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5 회)

제 9 장

력사는 과거가 아니다

4

 

어뜩새벽의 거리로 부루말 한필이 네굽을 놓고 달렸다. 훈련대 련대장 홍계훈이 탄 말이였다.

군무대신 안경수의 집 대문앞에서 멎은 말등에서 훌쩍 뛰여내린 홍계훈은 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열린 대문으로 뛰여들어간 그는 이불속에서 웃몸만 일으켜앉은 군무대신 안경수에게 비상사태에 대해 보고하였다. 이불속에서 몸을 일으킨 안경수도 부랴부랴 군복을 입었다.

이미전부터 일본인들이 교련을 주는 훈련대를 미타하게 보고있던 민비는 그를 감시통제하기 위해 자기의 오랜 심복인 홍계훈이를 훈련대의 련대장으로 임명하였었다. 그런데 요 며칠사이 일본인교관들이며 우범선 2대대의 수상쩍은 행동거지에 눈을 밝히고있던 그는 오늘 새벽 그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탈영했음을 알아차렸던것이다.

동틀무렵의 어슴푸레한 새벽빛속에 웅건장중한 광화문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있었다. 이곳으로 대원군의 가마를 앞뒤에서 옹위한 폭도들의 무리가 달려왔다. 가마를 중심으로 일본인 민간행동대원들과 훈련대가 배치되고 또 이 모두를 가운데 끼고 앞뒤로 나뉘여 일본수비대가 배치되였다.

여기에 훈련대 련대장 홍계훈이와 군무대신 안경수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그뒤로 한개 소대가량의 시위대가 달려왔다.

벌써 일본경찰들이 광화문 좌측석벽에 사다리를 놓고 기여오르고있었다.

말등에서 웨치는 홍계훈의 목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쩡 가르며 울려퍼졌다.

《2대대장병들! 내 말을 들으라! 군무대신이 여기 계신다. 련대장도 여기에 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일본수비대를 따라 궁안으로 들어가선 안된다!》

홍계훈의 말에 훈련대병정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범선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걸음질 쳤다.

그러자 우범선이 권총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2대대는 내 명령을 따르라!》

홍계훈이도 말등에서 몸을 솟구며 고함을 쳤다.

《이 련대장의 말을 들으라! 일본수비대를 따라 역적이 되겠는가! 조선군사들은 왕궁을 지켜야…》

이때 새벽대기를 헤가르며 되알진 총성이 울리고 기염을 토하던 홍계훈이가 갑자기 말을 끊고 마상에서 흠칫했다.

그를 향해 수비대 대장 마야바라소좌가 또다시 권총을 발사했다.

몸의 중심을 잃은 홍계훈은 말등에서 떨어지고말았다. 그는 가물거리는 의식속에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아! 중전마마께 알리지도… 못했는데…》

땅우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그를 일본군 하사관이 장검으로 내리쳤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홍계훈의 입에서 마지막소리가 슴새여 나왔다.

《중전마마, 부디…》

한편 사다리를 타고넘어온 일본경찰들이 광화문 수비병들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궁성수비병들을 쓸어눕히고 무거운 대문을 열었다. 광화문밖에서는 조선시위대와 일본수비대간의 치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조선시위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대원군의 가마를 에워싸고있던 일본인민간무력이 광화문안으로 쓸어들었다. 그뒤로 쓰러진 조선군사들의 시체를 타고넘으며 광화문을 메울듯 일본수비대가 돌입하였다. 그속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며 군마를 짓쳐모는 구스세중좌와 마야바라소좌의 《용맹》스런 모습이 두드러져보였다.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자기 방에서 시위대 련대장 현홍택이 급히 허리에 권총과 군도를 찼다.

긴장과 흥분, 충격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된 부위 엄병무가 련대장방으로 급히 뛰여들었다.

《련대장님!》

현홍택이 다급히 물었다.

《웬 총소리인가?》

《일본수비대가 왕궁을 침범했습니다.》

《미국교관 다이장군에게 알리라!》

《옛!》

밖으로 뛰여나간 병무는 시위대의 비상소집나팔소리를 들으며 미국교관 다이소장의 처소를 향해 달렸다.

궁성안으로 란잡하게 쳐들어가는 일본수비대, 경찰, 민간무력은 강녕전앞을 지나고있었다. 가마도 마구 흔들렸다. 대원군의 얼굴은 경악으로 굳어졌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간 이 왜놈의 불한당들이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

대원군은 가마문짝을 두드리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가마를 세워라!》

오까모도가 가마를 세우고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감?》

가마안에서 거칠고 사나운 대원군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어데냐?》

《강녕전앞입니다.》

《국왕의 윤허없이 더 들어가서는 안된다!》

《예?!》

《모두 여기 멈추어서라!》

《아니?…》

오끼하라경부가 어쩔바를 몰라 두리번거렸다.

