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9

 

2층양옥집에 《한성신보》란 간판이 걸려있는데 이 신문사는 서울에서 발간되는 일본말신문이였다. 2층에 있는 사장실에서 사장 아다찌 겐조와 편집장 고바야가와가 마주앉아있었다. 큰 책상우에 원고지며 교정지들이 널려있다.

편집장 고바야가와가 초조한 기색으로 아다찌사장을 쳐다보았다.

《사장, 빨리 결심을 내리시오. 식자공들이 또 밤을 새우게 됐다고 성화요.》

골살을 잔뜩 찌프리고있던 아다찌가 고바야가와를 흘겨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 신임장봉정식에서 한 미우라공사의 발언을 그대로 싣자는건가?》

《그야 이미 왕궁은 물론 한성바닥에 쏟아놓은 물인데 우리 〈한성신보〉만 아닌보살하겠소?》

다밭은 목에 시꺼먼 눈섭으로 하여 결패있어보이는 아다찌는 담배갑을 집어 한가치를 뽑아 입에 물더니 성냥을 그어댔다. 성냥곽을 책상우에 훌 집어던진 그는 담배 한모금을 빨아 후 내뱉았다.

《기가 막히오. 군부출신의 예비역중장이 새 공사로 온다기에 이제야말로 민비에 대한 우리 거류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을 풀게 되였다고 무릎을 쳤는데 뭐, 불경이나 읽고 관음경을 필사해서 왕비에게 주겠다?… 기가 막히는게 아니라 분통이 터지오.》

《그뿐인줄 아오? 사장, 이걸 보오.》

아다찌는 편집장이 주는 원고를 받아 소리내여 읽었다.

《〈민비는 아주 재능이 풍부한것 같았소. 내가 대군주페하를 알현했을 때에도 드리운 발을 약간 올리고 페하께 무슨 조언을 주고있었소. 그리고 나에게 이 나라의 관례에 따라 외국사신들과 공식적인 대면은 할수 없으나 앞으로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였소. 틀림없이 현명한 왕비라는 생각이 들더군.〉… 이게 민비에 대한 미우라의 인상이겠소? 흥!》

아다찌는 원고지를 휙 뿌려던졌다.

《가만, 미우라가 민비에게 반한게 아니야!》

《홀리웠겠지.》

《좋소, 내 이 미우라를!》

방문을 걷어차고나가는 사장을 고바야가와는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그길로 일본공사관의 미우라방으로 간 아다찌는 직방 그에게 들이댔다. 젊어서부터 절친한 사이인 그들은 어제 상봉의 회포를 나누었었다.

《미우라, 당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구만.》

미우라는 사람좋은 웃음을 띄웠다.

《아다찌, 왜 열이 올라 그러나?》

《그래, 당신은 조선에 있는 우리 일본거류민들의 권익을 지키러 왔소? 아니면 정말 불경이나 읽으러 왔소?》

《좀 진정하게.》

《난 일본거류민들의 권익을 대변한 언론인으로서 하는 말이요.》

아다찌의 표정은 랭혹하고 말투는 거칠었다. 미우라도 정색해졌다.

《난 당신과 결판하려고 왔소.》

《결판? …》

미우라는 놀란 눈길을 치뜨고 아다찌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다찌가 울뚝해서 내쏘았다.

《좋소! 내 판단이 옳았고 객관에서도 그렇게 보고 당사자자신도 시인한 이상 난 당신과 절교하겠소.》

《절교?…》

미우라는 어딘가 재미있어하는 인상이였다.

《난 개인적의분이 아니라 정한의 의분으로 절교하오!》

미우라는 빈정거렸다.

《왜, 서양식으로 결투를 청하지 않고?》

《때가 되면 결투도 서슴지 않겠소.》

이때 방에 들어선 스기무라서기관이 미우라에게 원각사에 갈 시간이 되였다고 알려주면서 오후에 민비가 초대한 연회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다찌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또 꿰진 소리를 했다.

《흥청거리는구만.》

거울앞으로 가서 차림새를 훑어본 미우라는 미소를 짓고 아다찌에게 량해를 구했다.

《아다찌, 보는바와 같이 난 이렇게 바쁘오.》

《흥.》

아다찌는 인사도 없이 훌쩍 나가버렸다. 웃음을 담고 아다찌의 뒤모습을 잠시 바라본 미우라는 저도 원각사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아래 원각사가 고풍을 떨치고있었다.

마당의 13층탑둘레를 말없이 돌고있던 미우라가 스기무라에게 낯을 돌리고 말했다.

《절간의 탑이란 원래 세존인 석가모니의 머리칼이나 이발 같은 유해를 보존하는 곳으로 부처를 상징하여 추앙하는것인데 웬걸 이 탑에 그런게 들어있겠소?》

고개를 끄덕이던 스기무라는 문득 조끼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더니 초조한 어조로 재촉했다.

