요.》

《뭡니까? 말씀하십시오.》

《이노우에공사가 김홍집을 수위로 하는 새 내각을 빨리 구성하라고 요구하고있습니다.》

《알고있습니다. 요즘 정동클럽에서도 그 이야기뿐입니다.》

《호호… 마실방의 소문이 사랑방보다 빠르다더니…》

《그렇습니다. 각계층이 모이는 정동클럽에서는 궁성지밀의 비밀도 남먼저 알게 됩니다, 허허…》

민비가 자세를 고쳐앉으며 정색해서 말했다.

《먼저번에도 알렌선생의 조언대로 박정양이나 리완용 같은 친미파사람들로 내각을 꾸렸기에 친일세력을 눌러놓을수 있었습니다.》

알렌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노우에공사는 지금 친일세력을 만들자는 심산이겠는데…》 하고 중얼거린 알렌은 얼른 좌우를 둘러보고나서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왕후페하, 제 한가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원래 친일파이던 서광범이가 이제는 박영효와 결별하고 리완용이나 리범진이와 함께 유미파의 거두가 되였습니다. 그리고 안경수도 친일파로 출세했으나 이제는 거의 페하의 민씨쪽으로 기울어지고있습니다. 김가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일본에 혐오를 느끼고 민족주의자로 변신되고있습니다.》

《그래요? … 음.》

민비의 낯색이 표독스러워지고 무릎우에 놓인 손도 종주먹을 쥐였다. 그의 거동을 살피던 알렌이 능청스럽게 귀띔하였다.

《그러니 페하, 이노우에공사의 요구대로 이번 내각은 중도인물인 김홍집을 총리로 하되 그 성원들은 왕실에 충실한 사람들로 꾸려도 무방합니다.》

《알겠어요. 이제 이노우에가 닭쫓던 개신세가 될거예요. 아무튼 알렌선생과 같은 벗이 곁에 있기에 얼마나 마음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알렌은 회심의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언제나 페하의 벗으로 남아있을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진 민비가 너그럽게 말했다.

《알렌선생, 무슨 부탁할 일이 있으면 말하세요.》

알렌의 울대뼈가 꿈틀하고 회색눈빛이 번쩍거렸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정중하게 말했다.

《왕후페하, 먼저번 각국공사들의 항의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리권을 일본에만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있습니다.》

《상세히 말하세요.》

《그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미국은 오래전에 평안도 운산금광채굴권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광산관할권은 농상공무 소관아래 있고 또 농상공무대신 김가진은 친일적인 인물이 아닙니까. 그래서 광산관할권을 궁내무로 넘기게 하였는데 역시 친일파인 정병하가 책임자로 있는 궁내무 내장원에서도 우리의 요구를 쓴 외 보듯 하고있습니다.》

민비가 격분하여 대뜸 부르짖었다.

《정병하가!》

이때라고 생각한 알렌은 열띤 소리로 민비를 부추겼다. 알렌의 회색눈이 교활하고 음흉하게 번들거렸다.

《페하, 린색한 일본은 손해배상금이요, 뭐요 하면서 조선에서 빼앗아 가기만 하지만 우리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운산금광채굴권을 요구한 제임스 모오스씨는 요꼬하마에 본사를 두고있는 미국무역상사 사장인데 그는 계약조건으로 일체개발경비를 자신이 부담할뿐아니라 리익금의 25퍼센트를 조선왕실에 지불하며 채광기한은 25년으로 국한하고있습니다.》

《알겠어요. 안련선생. 궁내무에 지시하겠어요.》

《페하, 감사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알렌은 민비에게 경건히 머리를 숙였다.

이처럼 알렌은 민비를 구슬려 새 내각을 미국에 유리한 인물들로 꾸리게 하였을뿐만아니라 품위가 높고 매장량이 풍부한 운산금광채굴권을 손에 넣게 되였다.

알렌을 통하여 운산금광채굴권을 얻은 모오스는 그 이듬해 채굴권을 미국인 헌트에게 3만딸라를 받고 팔아넘겼다. 운산금광의 굉장한 리윤에 대해 확인한 헌트는 조선왕실에 지불할 25프로의 리익금마저 단돈 10만딸라에 사들였다. 이후 미국놈들은 운산금광에서 손을 뗄 때까지 40여년간 순금 80여톤을 강도적으로 략탈하여 막대한 리윤을 얻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