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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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두해만에 다시 와보니 그사이 많이 달라졌소, 알곡수확고가 오르고 분배몫이 많아졌지, 흰쌀밥을 먹지… 물론 아직 만족할수는 없소, 기계화수준이 높지 못해 손으로 하는 일이 많소 하시면서 물으시였다.

《지금 일하는데서 무엇이 제일 곤난하오?》

《가마니를 짜는 일과 논에 모를 내는 일에 로력이 많이 듭니다.》

전창옥이와 녀성조합원들이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가마니짜는 기계가 생산되고있으며 모내는 일도 기계로 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몇군데 기운 덧옷을 입고있는 녀인에게 왜 솜옷을 입지 못했는가고 물으시였다.

녀인은 주저하다가 상점에 나오지 않아 분배돈은 많이 탔지만 사입지 못하고있다고 대답드렸다.

수령님께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였다.

선도리라고 하는 마을에서 로동복과 솜옷을 입지 못하고있는 농민들을 만나보신 후 어떻게 하든지 농촌에 솜옷이라도 만들어 보내주어야 하겠다고 국가계획위원회에 말씀하시였었다.

그러시고도 마음놓이시지 않아 금년도 옷생산계획을 토의할 때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다시 강조했었다.

공장은 국가소유고 협동조합은 협동적소유이기때문에 차별하는가, 그러면 농민들은 우리 근로자가 아니고 우리 인민이 아닌가 하고 추궁하시였다.

지난달에 상업성 부상에게 겨울옷준비가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어보시니 그는 괜찮은 겨울옷들이 넉넉히 준비되였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농촌상점에는 솜옷이 나오지 않는가?

그들이 하루 세끼 먹는 밥을 누가 생산하기에 이렇게 농촌과 농민을 소홀히 하며 업수이 여기고있단 말인가.

《아주머니들! 내 올라가서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촌의 이름없는 녀성조합원들에게 미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녀성조합원들은 어쩔바를 몰라하며 현재 이렇게 입고도 추운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하고 급급히 말씀드리였다.

군당에 회의갔던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장 그리고 군당위원장이 피창린이 보낸 승용차를 타고 도착했다.

《동무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새 잘들 있었습니까?

날씨가 찬데 구락부에 들어갑시다.》

그이께서 피창린을 돌아보시였다.

《작업반장들이 다 모였소?》

《와야 할 사람들은 다 모였습니다.》

구락부 휴계실에는 걸상을 더 들여다놓고 열댓명이 앉아 기다리고있다가 일제히 일어서며 수령님께 박수로 인사를 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답례를 하시고 외투와 모자를 책임부관에게 맡기신 후 앞탁을 마주하고 앉으시였다.

그이를 따라 들어온 도당위원장, 군당위원장, 리당위원장, 관리위원장, 전창옥작업반장이 앞쪽에 앉고 뒤쪽으로 김덕준아바이, 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작업반장들이 자리잡았다.

오래간만에 보시여서 그런지 더욱 친근하게 안겨오는 모습들이였다. 사실 이 조합의 조합원들과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한식솔로 여기시고 친혈육처럼 대하고계시는 농민들이였다. 그이께서 한사람 한사람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관리위원장 리규성은 나이든 김덕준아바이와 교대한 젊은 일군이다. 땅이 사질토여서 척박한데다가 물난리까지 겪어 황페해진 토지를 해마다 퇴비를 많이 내여 걸구었건만 소출이 시원치 않았는데 리규성이 관리위원장이 된 해에도 마찬가지여서 수령님께서 관리일군들을 비판하시였다.

《지난해도 농사를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수확고가 낮은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시정대책을 연구하며 잘못한데 대하여 조합원총회에서 비판하시오.》

리규성이 심각하게 그 비판을 받아들이였다.

그해에 전국적으로 랭상모를 30% 도입할데 대한 농업성의 지시가 있었는데 리규성이를 매혹시킨것은 랭상모가 수모보다 15~30%의 수확이 더 난다는 과학적기술지표였다.

리규성은 수령님께 원화리에서는 랭상모를 50% 도입하겠다고 결의를 올리고 실천에 들어가서는 70% 도입하고 강하게 내밀었다. 그것이 은을 냈다.

년말에 조합에 오신 수령님께서는 농사작황을 알아보시고 《올해에는 농사를 잘 지었소.》하고 리규성이를 치하해주시였으며 조합원전원이 평양견학을 하도록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 리규성이 지금 맨앞에 앉아있었다. 그옆에 조합초급당위원장이였던 리당위원장이 앉아있다.

그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실적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그이를 안내해드리고 물으심에 대답을 드리고 조합형편과 마을사람들의 상태를 꾸밈없이 말씀드리군 했다.

그는 김덕준, 리규성 두 관리위원장들의 사업을 당적으로 이끌어주고 뒤받침해주면서 핵심들을 키우고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군중을 교양개조하여 묶어세우는데 공헌한 기층단위의 진실한 당일군이였다.

김덕준아바이는 년로한 몸이지만 집에서 놀지 않고 조합일을 솔선 나서서 돕고있다. 수령님께서는 금년초에 뜨락또르의 부속품인 고압뽐프를 해결하려고 기양으로 가던 그를 로상에서 만나시였던 일을 추억하시며 로인에 대한 존경심을 금치 못하시였다.

《우리가》하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조합일군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전창옥아주머니를 비롯한 녀성조합원들과 담화도 하고 이 아래 문화주택에도 들려보았는데 금년에 원화협동조합에서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분배도 그만하면 괜찮게 받았습니다.

우리가 들려본 집에서 흰쌀밥을 먹고있는데 전쟁시기 놈들에게 부모를 다 잃고 딸이 혼자 벌어 두 동생을 키우는 어려운 가정에서도 흰쌀밥을 먹고있으니 조합의 전반적인 생활형편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 집 아이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여 나라의 어엿한 기둥감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농민들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어렵고 손로동이 많습니다. 나는 여기서 국가의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있습니다.

아주머니들의 말에 의하면 가마니짜는 작업과 모내기에 로력이 제일 많이 든다고 합니다. 모내기도 기계화해야 하는데 당장은 안될것 같습니다.

지금 논밭갈이와 운반작업은 뜨락또르가 하고있지만 모내기, 김매기, 가을걷이, 탈곡은 아직 다 기계화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여기 작년가을에 만나보았던 뜨락또르운전수가 아직 있소?》

리규성이 일어섰다.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데려오시오.》

《뜨락또르들이 겨울철정비를 하려고 지금 순안농기계작업소에 다 올라갔습니다.》

순안농기계작업소가 나오면서 동익이네는 이전의 명원농기계작업소에서 옮겨왔다. 작업소가 달라졌을뿐 최동익이네는 그대로 원화협동조합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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