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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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익은 여기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창원이에게 무슨 별다른 일이 생긴것이 아니고 오히려 대학갈 준비를 하고있지 않는가. 이런 그를 돌려세운다는것은 하늘의 별을 따오는것만큼이나 힘들것이다.

《나는 가겠다.》

동익이가 일어섰다.

창원이는 깜짝 놀라며 그를 급히 붙잡았다.

《가다니요? 힘들게 왔는데 저녁식사를 하고 하루밤 푹 쉬세요.

사실 언제 한번 실컷 잔적이 있습니까?》

창원이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저녁밥을 먹고 잠도 자면 창원이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수 있겠니?

창원이가 잘못 행동했으니 원화협동조합으로 다시 가야 한다고 하겠니, 아니면 본인의 요구대로 대학에 보냅시다 하겠니? 두 경우가 다 나에게는 어려운 선택이다.》

최동익은 자기가 가지고온것을 그에게 준 다음 창원이와 그의 어머니가 붙잡는것을 뿌리치고 그 집을 나왔다. 창원이가 그냥 뒤따라오며 돌아가자고 간청했다.

동익은 비로소 준절하게 말했다.

《나는 같이 일하는 동무들과 특히는 농촌기술혁명을 외면하고 도주한 너의 집에서 자고싶지 않다.

저 불빛환한 도시의 야경을 보아라. 저 제련소의 굴뚝에서 검푸른 하늘로 솟구치는 연기를 보아라. 로동의 장엄한 동음을 듣고 아름다운 거리를 보며 너는 저 바람 불고 해볕 따가운 들판에서 허리굽히고 일하는 농민들을 생각해본적이 있니? 있겠지. 하지만 농촌에 자기의 노력을 바치고 농민들과 한가마밥을 먹을 용기는 없겠지.

창원이, 헤여지자. 나는 네가 고생스럽던 뜨락또르운전수생활을 아름답게 추억하고있다니 너에게서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다.》

동익은 머리를 푹 숙이고있는 창원에게서 돌아섰다. 가슴속이 쓰리고 괴로웠다. 이렇게 창원이와 헤여져야만 하는 자신이 무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학입학시험준비를 하고있는 창원이의 발목을 붙잡을수 없지 않는가.

그는 늦은 밤차를 타려고 정거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기차에 오른 동익은 불현듯 한가지 행동을 결심했다. 뜨락또르운전수양성소에 들려 혜영이를 만나보려는것이였다.

그러한 결심을 하자 그는 이상하게 기분이 흥겨로워졌다.

(이건 물론 자유주의적인 행동이구 그어떤 사업상필요에 의한 걸음이 아니다. 하지만 동익이! 그렇게만 볼것이 아니지.

혜영이는 우리한테서 뜨락또르운전기술을 배우다가 양성소에 갔어.

그러니까 그후 그가 어떻게 배우고있는지 관심을 돌리는것은 응당하고 또 사실 《사업상용무》라고도 할수 있지.)하고 그는 자신을 변명하였다.

사실 양성소에 가본다고 해서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어 공연한 걸음이라는것이 명백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혜영이에게 그를 이끌어가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을 도저히 억제할수 없었다.

혜영이와 있은 가지가지 일들이 머리속에 영화의 화면처럼 떠올랐다. 자기를 쳐다볼 때의 그 어글어글한 《왕눈》에서 내풍기는 정열의 불길은 늘 동익이의 얼을 빼앗군 했다.

그래서 될수록 그 눈길을 피하려하지만 정신이 얼떨떨해지는것은 어쩌지 못한다. 눈길을 피하면 혜영은 말했다.

《나를 좀 돌아보면 안되겠어요?》

동익은 숨이 막힐듯한 그 매혹을 물리치려고 명령하군 했다.

《당장 내리오. 녀자를 태우고는 일을 못해!》

그럴 때마다 혜영은 코등을 주름잡으며 입을 삐죽거렸다.

《음, 뚝쟁이.》

동익은 혜영이가 뜨락또르를 도랑창에 구겨박았을 때 이마며 어깨며 옆구리가 상하여 아픈것은 둘째치고 모내기철의 제일 바쁜 대목에서 사고를 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하는 아뜩한 생각으로 기가 막히였으나 혜영이를 탓하고 나무람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상하게도 혜영이가 마을에서 사라졌을 때 그는 처녀에 대한 동정과 함께 애정의 불길이 세차게 가슴을 태우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이때로부터 동익은 혜영을 더 깊이 리해하고 그리워했으며 그러한 감정이 지금 혜영을 찾아 운전수양성소로 달리게 했을것이다.

