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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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위원회 부장사무실에 들어선 한룡택은 서로 만나면 롱담을 잘하는 김만금부장과 형식적으로 심드렁한 수인사를 하고는 그를 보며 두덜거리였다.
《부장동무, 자꾸 오라가라만 하지 말고 청산리방법을 구현해서 성에 자주 내려오구려.》
김만금이 응대했다.
《내가 어디 성만을 상대하오? 함경북도에 갔다가 어제 왔소.
상동무 말마따나 청산리방법을 구현하는것이 쉽지 않단 말이요. 앉으시오.》
한룡택은 자리에 앉으며 먼저 담배곽부터 꺼내들고 시까스르듯 물었다.
《담배를 피워도 일없겠소?》
《담배곽을 벌써 꺼냈는데 물을거나 있소?》
《그래도 승인을 받아야지.》
김만금은 그가 시까스르는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서를 펼쳤다. 성에서 제출한 알곡과 남새, 과일, 공예작물, 축산예비계획들이였다.
《함경북도에 내가 1년만에 다시 가보았는데 결함들을 많이 퇴치했더구만. 작년에 강냉이를 많이 심으라는 농업성의 지시를 이 도에서는 기계적으로 받아물었댔소.
그래서 군인민위원회사람들은 수수를 심어야 할 밭에는 강냉이를 심으라고 지시했고 감자를 심을 밭에는 수수를 심으라 했소.
함경북도에는 내한성이 강한 작물을 심으라 하였는데 알곡이 위주라고 하면서 당의 농사방침대로 하지 않았댔소. 어떤데서는 잘 되지도 않는 벼를 심는다고 논을 풀었는데 벼가 안되니 다시 피를 심었소.
이처럼 일군들이 작물생산계획을 실정은 알아보지도 않고 관료주의적으로 내려먹인데 대해 수상동지께서 엄한 비판을 하시였댔소. 올해에 들어와서는 상당히 개선되였는데 아직 농업협동조합들에서 제기하는 의견들을 무시하고 군에서 내리먹이는 현상이 없어지지 않고있더란 말이요.
밭을 논으로 풀었다가 벼가 되지 않아 다시 밭으로 만들고 피를 심은것이 비판된 후에 이번에는 반대로 응당 논으로 풀어 벼를 심어도 될 밭들에 강냉이를 심는것과 같은 현상이 그 실례요. 함경북도에 성에서 누가 내려가보았소?》
《농산국 부국장이 갔댔지요.》
《그 사람이 농사는 제가 제일 잘 아는체 하면서 조합이나 군사람들을 무시하고 관료주의를 또 부리였소.
밑에 내려간다고 해도 정책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청산리방법을 구현했다고 말할수 없단말이요.》
한룡택은 고개를 쳐들고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자존심이 상했던것이다.
청산리방법 이야기를 자기가 먼저 꺼냈는데 그것이 자기를 비판하는것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별수없이 뿌옇게 얻어맞았다.
김만금은 한동안 도별농산계획예비수자를 놓고 의견을 말하다가 문서를 덮었다.
《상동무한테 말해야 소귀에 경 읽기지. 기분나빠하지 마오.
실정을 잘 모르니까 그렇다는거요.》
한룡택은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씩씩거리였다.
김만금이 허허 웃었다.
《상동무가 〈마라손연설〉을 한건 좋았지만 실지 사업면에서 따지고들지 않으면 안된단 말이요.
래일 나와 부부장이 아침에 성에 나가겠소. 거기서 성사람들과 같이 광범하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검토합시다.》
김만금이 그를 바래워주는데 출입문에 이르러 한룡택이 차겁게 말했다.
《내 한가지 의견이 있는데 당일군의 품성은 행정일군을 대하는데서도 나타나오. 나도 당일군을 하던 사람이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김만금이 우선우선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오, 내가 왜정때 로동판에서 굴러다니며 주먹대장노릇을 하던 버릇이 때때로 나타나군 해서 그러오.》
한룡택의 랭랭했던 기운이 좀 풀리는듯 했다. 김만금이 미소를 지으며 계속했다.
《그런데 말이요. 로동판이라는데가 별난데요.
자기와 허물없는 사람한테는 별 험한 소리를 다하는데 그걸 탓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좋아하더란 말이요.》
한룡택은 김만금이를 이윽히 바라보다가 그를 떠밀며 방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만금동무! 》
그는 눈길을 떨구고 온화하게 말했다.
《동무가 나를 수상동지앞에서 보증했다는것을 내 알고있소.》
그리고는 성난것처럼 웨쳐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과 〈허물없는〉사이가 아니요. 가겠소.》
그는 급히 복도로 나갔다.
(자존심이 여간 아니군. 하기야 그래서 한룡택이지.)
한동안 그런 자세로 서있던 김만금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지, 그가 무엇을 했던 현재는 농업상이지. 그러니까 국가의 책임일군으로서 농촌경리에 대한 지도에서 잘못 일하면 비판을 해야지. 해도 되게!)
사무탁에 가앉은 김만금은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려다가 한룡택이가 했던 말이 상기되자 속으로 중얼거리기를 계속했다.
(흥, 자기도 중앙당에서 일하던 사람이란 말이지. 그래 자기의 품성은 어떤가?
내 수상동지앞에서 그가 결함을 고칠수 있으며 또 고쳐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과연 저사람이 달라질수 있을가? 아니, 달라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성사업과 농사일에 지장을 주게 된단말이야. 김만금이! 그를 단단히 틀어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