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2 장

21

 

어제밤엔 몹시 추웠다. 마치 겨울로 되돌아가는듯 귀가 시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낮이 되자 기온은 따스해졌다. 대동강이 풀리면서 얼음장들이 떠내려가고 그우에 물오리들이 가득 올라앉았다.

강이 녹을 때 물오리들이 많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이 시기에 물고기가 많기때문이라고 보고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2월말이다.

그러나 농업성사람들은 봄과 함께 시작되는 영농기를 맞아 따뜻한 봄의 정서를 느낄 여유가 없다.

《올해는 왜 이렇게 볶아대는가?》 청사복도로 오가며 직원들이 말한다.

《아, 새 농업상의 첫 영농기가 시작되지 않았는가.》 하고 누가 대답했다.

《올해는 100만톤증수가 아닌가. 성에서부터 끓어야지.》

다른 점잖은 사람이 말했다.

벼종자발아시험, 종자처리준비, 두엄확보 및 반출, 겨울나이작물가꾸기, 랭상모판만들기(모판고루기, 방풍장치기, 활창대생산), 뜨락또르운전수들이 하는 논면적확장과 새땅개간전투…

도별로 그 진행정형통계가 성에 올라온다. 상이 그 통계를 매일 직접 본다.

한룡택은 통계를 들여다보다가 원화협동조합이 눈에 띄우자 문득 지금 전문학교에 가서 공부하고있는 딸과 같은 미순이의 어여쁜 얼굴이 떠올라 송수화기를 들었다.

《운수에 대오. 종팔이를 찾아서 지금 곧 나한테 보내오.》

젊은 운전사 종팔이가 즉시에 나타났다.

《어디 좀 갔다와야 하겠소.》

《저 혼자서 말입니까?》

《혼자 보내기때문에 불렀겠지?》

《예, 지시를 주십시오.》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집사람을 만나라구. 기다리고있을테니까.

집사람이 주는 짐을 싣고 평양농업전문학교에 가서 1학년에 다니는 박미순이라는 녀학생한테 그걸 전해.

별게 아니고 봄이 왔으니 화장품하고 봄에 입을 외투야. 간식도 좀 있고, 알았나?》

종팔이는 눈을 껌뻑이며 서서 무엇인가 생각하느라 대답을 못하고있다가 오히려 호기심을 드러냈다.

《전문학교에 다니는 조카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종팔이에게 나쁜 버릇이 있구나.》

상이 화를 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상동지의 개인문제에 삐치지 않겠습니다. 떠나가겠습니다.》

급히 돌아서서 나가는것을 멈추어 세웠다.

《혹시 받지 않으려고 할수도 있는데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겠지?》

《상동지, 제 이름이 종팔입니다.》

《어서 가봐!》

(운전사들이란 다 저렇게 역고 흥클해서 다루기 말째지.)

한룡택은 이렇게 생각하며 전화로 농업기술국장과 계획국장을 찾았다.

《중부지대에서 논밭갈이는 언제 시작하오?》

국장들이 들어오자 상이 이렇게 물었다.

《3월중순부터 시작합니다.》

농업기술국장이 대답했다.

상이 무슨 도표같은것을 들여다보며 혼자말처럼 했다.

《그러니까 퇴비반출, 모판만들기, 남새가꾸기, 모판에 씨뿌리기, 3월달이 대단히 긴장하오. 씨뿌리기는 4월초에 끝내야 하오?》

《그렇습니다.》

《모내기는 5월초순에 시작하여 6월초순까지?》

상은 계획국장을 쳐다보는데 처진 볼이 실룩거리였다.

《그러니까 한달동안을 끌어야 한다? 그렇단 말이지?》

농업기술국장이 상의 책상우에 눈길을 주고 똑바로 선채 대답했다.

《상동지, 우리는 올해에 일기조건으로 보아 농사차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상동지의 지시에 따라 매 영농공정들을 매우 긴장하게 짰습니다. 사실 모내기도 한달내에 끝내기 어렵지만 그러한 요구로부터 그렇게 긴장하게 기일을 정했습니다.》

상이 화를 내지 않겠는지 눈치를 보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가 화를 터뜨렸다.

《한달내에 하는것이 긴장하게 세운 계획이다?