차창밖은 캄캄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있다. 렬차는 어둠속을 뚫고 줄기차게 달린다.

차바퀴가 철길이음짬을 지나는 가락맞는 소리, 이따금 들리는 기적소리…

려객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사이다를 마시면서 요기를 하기도 한다.

팔에 완장을 두른 차장이 손님들을 살펴보며 지나간다. 어느 구석에선가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동익은 창턱에 팔굽을 올려놓고 손으로 턱을 고이고서 휙- 휙- 지나는 어둠속을 응시하며 그냥 생각에 잠겨있었다.

(기특한 처녀야. 그저 호기심에서든지 아니면 새것을 지향하는 정열을 이기지 못해서 뜨락또르를 배우려는 처녀가 아니야.

지금 당에서 무엇을 요구하고있는지 알고있지. 아버지의 영향일가. 아니면 민청에서 하는 학습을 통해 농촌에서 기술혁명이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나서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는지 어쨌든 머리가 트이고 눈이 바로 박힌 처녀야.)

그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혜영은 갈데 없는 우리의 농촌처녀야. 그것도 선진적인!

그런데 평양에 공부가있는 미순이에게서는 향수내가 풍기고 얼굴은 희맑아지고 손은 나긋나긋해졌어.

도시에 가서 공부하니까 그렇겠지. 아니 그래서가 아니야. 어딘가 달라졌어. 우리와 잘 섭쓸리지 못해.

미순이가 공부를 마치면 고향에 다시 올가?

공부를 하고 다시 돌아온 림촌의 피살자가족인 명호처럼 말이야. 아마 돌아오겠지. 영준반장의 딸이 아닌가.)

…성천에서 기차를 내린 동익은 려관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뜨락또르운전수양성소를 찾아 떠났다. 몇년전에 아버지의 청원을 수락한 관리위원회 추천으로 이곳에 와서 뜨락또르운전수가 된 동익이였다.

감회가 새롭다. 더구나 여기서 혜영이가 뜨락또르운전기술을 배우고있지 않는가. 무쇠철마를 다루는 청년의 심장도 어쩔수 없이 설레이였다.

그는 공연히 기침을 해가며 양성소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때 뒤에서 뜨락또르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동익은 한옆으로 비켜서며 무심결에 그 차를 돌아보았다.

(아니, 혜영이가?)

운전칸에는 파란 모자를 쓰고 아래우가 맞달린 운전복을 입은 혜영이가 앉아있었다.

동익이가 놀랍게 바라보는 사이에 혜영이는 차를 세우고 날렵하게 뛰여내리였다. 그리고 달려왔다.

《동익동무-》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른다.

동익은 마주 달려갔다. 침착하려고 애를 썼지만 마치도 술에 취한 때처럼 발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혜영이-》

그들은 손들을 마주잡았다. 혜영이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데 크고 검은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내리였다.

《혜영이 왜 우오?》

《너무 반가워서!》

동익이도 눈굽이 뜨거워났다.

《나한테 오지요? 그렇지요?》

혜영이가 여전히 웃고 울며 물었다.

《응, 혜영이한테 오오.》

《내 그런줄 알았어요.》

혜영이가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어제밤 꿈에 동무를 보았는데 성이 나서 나를 피해가더군요.

꿈과 생시는 반대라더니 아이참, 이렇게 만났군요.

나를 욕했지요, 뜨락또르를 굴려먹었다고?》

《자, 이 손을 이제는 좀 놓자구. 사람들이 보지 않나?》

《보라지요. 난 부끄럽지 않아요.

나의 〈선생〉을 만났으니까요.》

《어쨌든 더퍼리는 더퍼리군!》

《호호호…》

혜영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어댔다.

《너무 요란하게 웃는구만.》

《나를 좀 똑바로 보면 안되겠어요. 왜 자꾸 눈길을 피해요?》

동익은 얼굴이 벌개지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 〈왕눈〉때문에!…》

그들의 웃음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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