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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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규성이에게 머리아픈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늘 늦어 집에 들어가던 그는 오늘 좀 일찌기 사무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그는 본촌마을 앞길을 걸어 경우재를 넘는 낮은 언덕길로 방향을 잡았다.

3월말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비가 오는가 하면 눈이 오고 해가 쨍쨍 비치여 더운가 하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음산하고 춥기도 했다. 오늘밤은 맑게 개이여 하늘의 둥근달이 규성이와 같이 떠갔다.

한결 잦아든 바람은 부드럽고 생신했고 향긋한 봄냄새를 피우고있었다. 또다시 영농기가 닥쳐와 벌써 랭상모판에 씨뿌리기를 시작했다.

규성은 종일 작업반들을 돌며 씨뿌리기상태를 돌아보면서 농장원들을 칭찬도 하고 욕설도 퍼붓느라 피곤하고 지친 몸이였다. 그래도 밤에는 밤대로 사무실에 앉아 사무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날 저녁은 사정이 있었다.

경우재고개길을 올라서면 림촌이 시작되는데 왼쪽으로 치우쳐 기와집이 먼저 눈에 든다. 그 집이 사연깊은 집이다. 전쟁시기 이 마을을 일시 강점했던 미국놈을 따라 서울에서 들어온 이전 지주의 아들이 《치안대》를 조직하고 애국농민들을 마구 잡아들여 족치고 학살했는데 리녀맹위원장을 붙잡으려다 잡지 못하자 그의 집을 불살라버리였다. 놈들이 쫓겨가자 리인민위원회에서는 리녀맹위원장네 가족에게 이전 지주의 첩이 살던 집을 주었다. 그 집이 바로 왼쪽에 치우쳐 첫눈에 드는 집인데 남편 임정주는 군대에 나가있고 리녀맹위원장이 시부모님들을 모시고 세간살이도 하고 사회사업을 하며 전쟁의 난관을 이겨내고있었다.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 수령님께서 어느날 이른 새벽에 림촌을 찾아오시여 이 녀맹위원장의 집 울타리밖에서 그 녀인이 깨여날 때까지 한시간 넘어 기다리시였었다.

바로 그 집의 삽짝문을 열고 리규성이 들어가며 《임동무 있소?》하고 찾았다. 방문이 열리고 임정주가 내다본다.

《들어오오. 덕준아바이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있소.》

리규성이 방안으로 들어가 김덕준이한테 인사를 했다. 김덕준이 갑산독초가 든 담배쌈지를 내밀며 《한대 말게.》하였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이전 리녀맹위원장이 남편에게 상을 펴라고 말했다. 늙은 부모님들은 그새 다 사망하고 젊은 부부가 비둘기처럼 정답게 살고있다.

음식을 날라들이며 임정주의 안해는 관리위원장에게 인사를 하면서 창고장에게 무얼 그렇게 많이 보냈는가고 미안해하였다.

《그것두 보내지 않을가 하다가 마음이 돌아서서 보낸거요.》

리규성이 씨쁘둥해서 하는 대답이였다.

《오시지도 않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랬지요. 그렇지만 어쨌든 리별주야 마셔야 하겠기에 왔지요.》

《호호…》

녀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관리위원장이 음식감을 많이 보내주었는데 내가 음식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만들었지만 많이들 드십시오.》

《자, 드세!》

김덕준이 먼저 술이 찰랑찰랑하는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리당위원장의 앞으로의 사업성과와 건강을 축하하여 마시게.》

리규성이도 한마디 했다.

《임동무가 위병을 고치지 못하고 가는게 가슴아프네.

내가 등한히 했소. 일만 시키고 쩍하면 다투었지.》

《고맙소!》

눈굽이 화끈해난 임정주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관리위원장이 제일 속시원하겠네.》

김덕준이 웃었다.

《리당위원장이 행정대행을 한다, 어쩐다 하며 밤낮 언쟁이더니 시원하겠단 말이야.》

《전선에 나가 같이 싸우다 같이 제대된 전우이니까 믿고 마음대로 맞섰지요.

이제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이 오면 제길, 이 사람하구 쌈하듯 하다가는 당장 일이 터질거요.》

리규성의 찌프린 얼굴을 보며 김덕준이 소리내여 웃었다.

《리규성이 그 밸을 참아야 할테니 심화병에 걸리겠군. 그래서 옷은 새옷이 좋고 사람은 오랜 사람이 좋다고 하지 않나!

정말 리당위원장이 수고많았지. 전쟁이 끝나자 제대되여와서 조합초급당위원장으로 시작해서 오늘까지 고생도 많이 했고 사람들이 마음을 합쳐 일하도록 하느라 애도 썼지.》

김덕준이 술기운이 퍼지자 연설이 시작되였다.

《아닙니다. 당원들이 나를 도와주었지요.

덕준아바이랑 리규성동무랑 이 인정머리 없고 일밖에 시킬줄 모르는 임정주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일할수 있었겠소.

나는 어디 가든 원화리사람들, 당원들, 전 관리위원장과 현 관리위원장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요.》

임정주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 사람 리당위원장, 아니 이제는 군당지도원이지. 제가 일하던 고장이라 해서 인심을 베풀면 안되네. 특히 관리위원장을 이전처럼 달구어대라구. 그게 돕는게 아니겠나?》

《아바이, 임동무더러 관료주의를 하라고 추동질하는게 아니요?》

《아닐세.》

셋이 함께 웃었다.

잠시후 리규성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임정주를 뽑아가는 군당의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소. 임동무야 발전해가는것이 좋겠고 나도 응당 기뻐해야지요.

그래 기쁘기도 하지만 우리 조합의 기둥을 하나 뽑아가니 맥이 풀리오.》

《나도 솔직히 여기를 뜨고싶지 않소.》

《이 사람들, 그런 소리는 그만하라구.》

김덕준이 손을 내저었다.

《이제야 소용없지 않는가. 아니, 그래 이 김덕준이는 섭섭하지 않는가, 엉?》

김덕준이 울먹이였다.

때마침 작업반장들과 세포위원장들이 들어왔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간부들끼리만 모였구려.》

《좋은데 가면서 우리하군 인사도 안하고 가려했소?》

그들은 이런 불만들을 늘어놓으며 상에 비집고 들어와앉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임정주는 군으로 떠났다. 가족은 후에 데려가기로 하고 본인만 먼저 가는것이였다.

조용히 걸어가겠다고 하는것을 리규성관리위원장이 기어이 화물자동차에 태워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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