그게 어디에, 무엇에 기초한 기일이요? 대체 6월초순까지라는 기간이 어떻게 산출되였소? 게다가 그것마저 그 기간에 끝내기 어렵다는 패배주의가 어디서 나왔는가, 당신 머리속에서 나왔소? 계획국에서 만든거요?

대답하시오. 왜 서있기만 하오.》

고함소리에 유리창들이 드릉드릉 울리였다.

《언제 말할 짬을 주었습니까?》

피짚에도 밸이 있다고 농업기술국장이 욕을 얻어먹고만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 짬을 줄테니 말해보오.》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한룡택의 입술이 랭소로 삐뚤어졌다.

《이번에는 경험주의구만?》

그 비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듯 국장은 상을 마주 보았다.

《경험은 실천과정에 생기는것이지요. 상동지도 우리가 랭상모를 왜 도입했는지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랭상모의 우점은 150일이상의 생육기일을 보장함으로써 다수확을 낸다는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일찌기 모내기를 시작하여 일찌기 끝내야 한다는것을, 그 리치를 누구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상에서는 우선 모내기시기와 강냉이심기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므로 로력곡선이 맞지 않고 조합원들의 기술적미숙과 책임성의 부족, 자연적조건 등으로 벼모를 잘 키우지 못해 모내기기일에 지장을 주고있습니다. 거기다가 로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합니다.

조합원들은 새벽 5시에 모판에 나가 한시간가량 모를 뜨고 그것을 논에 내다가 모내기를 합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허리굽히고 일합니다. 그리고는 들어오는길에 다시 모판에 들려 홰불을 켜고 모를 뜹니다. 이것이 실천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국장이 말하는 동안 상은 뒤짐을 지고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조용해지자 멈추어섰다.

《다요?》

《기본적요인은 다 말했습니다.》

《강의를 잘 들었소. 많이 배웠소.》

한룡택이가 무뚝뚝하게 말을 시작했다.

《동무는 자체모순에 빠져있으며 한가지만을 알고 두가지는 모르고있소. 동무는 생육기일 150일이상을 보장해야 랭산모의 우월성이 나타난다고 했소.

그러자면 내 생각에는 모내기를 5월초에 시작해서 5월말까지의 짧은 기간에 와닥닥 해제껴야 한단말이요.

그런데 동무는 한달이상 더 걸린다고 하니 이게 모순된 론리가 아니요? 다음으로 로력이 부족하기때문에 온 나라가 농촌지원에 나서고있소.

문제는 어디에 걸렸는가? 동무와 같은 사고방식, 실무주의, 경험주의, 작전지휘에서의 무능력, 기계적사고, 형식주의에 걸려있단말이요.》

그는 성의 지령을 들어 계획국장에게 내밀었다.

《지령을 다시 작성하시오. 5월 5일에 모내기에 전격착수하며 5월 25일까지 무조건 끝낸다! 여기에 다른 공정들도 맞추어 작성하시오. 이상이요. 가보오.》

돌아서는 상의 앞길을 막으며 계획국장이 우는 소리를 했다.

《상동지, 그것은 실현불가능합니다.

현재 모판에 씨를 뿌린 실적을 보면 5월 5일에는 일부 조합을 내놓고는 시작할수 없습니다. 추운지방은 더 합니다.》

상이 랭랭하게 말했다.

《그러면 10일에 착수하되 완료하는 25일은 양보할수 없소.

동무, 왜 서있소? 국장자리에 앉아있는것이 싫은게 아니요?》

《차라리 그 자리를 내놓는것이 모내기를 25일까지 끝내지 못했다고 비판무대에 올라서는것보다 현명하게 처신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은 더 말이 없었다. 국장들을 더 다불러대지 않고 묵묵히 눈길을 떨구고 서있었다.

사실 그는 국장들을 달구어댔지만 그에게 동정이 갔다. 그는 계획국장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국장동무, 내 말을 듣소. 나도 동무들이 힘들어한다는것을 알고있소.

내가 농업상을 하면서 농사물계가 어떤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동무들이 공장에서 규격제품을 만들어내듯 할수없는 이 농사를 맡아가지고 좌왕우왕 고생하는것에 리해가 된단 말이요.

