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 회)

제 8 장

을미사변의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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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무대신, 그게 헛소문이 아닌 사실이요?》

김윤식이에게 민비가 짱 하고 노성을 터뜨렸다. 김윤식은 성이 천둥같이 난 민비앞에서 고개도 쳐들지 못했다.

이노우에가 인사말도 없이 훌 떠나가버리고말다니?… 그러니 300만엔기증금도 알쭌한 거짓말이 아닌가. 이노우에가 귀맛좋은 소리로 우리를 속였구나, 속였어! 민비는 속이 괴여올라 참을수가 없었다.

《그래 신임공사 미우라는 무어라 하오?》

《그는 기증금 300만엔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일언반구도 없소이다.》

잠시 말을 끊은 그는 민비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는 오늘 남한산에서 잡은 노루 두마리를 중전께 보내왔소이다.》

《노루?》

불시에 민비의 미간이 좁혀지고 두눈이 쪼프려졌다.

(독실한 불도라고 하던 미우라가 노루사냥을 하다니?… 불살생은 불도의 첫째가는 계률인데 불경만 읽는다던 그가 그따위짓을 해!… 그렇다면 미우라란 사람도 결국… 모를 일이다.)

민비는 속이 뒤숭숭한것이 종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는 읍을 하고 서있는 궁내대신 리경식과 시종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여봐라!》

《예이.》

모두가 일제히 허리를 수그렸다.

《그 이노우에가 가져온 선물을 다 내여 마차에 싣도록 해라!》

《예이.》

고종이 눈을 흡뜨고 민비를 쳐다보았다.

《아니 곤전, 어쩌자고 그러오?》

《그 알량한 선물로 우리를 속인 이노우에의 뺨을 후려쳐야지요.》

《이노우에는 지금쯤 기선우에 있을거요.》

《그럼 한강에라도 처넣어야지요.》

《미우라가 알면 어찌겠소?》

《미우라?》 하고 되뇌인 민비는 또 시종들에게 호령했다.

《미우라공사가 보내온 노루도 마차에 실어라.》

고종이 의아쩍게 물었다.

《노루까지야?》

《불경책에만 가있을줄 안 미우라 그 사람의 눈길이 신첩의 몸에 닿는것 같아 소름이 끼칩니다.》

가을비가 오려는지 창밖의 하늘이 흐려있어 공사의 집무실도 침침했다. 미우라가 집무탁우에 두팔을 올려놓고 랭혹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있었다.

《소뿔은 단김에 뽑으랬다고 우리의 거사를 더 밀지 말아야겠소. 우유부단성과 완만성은 모든 군사작전에서 금물이요. 그래서 나의 결심은 한주일후인 이달 10일께로 하자는것이요.》

모임참가자들인 스기무라, 구스세, 오까모도, 아다찌들과 서울주둔 일본수비대 대장 마야바라소좌, 령사부경찰 오끼하라경부가 긴장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서로 돌아보았다.

《이번 거사는 어디까지나 조선인들의 궁중정변으로 꾸며야 하오. 그러자면 대원군과 조선훈련대를 동원시켜 그들이 민비를 시해 (학살)하게 함으로써 조선인들과 세계여론을 무마시켜야겠소.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가상하여 수비대, 경찰대는 대기상태에 있어야겠소. 궁성시위대와 기타 조선사람들의 반항이 있는 경우 수비대가 즉각 출동하여야겠소.》

미우라의 살기에 찬 눈길이 오까모도에게 가멎었다.

《이번 거사에서 오까모도군의 역할이 지대하오. 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대원군을 끌어내야 하는데 이 작전에 사민들인 아다찌사장이 인솔하는 <한성신보>사 직원들과 서울거류민들을 인입시켜야겠소.》

잠시 말을 멈춘 미우라는 창밖을 바라보고나서 다시 얼굴을 좌중으로 돌렸다.

《조선인들은 누구도 특히 당사자인 민비가 우리의 계획에 대하여 눈치채지 못하게 만반을 기해야 하오. 그의 이목을 돌리고 푹 안심하도록 우리는 위장작전을 면밀히 하여야겠소. 그를 위해 오까모도군과 구스세중좌는 귀국하여야겠소.》

《예?!》

거사의 주모자요 주동분자인 오까모도와 구스세는 물론 모임참가자들 모두가 의혹에 찬 시선을 미우라에게 보냈다.

미우라는 태연하고도 침착한 기색으로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위장작전이라고 하지 않소. 오까모도군과 구스세중좌는 래일 즉 7일에 서울을 출발하여야 하는데 오늘저녁의 송별식과 래일아침의 환송식을 성대히 하며 민비가 알도록 하여야 하오. 물론 <한성신보>에도 크게 소개하고. 오까모도군과 구스세중좌의 최종목적지는 인천려관이요. 10일까지 그곳에서 푹 휴식하며 몸을 내시오.》

모두가 웃음띠운 낯으로 오까모도와 구스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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