낯을 찌프리고 가마곁에서 선자리로 걸음을 하던 오까모도가 고개를 쳐들고 재빨리 말했다.

《마침 잘됐소. 대원군을 달고 들어갔다가는 일이 시끄러워질수 있소. 때문에 거사가 끝날 때까지 가마를 여기서 지키고있게 하고 나머지는 두 방향으로 갈라져 건청궁으로 진입해야겠소.》

《어떻게?》

구스세가 급히 물었다.

초긴장상태로 굳어져있는 살인귀들의 낯짝을 제꺽 일별한 오까모도는 단호하게 언명했다.

《수비대병력은 본길로 진입하고 민간무력은 오른쪽의 곁길로 가야겠소. 될수록 전투는 피하고 빨리 건청궁을 점령해야 하오. 자, 빨리!》

건청궁담장밖에 시위대병사들이 진을 치고있었다. 총창을 꽂는 병사, 격발기를 제끼고 총탄을 재우는 병사, 총알이 잘 재워지지 않아 두덜거리기도 한다.

《제기랄, 이따위 총으로 어떻게 싸워?》

《지난해 왕궁습격때 왜놈들이 새총은 다 빼앗아가고 이런 녹쓴 총만 우리에게 주었으니…》

이때 병무가 미국교관 다이소장을 데리고 달려왔다.

병무는 시위대 병사들에게 웨쳤다.

《왜놈들을 한놈도 편전에 접근시키지 말라!》

병무의 말이 끝나기도전에 일본수비대가 까마귀떼처럼 나타났다. 불을 뿜는 시위대의 총구들, 대응사격하는 일본수비대, 치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귀따가운 총소리에 상궁들과 궁녀들이 망지소조하여 어쩔바를 모른다.

흰 자리옷바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명을 질렀다.

민비가 자리옷바람으로 우뚝 섰다.

아정이가 그에게 다급히 간청했다.

《중전마마, 빨리 피하시오이다.》

민비의 표정은 랭정했다.

《이젠 늦었다.》

민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 내가 속았구나, 속았어! 미우라, 그 음흉한놈을 참선승으로 여겼으니?…)

《마마!》

아정이가 애걸하듯 간절하게 부르짖었다.

궁성시위대와 일본수비대간의 전투가 더욱 가렬해졌다. 뿡뿡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날아오는 총탄이 벽에 박히고 기둥에 박혔으며 기와장을 바스러뜨리고 석등에 부딪쳐 도탄되군 했다. 수적으로나 화력적으로 우세한 왜병들에게 시위대가 밀리기 시작했다.

전투정황을 보고 미국인 교관 윌리암 다이소장은 당황해하더니 도망치려고 슬슬 뒤걸음질했다.

병무가 그의 앞을 막았다.

《장군, 어쩔려는겁니까?》

날카롭게 질책하는 병무의 부르짖음에 다이는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격분한 병무는 그에게 다가들었다.

《장군은 늘 군인은 지략과 용감성을 본분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 위급한 시각에?!…》

누군가 황급히 부르짖었다.

《부위님!》

병무는 소리나는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여러놈의 일본수비대가 한 시위대병사에게 총창을 꼬나들고 달려들고있었다. 병무는 놈들속으로 뛰여들었다. 치고 찌르고 때리는 무서운 창격전이 벌어졌다.

병무의 드센 총창과 총탁에 놈들의 골통이 빠개지고 창자가 흘러나왔다.

한 왜병이 병무의 뒤로 달려들어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 사품에 병무는 총을 떨구었다. 그는 맨손으로 적들과 격투를 벌리였다. 펄펄 나는 병무의 용맹에 왜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와! 야라레따!》

앞으로 거꾸러지는 왜병, 뒤로 너부러지는 왜병, 태를 치듯 둘러메치여 네활개를 벌리고 땅바닥에 딩구는 왜병…

이 순간 병무의 눈앞에는 환영이 떠올랐다. 《운양》호포탄에 다리 부러진 아버지! 왜놈들에게 생매장당한 조선의 사공처녀! 농민군들을 악착하게 학살한 일본침략군들! 병무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이 왜놈의 개종자들아!》

훌 몸을 띄워 놈들속에 달려든 병무는 세찬 발길질로 단번에 놈들을 대여섯이나 쓰러뜨렸다.

공포에 질려 이 광경을 바라본 구스세중좌가 권총을 허리춤에 지르고 뒤걸음치는 병졸의 손에서 보총을 빼앗아 병무를 겨냥했다.

《땅!》하는 총소리와 함께 종횡무진으로 날뛰던 병무가 그만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구스세가 또다시 사격했다.

《아!-》

병무의 눈앞이 핑그르 돌았다.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그는 이어 땅우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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