《각하, 이제는 돌아가셔야 합니다. 경회루의 연회시간이…》

미우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서기관이 대리공사자격으로 참가하오.》

스기무라는 딱한 표정으로 재빨리 주어섬겼다.

《각국 공사들도 다 참가합니다. 더우기 경회루에서 벌리는 이번 연회는 리조 504년을 경축하는것만큼…》

미우라가 한손을 내저으며 스기무라의 말을 잘라버렸다.

《내가 원각사를 돌아보고있다면 민비는 더 좋아할거요.》

《그럼 주지를 불러 원각사의 유래라도…》

《필요없소, 이 원각사야 세조가 자기가 죽인 단종이랑 사륙신들의 명복을 비느라 국고를 털어 지은게 아니요. … 명복을 빌 사람들을 죽이긴 왜 죽였는지.…》

《아니, 원각사의 유래는 언제?…》

스기무라는 경탄과 경의의 표정이 어린 얼굴을 쳐들고 미우라를 바라보았다.

《주지에게 내가 전하더라고 양초상자나 가져다주고 연회장으로 가시오.》

이렇게 말한 미우라는 걸음을 옮기는 스기무라를 다시 불러세웠다.

그는 의아한 기색으로 다가온 스기무라에게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연회에서 사진도 찍는가?》

《글쎄요. … 왕실촉탁사진사로 무라가미 덴싱이란 우리 일본사람이 있긴 한데…》

《그렇소?》 미우라가 웃으며 분부했다. 《그 사람을 데리고 가시오. 민비를 찍으시오. 가능한 독사진을 찍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지요.》

스기무라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자리를 떴다.

 

련못가의 대연회장인 경회루에서 성대하게 벌어진 연회뒤끝에 고종과 민비 그리고 태자 척은 사진을 찍었다. 가슴과 등, 어깨에 다섯마리의 룡이 수놓아진 누런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대군주 고종과 네마리의 룡이 수놓아진 왕비정장에 무거운 큰머리를 얹은 민비가 가지런히 앉고 그들사이에는 태자 척이 서있었다.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쓴 왕실촉탁사진사 무라가미가 세다리사진기를 버티여놓고 구도를 조절했다. 원판에 거꾸로 비친 자기들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들은 다 기절초풍하도록 놀랐을것이다.

무라가미가 드디여 한손을 들어 신호를 하며 고무공처럼 생긴 샤타를 눌렀다. 순간 《팡.》하고 터지는 마그네슘의 섬광과 소리에 상궁들과 궁녀들이 흠칠 놀라며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웠다.

사진사 무라가미가 또다시 찍기 위해 원판을 갈아댔다. 이번 원판엔 민비의 모습만이 거꾸로 비쳤다.

민비는 사진찍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있는 민비의 사진은 단 한장밖에 없다. 그것은 악랄한 일제가 민비를 학살한 후에 그 사건을 은페시키기 위해 그에 대한 기록과 함께 사진까지 전부 없애버렸기때문이다.

건청궁으로 돌아온 민비와 고종은 연회의 여흥으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페하, 오늘 연회가 참말 잘되였소옵니다.》

《뜻깊은 연회였소. 한데 일본공사는 왜 참가하지 않았소?》

《그때 원각사를 돌아보았다 하옵니다. 이제 묘향산의 보현사며 경주의 불국사, 정방산의 성불사 등 모든 가람을 다 보겠다나봅니다.》

《모를 일이군.》

고종이 의혹스러운 기색을 짓자 민비가 또 말했다.

《아라사의 위세에 기가 눌린 일본이 우리 나라에서 손을 떼려고 참선승같은 공사를 보냈는지도 모르지요. 그건 그렇구, 아라사의 웨벨공사부부는 갈수록 정이 드는군요.》 이렇게 말한 민비는 감회롭게 말을 이었다. 《지도만 보아도 저기 구라파(유럽)에서 여기 동양까지 펼쳐져있는 아라사는 얼마나 큰 나라인가요. 참말 웨벨공사가 초청한대로 아라사의 서울이라고 하는 뻬쩨르부르그의 동궁이며 스물렌스크, 모스크바의 크레믈리란데를 가보았으면 좋겠어요.》

환희로 눈빛이 빛나는 민비를 보며 고종이 시까슬렀다.

《곤전이 아라사에 흠뻑 취했구려.》

민비가 돌연 낯색을 홱 바꾸며 날카롭게 말했다.

《페하, 이노우에가 간략해놓은 궁신들의 복장을 원래의 우리 식으로 되살려야겠소옵니다.》

《일본이 개혁한 복장을 우리 식으로 되살린다?…》

고종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렬성조의 뜻을 따르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일본에 굴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옵니다.》

《미우라공사가 가만있을가?》

《그 사람은 독경승이고 참선승이옵니다. 그리고 복장도 복장이지만 우리 조정에서 일본사람들이 박아넣은 친일파들을 싹 몰아내야겠소옵니다.》

민비의 얼굴에 단호하고도 결연한 기색이 비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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