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 회)

제 9 장

력사는 과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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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기슭의 룡산은 인천과 배길로 나드는 자그마한 나루터였다.

그러던것이 개항이후 무역항으로 번창하여 인가가 늘고 그에 따라 상점이며 점포, 운송점 같은것이 다닥다닥 간판을 내걸어 이제는 제법 한개의 도회지를 방불케 했다. 그중에도 달빛에 얼핏얼핏 보이는 일본간판들이 많았는데 《다께노술집》이며 《나까야마상점》, 《니시바라양복점》 등과 함께 둔덕에 자리잡은 운송점인 《소요지회조점》이란 간판이 유표했다. 그 운송점앞에 두 파수군이 사방을 경계하며 서있었다.

운송물취급소인 회조점안에 실행대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지금 인천에서 올 오까모도와 구스세를 기다리고있었다. 누구보다 안절부절 못하는것은 오까모도에게 방략서를 넘겨주라고 미우라공사의 지시를 받은 령사보 호리구찌였다.

《걱정말게. 공사관에서 인천령사관에 두번씩이나 급전을 쳤다니까.》

이렇게 말한 아다찌는 저도 조급증을 누를수 없는듯 담배를 꺼내물었다.

이때 밖에서 말발굽소리가 울리고 말의 호용소리가 났다.

《아, 오는것 같소!》

호리구찌가 탄성을 지르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곁따라 아다찌와 고바야가와도 일어났다.

호리구찌와 함께 구스세중좌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아다찌가 반색하며 구스세의 손을 잡았다.

《아, 구스세중좌. 왔구만, 왔어!》

아다찌가 문쪽을 돌아보며 급히 물었다.

《한데 왜 혼자 왔소? 오까모도는?》

구스세는 어리둥절해졌다.

《난 오까모도가 먼저 왔다고…》

《자 이런, 오까모도가 빨리 와야 아소정에 가서 대원군을 끌어낼게 아니요.》

호리구찌가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에 들어섰다. 모두 벌떡 일어서며 환성을 질렀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오까모도가 아니라 공사관의 련락원이였다. 그는 말하기를 인천령사관에서 오까모도의 처소를 몰라 알리지 못했다는것이였다.

놀란 아다찌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라구?!》

고바야가와도 다급히 웨쳤다.

《아니?!》

호리구찌는 락담실색하여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럼 오늘 밤 거사는?》

일본도의 손잡이를 잡으며 구스세가 사납게 내뱉았다.

《그놈의 오까모도, 늘 보아야 저이상 없는것처럼 우쭐렁대더니 에익!》 반나마 뽑은 칼을 도로 칼집에 절컥 꽂으며 울부짖었다. 《아! 천번중 한번 아니, 만번중 한번의 기회를 망쳐먹다니! 오까모도! 오까모도!》

숨막힐듯 담배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있다.

구스세가 다시 자리를 차고일어나며 소리쳤다.

《더는 기다릴수가 없소. 이젠 7일이 아니라 8일이요, 8일. 호리구찌상, 방략서를 이리 내오.》

호리구찌도 울상이다.

《중좌님, 오까모도 없이야 대원군을 끌어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오까모도가 온다고 그 바위같은 대원군이 엉치를 들것 같은가?》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애를 태우던 오까모도가 들어섰다.

방안의 행동대원들이 일시에 일어났다.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쉴뿐 인사할념도 못했다.

호리구찌가 오까모도에게 급히 방략서를 주었다.

오까모도가 미우라공사가 쓴 방략서를 불빛에 비춰보았다.

《오까모도 류노스께 앞

… 오끼하라경부외 6명의 순사 그리고 아다찌 겐조사장이 인솔하는 <한성신보> 직원 40여명을 인솔하여 아소정에 가 대원군을 데리고 남대문으로 갈것. 거기서 수비대와 합류하여 우범선훈련대와 함께 경복궁으로 쳐들어갈것.》

오까모도는 방략서를 아다찌에게 넘겨주었다.

《아다찌사장, 이 방략서대로 하면 시간을 보장할수 없소.》

《왜?》

《우선 아소정에서 남대문까지의 길이 로출될 우려가 있어 위험하오. 그리고 대원군이 응하지 않으면 수비대를 불러야 하오.》

아다찌가 방략서를 구스세에게 넘겨주며 입을 벌렸다.

《지금은 1분1초가 거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요. 그러니 이제 수비대를 부르는 사이에 우리 계획이 민비에게 알려질수 있소.》

구스세가 아다찌의 말을 제꺽 지지했다.

《아다찌사장의 말이 옳소. 여기 력량으로도 대원군은 끌어낼수 있소. 지금 시각은 0시 30분,이제 아소정에 있는 공덕리까지 4키로메터를 30분내에 가야 하오.》

흉기를 둘러멘 살인귀들이 언덕길로 서둘러 움직였다. 저 멀리 달빛이 어린 한강이 굽어보이고 언덕아래에 건성드뭇이 널린 인가들이 바라보였다. 그 인가에서 가락맞은 다듬이질소리가 간간이 울려나왔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에서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기러기떼가 줄지어 날아간다. 달밤의 이 유정한 풍경은 살인귀들에게는 비장한감을 더 해줄뿐이다.

길옆의 버드나무그림자를 밟고나가는 이들의 몰골은 참으로 가관이다.

양복을 입은자, 하오리를 걸친자, 권총을 가진자, 사냥총을 멘자, 구두를 신은자, 짚신을 신은자, 게다짝을 꿴자, 무장폭도들의 행장은 실로 십인십색이였다.

차츰 가까와지는 민가들, 더욱 커지는 다듬이질소리. 뚝딱, 뚝딱…

놈들이 걸으면서 수군거렸다.

《저놈의 집들에선 밤새껏 다듬이질을 할셈인가?》

《그래야 아침에 맨살을 가리우지.》

《대원군의 집에서도 다듬이질을 할가?》

《그 집에서야 갈아입을 옷이 있겠지.》

드디여 놈들이 아소정에 당도하였다. 한강변의 한적한곳에 고적하게 서있는 아소정, 대원군이 연금되여있는 별장이다.

어둠속에 묻힌 아소정, 달빛만이 고색창연한 고풍의 건물을 감싸안고있다. 가끔 가을벌레 우는 소리만 찌륵거릴뿐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다. 대문앞의 길바닥에도 잡초가 무성했다.

오까모도가 담장둘레를 포위하라고 손짓하자 행동대원들이 담장을 둘러쌌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드는자도 있었다.

몇명의 경찰이 담장을 기여넘어가 안으로부터 대문을 열자 오까모도가 앞장에서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뒤따르는자들에게 왼편에 있는 건물을 손가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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