가령 모내기를 하면서 평당 몇포기를 꽂아야 한다고 우리 성의 농학자들이 〈규격화〉한다고 해서 실지 집행하는 농민들이 포기수를 세면서 모를 꽂겠는가. 그래서 모내기를 하며 늘인 줄에 눈금을 표시했지.

그런데 모내기속도가 빠른 사람, 뜬 사람, 두세포기씩 꽂는 사람, 뭉테기로 쑤셔넣는 사람, 모내기군들이 각양각색이요. 이런걸 다 말하자면 끝이 없소.

기본문제를 말합시다. 우리가 작성해서 내려보내는 지령이 결코 기술실무적인것이 아니요.

그것은 정치사업이기도 하오. 농민들을 고무추동하는 전투적인 기치란 말이요. 동무들은 너무 실무적이고 단순한 사람들이요.》

상의 연설이 담고있는 뜻이 얼른 안겨오지 않아 국장들은 뗑해진 상태였다.

《나도 모내기를 25일까지 다 끝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오. 동무들의 주장을 인정하오.》

국장들은 이건 웬 소리냐 하는듯 눈섭은 치켜올리였다. 이제까지 떠들어댄 소리를 부정하는가? 아니면…

그들은 도대체 리해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무들처럼 순수 실무적으로 계획을 세울수는 없소. 계획은 동원적이여야 하오.

실지 25일까지 할수 없다고 해도 계획은 25일까지 무조건 끝내야 한다고 강하게 세워야 하는거요. 그래야 그래도 그 기일이 얼마 늘어나지 않소.

만약 동무처럼 6월초순까지 세워보오. 그래도 그만큼 기일이 늦어지고 6월중순까지도 못 끝내게 되오. 이제는 알겠소?

지령의 정치적이며 전투적인 목적을 알겠는가 말이요.》

국장들은 손을 들고말았다. 그들은 주눅이 들어가지고 그것을 인정했다.

《하긴 작년도에도 계획을 그렇게 전투적으로 세웠지요.》

계획국장이 말했다.

《그런데 왜 올해에는 뒤걸음질이요?》

《상동지가 새로 오지 않았습니까?》

한룡택은 웃음을 머금었다.

《상이 바뀐다고 해서 농사물계까지 바뀌겠소? 상자리에 누가 앉든 같구같애. 괜히 나한테 경험이요 뭐요 하는 소리를 했소.

내가 오히려 더 내밀성이 세다는것을 동무들이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아니면 알면서도 한번 떠보자는거요?》

《지령을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물러간 계획국장은 모내기기일을 비롯한 일부 내용들을 수정하여가지고 다음날 상에게 다시 제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황해남북도에는 제가 직접 내려가 영농공정진행을 검열하고 지령을 떨구겠습니다.》

《그만두오.》 상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중앙에 틀고앉아서 지휘하오. 이것 보오.》

그는 일보를 집어들었다.

《매일 이와 같이 영농진행정형이 보고되여 집계되지 않는가.》

《그래도 도와 군, 지어 리에까지 내려가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가요?》

상은 그를 비웃는듯 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래야 달라질건 없소.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영농〉이라는 이 큰 흐름은 끄떡하지 않소.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되였소.

공연히 식사대접이나 받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소용없소. 머리만 아프지!

나도 상사업을 시작하면서 원화협동조합을 비롯하여 몇군데 돌아다닌적이 있는데 파고들수록 머리만 아팠더랬소.

국장동무, 이 일보에 다 반영되여있으니까 이에 기초해서 국장으로서 큰 선에서 구상하고 전개하시오.》

국장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물러갔다.

(100만톤증수? 간단치 않아…)

한룡택은 생각에 잠겼다.

4월에 온 지구를 들썩하게한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우주에 날아올랐다. 쏘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워스또크》로케트를 타고 우주에 올라 108분간 비행하였다.

이 소식에 접한 한룡택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첫 뜨락또르를 만들 때 쏘련사람들이 고개를 내저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들고있는것이 우주공간에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린 그들의 눈에는 아이들 장난같이 보일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렇게 시작했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들어내는것은 쏘련에서 우주로케트를 발사한것에 대비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오늘 쏘련에서는 사람을 태운 우주로케트를 발사했다면 우리 농촌경리앞에는 모내기하는 기계를 만드는 문제가 급선무로 나서고있다.

한룡택은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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