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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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에 들어선다는 립추가 지났으나 낮에는 몹시 더웠다. 이해 여름의 마지막더위인듯싶다. 땅이 확확 달아오르고 숨이 콱콱 막히였다. 그래도 절기는 절기라 밤이 오면 대기가 서늘해지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가을이 오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낮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오르더니 갑자기 바람이 불고 검은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대줄기같은 비가 쫙- 쫙- 쏟아져내렸다.

새벽에 가서야 비가 멎었는데 아침이 되자 언제 먹장구름이 덮이였더냐싶게 하늘이 파랗게 열리였다.

해볕이 눈부시고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지만 폭우에 농촌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김일성동지께서는 걱정이 되시였다.

아닐세라 걱정하던 일은 터졌다.

그이께서는 집무실에 들어서시자마자 책임서기로부터 농촌경리부문에서 폭우로 강물이 범람하고 특히 숙천군 열두삼천협동조합의 간석지논에 쌓은 해안방조제가 몇군데 무너져 한해동안 애써 지은 논농사가 결단났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군당위원장을 전화로 찾아 피해정형을 알아보시였다. 그리고 강물이 범람한 일부 지역과 비바람피해를 입은 협동조합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대책을 시급히 세우도록 김만금에게 지시하시였다.

송수화기를 놓으시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마전부터 생각해오시던 한가지 문제에 집착하시였다.

지금 당중앙위원회 부장인 김만금이 농업상을 겸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그를 다시 자기 위치로 보내고 농업상을 정식 임명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촌에서 사회주의적협동화가 실현되고 협동조합들이 대규모협동경리로 커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농촌경리에 대한 지도사업이 그에 따라가도록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을 내놓으시였다.

그 정신과 방법을 구현하여 농촌문제를 종국적으로 풀어나가는 사회주의농촌건설의 진로를 어떻게 개척해나가겠는가 하는 력사적과제에 대하여 그이께서는 사색을 해오고계시였다.

오늘의 시점에서 농촌의 사상, 기술, 문화부문에서의 락후성을 퇴치함으로써 현대적기술로 장비되고 농민들이 문명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것이 전략적과제로 더욱 절실하게 제기되고있다.

아직은 그 실행에서 나서는 과제에 대하여 리론적으로 정립되지 못했고 실천상 적지 않은 문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있다.

그중의 하나가 사회주의농촌건설을 직접 담당하고 수행하여야 할 책임성과 사업열의, 창발성과 능력이 있는 일군들을 갖추는 문제였다. 그러한 일군들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농업상으로 임명하겠는가.

농업성에는 현재 능력있고 똑똑한 부상이나 국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개 성을 이끌만 한 재목은 못되였다.

공업에 비해 뒤떨어진 농업을 빨리 추켜세우고 문명한 농촌을 건설하기 위한 시대적과업을 수행하자면 농업성을 힘있게 이끌 능력있고 내밀성있는 그러한 일군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그런 만점짜리 일군이 어디 있는가.

김만금을 그대로 눌러두자고도 생각해보시였지만 국가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인 지도를 더욱 강화해야 할 지금의 실정에서 해당부서의 책임적인 역할이 더 커졌다.

그러므로 김만금을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다시 들여보내고 농업상에 적합한 일군을 선택해야 하였다.

여러 일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을 두고 그 일군들의 경력과 이전 농업상이였던 김일 제1부수상의 의견 등을 참고하며 고심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현재 당중앙위원회에서 부장을 하고있는 한 일군을 마음속으로 짚으시였다.

이름은 한룡택이였다.

그이께서는 몇년전에 당과 국가의 지도일군들이 한개 도씩 맡아가지고 내려가서 농촌경리사업을 검열료해하였을 때를 생각하시였다.

그때 한룡택은 그에 대한 총화모임에 참가하여 농업협동화운동전반에 나타난 우결함과 농업실태를 매우 정확하고 예리하게 분석하였었다.

한룡택의 경력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중국의 관내에서 항일전쟁에 참가하였고 일제가 패망한 후 조국에 나와 사업하면서 우리 당정책을 받들어 맡겨진 임무를 큰 편향없이 수행하여왔다.

말수더구가 적은 김일1부수상은 한룡택이에 대하여 《저는 그 사람을 깊이 모르는데 평판이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일욕심도 있고 사업능력도 어느정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말했다.

한룡택의 우점은 어떤 문제든지 제기되면 우물쭈물하며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것이 아니라 즉시적으로 결심을 채택하고 과감하게 처리하는것이다.

그는 부서사람들에 대한 통솔력이 강했기때문에 부서안에 규률이 서있었다.

두엄냄새가 풍긴다고 말을 듣는 농업성에 강철같은 규률을 세우기 위해서도 이런 일군이 필요하다.

결함은 때때로 쏘련은 어떻게 했다, 중국은 어떻다 하는 식으로 선진공업국가들과 대국들에 대한 환상과 숭배심을 나타내는것이였다. 또한 작풍상 관료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틀을 차리기 좋아하는것이였다.

한룡택은 도중에 중퇴하였지만 일본에 가서 대학공부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학자연할 때도 있으며 실지로 학자풍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국내와 중국, 연해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공산주의운동과 반일활동에 참가했다. 현재 나이는 적지 않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사생활령역까지 알게 되신것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사업을 시작했던 1946년초였다.

그이께서는 어느날 저녁 사무실들을 돌아보시며 직원들을 만나보시였다.

그들의 경력과 가정생활하는데서 애로는 무엇인가를 일일이 알아보시던 그이께서 한룡택이 있는 방에 들리시였다.

넙적한 얼굴에 면도자리가 푸르스름한 한룡택이 급히 일어섰다. 그 방에서 같이 사무를 보던 다른 두사람도 따라일어섰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자리에 앉도록 권하시고 자신께서도 사무용걸상에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가정형편에 대하여 물으시다가 룡택에게로 눈길을 주시였다.

《한룡택동무는 지금 어디서 삽니까? 살림집을 배정 받았겠지요?》

《예, 외성리에 있는 주택을 받았습니다.》

《집이 어떻습니까?》

《저는 처와 둘이 사는데 그렇게 넓은 집을 받고보니 정말이지 황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이국땅에서 왜놈들과 싸우느라 고생하며 잠인들 제대로 잤겠습니까?

산속에서 가랑잎을 깔고 자기도 했을것이고 집이래야 초막 아니면 토굴이였겠지요.》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는데 한룡택은 금시 눈에 물기가 어리였다.

장군님께서 사선을 헤치시며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해 싸우신데 비하면 저같은거야…

혜택이 너무 과분합니다.》

《부엌에 불이 잘 듭니까?》

《예, 구들이 뜨끈뜨끈합니다.》

《식량은 제대로 공급받았습니까?》

《예, 저의 부부가 먹고 살기에는 쌀이 남아돌아갑니다.》

《아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순간 한룡택이 눈길을 떨구는데 얼굴에 서글픔이 짙게 어리였고 입술이 떨리였다.

어찌된 일인가, 그의 가정에 비극적운명이 들씌워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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