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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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여 행사를 끝낸 로동지도원이 모두 식탁에 앉을것을 지시했다. 속이 클클했던 손님들이 아래웃방에 차린 음식상에 둘러앉았다. 로동지도원의 축사는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음식상을 마주한 사람들이 지루해하였다.

《여러분네들, 이렇게 참석해주시여서 고맙습니다. 변변히 차린것은 없지만 많이 들어주십시오.》

축사의 뒤를 이은 동익의 형 동철이의 인사말로서 드디여 먹는 일이 시작되였다. 남자들은 술잔들을 들어 마시였고 서은옥이 만든 료리들에 저가락을 급하게 가져갔다. 녀자들은 조대우가 친 찰떡과 은정아주머니가 지진 지짐들을 먹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볶음이 맛있군.》

《이 산나물료리를 맛보라구.》

《장복덕의 며느리가 만들었겠지?》

《저 혜영이를 좀 보게. 오늘은 머리를 좀 숙이고있으면 좋겠는데 웃기까지 하는군. 요새 계집애들이란 참!…》

《좋아서 그래, 시집을 가니까.》

점점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녀자들은 찧고까불기도 할래 먹기도 할래 입이 쉴새 없었다.

《창고장이 안보이는군. 부위원장이 떼준 전표대로 숱한 물자들을 달구지에 싣고 왔댔는데…》

《아마 관리위원회에서 잔치에 참석하라는 지시까진 없었던 모양이군. 지시가 없었다고 잔치집에 물자를 싣고왔다가 그냥 돌아간걸 보면 역시 꼬장꼬장한 사람이야.》

마을민청위원장의 지휘밑에 처녀들이 자기들의 고향땅에 대한 애착심을 담아 전후에 창작되여 널리 불리우고있는 노래 《내 고향》을 불렀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아, 언제나 좋은 곳일세

    아, 내고향 어머니품아

 

나이든축들은 밀려났다. 전쟁을 겪고난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공장에서 농촌에서 청춘들의 젊은 심장들이 세차게 뛰고있었다.

전승의 그 기백, 그 기세로 전후복구와 사회주의건설에서 기적을 창조하며 온 나라가 전진하고있었다.

물론 나이든축들이라고 해도 지고싶지는 않았는지 강달수가 저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가

 

젊은이들은 누구도 그 낡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 강달수가 목청을 더 돋구었지만 《먼지가 인다》, 《곰팡내 난다》하는 소리로 대응했고 그러자 누군가 껄껄 웃어댔다.

신랑과 신부도 요청에 의해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일어서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그속에서 처녀들이 소곤거리였다.

《신랑은 키가 쭉 빠지구 신부는 얼굴이 떠오르는 보름달같구나.》

《신랑은 얼굴이 너무 검고 신부는 눈이 지내 크다얘.》

《부부뜨락또르운전수라! 참 멋있구나!》

늙은이들도 수군거리였다. 동네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로인이 옆에 앉은 로인의 귀에 대고 담배대진내를 풍기며 말했다.

《녀자가 뜨락또르를 탄단 말이지.》

로인은 이발이 없어서 돼지고기를 입안에 넣고 호물거리였다.

여기서 태여나 여태 다른 고장에 가본적이 없다는 토배기로인이 대꾸했다.

《전쟁때 녀자가 비행기까지 타고 싸운걸 모르나? 용하지!》

흥이 난 아낙네들이 아예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너펄거리는 치마를 보다못해 두 로인은 《우린 가세》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느지막해서 관리위원장과 리당위원장이 나타나 신랑신부를 축하해주었다.

사람들이 즘해지자 혜영이가 속살거렸다.

《피곤해 죽겠어요.》

《얼마나 좋소. 아까 민청원들이 노래를 불렀지만 여기서 내가 뜨락또르를 몰고 농민들의 힘든 일을 대신하며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을 피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지누만. 난 이젠 여기 농민들과 한식솔이 되였소.》

동익은 피곤해서 나른해진 혜영이의 따뜻한 손을 상밑에서 가만히 잡아주었다. 동익이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중한 안해로 된 혜영이와 같이 뜨락또르를 몰고 전야를 달리게 될 생각을 하니 어찌도 흐뭇한지 꼭 잡은 그의 손을 놓지 못했다.

모두 흥에 겨워 떠드는데 채재식만이 중땅크처럼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별로 취하지 않는 그를 보며 강달수는 재식의 몸속에는 아마 술을 중화시키는 무슨 액이 흐르고있는것 같다고 놀라와했다.

암적마을의 엄지손가락이라 할수 있는 3작업반장 박영준이가 이 잔치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자못 중요했건만 그는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 딸 미순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때문이였다. 그는 딸과 타협하여 배치를 받은 평양에서 일을 잘하라고 말해 보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였다. 미순이가 울음을 터치고 로친이 옆에서 야단치기때문에 타협한것이였다.

그는 지금 동익이의 잔치에 참석하여 그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한쪽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미순이 생각에 아쉽고 분하기도 했다.

고향땅에서 뜨락또르를 몰고있는 혜영이는 얼마나 장한가. 아무리 평양에 가있다고 해도 혜영이에 비하면 우리 미순이는 한참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식복이 없지.)

박영준은 긴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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