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8

(3)

 

이때 궁내대신이 황급히 다가왔다.

《여기 나와계신줄 모르고…》

《무슨 일이요?》

《일본에서 새 공사가 부임해온다는 통고이옵니다. 》

《새 공사?》

《예, 미우라 고로라는…》

《외무대신을 부르라.》

《예이.》

궁내대신이 물러가자 의자에서 일어선 민비는 신중한 기색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정이가 종종걸음쳐왔다.

《중전마마, 먹이를 가져왔사와요.》

민비는 상념에서 깨여나지 못한채 먹이통에 손을 가져갔다.

《마마의 그 옥수로 먹이까지 주시니 저 붕어들은…》

민비가 뿌린 먹이를 붕어들은 다투어 쪼아먹었다. 하지만 민비는 그것에는 관심없이 여전히 사색에 잠겨있었다.

이윽하여 거울처럼 반반한 못의 수면에 민비와 외무대신 김윤식의 모습이 함께 어렸다.

《신임 공사 미우라 고로로 말하오면 일본죠수군벌거두의 한사람이라 하옵니다.》

김윤식이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기를 닦으며 말했다.

《죠수라면 이등박문, 이노우에와 한고향이라는게 아니요?》

《그렇사옵니다. 그는 근위사단장 등 군직과 궁중고문의 요직을 력임했으며 현재는 예비역중장에 자작이라 하옵니다.》

민비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군부출신이라, 군부?…》

거울앞에 앉은 민비를 화장시키느라 궁녀들이 분주하게 돌아쳤다. 칠흑같이 까만 민비의 머리를 옥비녀로 빗어주고 얼굴에는 꿀에 갠 진주가루분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정수리에 큰머리를 얹었다. 그것이 무거워 민비는 낯을 찡그렸다. 나무를 깎아만든 그 큰머리를 얹을 때가 민비는 늘 고통스러웠다.

이윽고 민비는 궁녀들의 부액을 받으며 화장대에서 일어났다. 꽃수를 놓은 가죽신을 신은 그의 자그마한 발이 섬돌계단을 한단한단 내려서서 화려하게 장식한 덩속으로 들어갔다.

교군들이 덩을 메고 건청궁대문을 나서서 저쯤앞에서 가는 고종이 탄 보련을 뒤따랐다.

함화당으로 들어간 고종이 어좌에 앉자 민비도 그의 옆 발뒤에 자리를 잡았다.

어전에는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대신 박정양, 법무대신 서광범, 학무대신 리완용, 군무대신 안경수 등 새로 조직한 정부의 각료들이 정중하고도 엄숙히 서있었다.

늙은 외무대신 김윤식이가 석쉼한 소리로 령을 내렸다.

《조선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를 전각으로 오르게 하라.》

외무협판의 안내를 받아 전각에 오른 신임공사 미우라 고로는 고종과 민비에게 절을 하고나서 신임장을 읽었다.

《미우라 고로는 아뢰나이다. 대일본국과 대조선국 두 나라사이의 금석같은 언약이 더욱 굳어 일본의 새 공사로 부임하게 되는 영광을 지녔습니다. 삼가 이 국서를 바치게 됨은 앞으로 더욱 오랜 친선의 뉴대를 기약하려 함이니 대군주페하께서와 왕후페하께서 부디 만수강녕하시기를 비옵니다.

…》

민비는 미우라를 세심히 뜯어보느라 그가 읽는 국서의 내용에 대해 듣지 못했다.

넓둥그런 얼굴에 이마는 때이르게 벗어졌는데 그 이마밑의 작을사 한 눈, 두툼한 입술은 겉보기에 사람이 무척 고박하고 어리무던해보였다.

지금 입고있는 훈패를 가득 단 검은색대례복을 벗기고 흙물 오른 바지저고리를 입히면 그대로 논판에 서있는 농군으로 보일듯싶었고 가사장
삼을 입히면 소나무밑의 로승으로 보일상싶었다.

(군부출신이라지만 면상에 칼자욱이 있는 험상궂은 이노우에보다는 얼마나 어리무던해보이는가.)

민비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미우라공사도 민비쪽에 눈길을 주고있었다. 그 눈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인정미있게 보였다.

고종이 미우라에게 띠염띠염 말했다.

《전임공사에게서 소상한 정형을 들어 알았겠은즉 신임공사에 대한 짐의 기대를 받아주기 바라오.》

미우라가 바지혼솔에 두손바닥을 붙이고 허리를 숙여 경례를 하였는데 그 모양새는 흡사 소학생이 선생에게 절을 하는상싶었다.

《페하, 황송하오이다.》

미우라가 말하는 모양새 또한 책상앞에 일어서서 선생에게 답변하는 소학생 같았다.

《외신은 본국에서 다년간 군직에 있어 진마를 구축하였으나 이렇다 할 군공도 세우지 못한 무능한 군인입니다. 이번에 공사로 부임되여왔
지만 외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입니다. 금후 페하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궁중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공사관에서 불경책이나 읽고
글쓰기나 하면서 한양의 풍월을 즐길가 합니다. 》

고종에게 이렇게 공손히 말한 미우라는 이번에는 발뒤의 민비에게 얼굴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외신은 또한 독실한 불도로서 불경을 즐겨 외우므로 그동안에 관음경 한부를 필사하여 왕후페하께 드리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글씨가 변
변치 못하다고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행동거지며 말하는 투가 너무도 겸손하여 민비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담았다.

《외신은 그럼 이만 물러갈가 하옵니다. 》

미우라는 다시금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민비는 웃음을 물고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관례로 어쩔수없이 타국사신들과 공식대면은 할수 없지만 앞으로 공사의 일이 잘되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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