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3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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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시각 아정은 조상궁과 함께 향원못가를 산책하는 민비를 뒤따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표정은 침울하였다.

처서도 지나 서늘한 바람에 버들가지들이 흐느적이고 버들의 그늘이 비낀 못안에서 금붕어들이 화려한 꼬리를 휘젓고있었다.

조상궁이 민비에게 조심스럽게 아뢰였다.

《중전마마, 아직은 해볕이 따가운데 그만 들어가심이…》

민비는 그냥 걸음을 옮겼다.

《오래지 않아 백로인데 따가와야 온기없는 빛살이지.》

조상궁이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피우며 다시 여쭈었다.

《그러시다 만월같은 그 옥안이… 누구나 다 중전마마께옵선 25살을 넘어보이지 않는다고 말들 하옵니다. 》

《그래? 하긴 된서방같은 이노우에가 공사직에서 떨어졌다니 나도 되젊어지는듯싶다.》

걸음을 멈춘 민비는 먹이를 찾아 돌아치는 금붕어들을 이윽히 들여다보더니 조상궁에게 일렀다.

《가서 먹이나 가져오너라.》

《알아뫼셨사옵니다. 》

조상궁이 물러가자 돌의자에 앉은 민비는 아정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늪에 비친 해볕의 반사광이 아정이의 침울한 얼굴에 어려 아롱거렸다.

《아정아, 너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느냐?》

민비는 부드럽게 물었다.

《아, 아니옵니다. 》

아정은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네 안색이 왜 그리 어두우냐?》

《…》

아정은 말없이 고패를 숙였다.

《내가 널 얼마나 귀애하는지 너두 알지?》

《아옵니다. 》

민비는 어딘가 노염기어린 어조로 힐문하듯 물었다.

《그런데두 나한테 숨기는게 있느냐?》

고개를 쳐든 아정은 이어 다시 떨구었다. 그는 민비에게 할말이 많았다.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수십년세월 삼천리강토와 천여만생령우에 군림하여 안하무인이고 자고자대하는 민비가 과연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일가 하는 위구심때문에 오늘까지 망설였었다. 더우기 성미가 사무럽고 괴퍅스럽기도 한 그가 아닌가. 하지만 할말은 해야 한다고 아정은 마음을 다잡았다.

아정은 얼굴을 쳐들었다. 민비가 지궂게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아정은 침으로 목을 추기였다.

《중전마마, 쇤네 외람된 말씀을 드리여도 용서해주십시오.》

《말해라.》

《마마, 쇤네는 나라일이 심히 걱정스럽소옵니다.》

《나라일이?…》

민비는 아정의 말이 의외인듯 말꼬리를 끌었다.

《나라일은 산간의 초부들도 걱정하옵니다. 》

《그래서.》

《마마, 지금형세로 보면 나라의 장래가 심히 우려되옵니다. 》

아정의 말에 민비는 대척하지 않았다. 좀 커다래진 눈으로 어디 네 말을 들어보자 하는 표정이였다.

이 순간 아정의 심중에는 용심이 치솟았다. 지난날에도 옳바른 말을 하고 잘못된 충신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마마, 지금 왜놈들은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소옵니다. 》

민비는 비웃음을 띠우고 뇌까렸다.

《그래서 아라사의 힘으로 왜놈들을 물리치려고 하고있다. 》

《로씨야가 우리 나라를 도와줄것 같사옵니까? 아니옵니다. 로씨야는 청나라에 강박하여 우쑤리강 동쪽연안 태평양지역을 차지하였을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이북의 광활한 령토를 자기의 지배하에 넣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 나라까지 차지하려고 책동하고있사옵니다. 》

《그래, 어쨌으면 좋겠느냐?》

《마마, 자수자강하여야 하옵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켜야 하옵니다. 》

《너는 꼭 개화파놈들이 하던 소리를 그대로 외우는구나.》

이렇게 뇌까린 민비는 돌의자에서 몸을 발딱 일으키고나서 야유조로 뇌뱉았다.

《너는 마치도 대사간(임금에게 충고하는 관청의 우두머리)같구나.》

아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등에 업힌 아이의 말도 들으랬다고 민비가 아정의 말에 좀 더 류의했더라도 후에 그처럼 참혹한 화를 당하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교
만방자한 민비는 아정의 말을 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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