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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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순이가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전달받은 후 빨간 뚜껑을 씌운 학습장을 옆구리에 끼고 깊은 생각에 잠겨 층계를 내려와 자기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전화기가 종소리를 냈다.

《미순입니다.》

《여기 접수에 웬 청년이 와서 기다립니다. 꼭 만나야 한답니다.》

《알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미순이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어쩐지 철수가 찾아온것같은 예감이 들어 불안스러웠다. 그렇지만 대담하게 청사현관을 나섰다.

2월중순의 바깥날씨는 추웠다. 미순이는 외투를 입고 털목도리를 두르고있었다. 조심스럽게 접수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장이 흠칫했다.

예감이 들이맞았다. 철수가 두손을 외투주머니에 지르고 서있었다. 대동강에 스케트타러 가자고 전문학교기숙사에까지 미순이를 찾아왔던 그날처럼 겨울모자를 쓰고 짧은 락타직외투를 입은 키가 훤칠하게 잘 생긴 그 미남자였다. 처녀를 보는 그의 검은 눈은 어딘가 마음속깊은 곳을 들여다보는듯 컴컴했고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미순이는 담담한 눈길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녕하오, 미순동무?》

철수가 주머니에게 손을 뽑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답례하며 여전히 철수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기다렸다. 철수를 만나니 가슴이 설레였지만 애써 눌렀다. 한것은 철수가 상봉의 기쁨을 가볍게 나타내지 않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가 왜 이렇게 엄엄하게 보일가?

철수는 눈길을 떨구고 조용히 말했다.

《오래간만이요.》하며 다시 처녀를 쳐다보는데 그의 컴컴해보이던 눈에서 불꽃이 튀는듯 했다.

《밖에 나갑시다.》 그가 말했다.

《예.》

미순이는 철수를 뒤따랐다.

접수실 문밖에 나서자 휙- 바람이 불면서 그들의 외투자락을 잡아당기였고 미순이의 목도리레스장식과 목도리밑으로 삐여져나온 검은 머리카락을 날리였다.

《저기 가서 앉읍시다.》

철수는 잔디밭에 눈이 얇게 깔려있는 크지 않는 공원을 가리켰다. 그리고 큰길로 자동차들이 달리건 인도로로 행인들이 오가건 관계치 않고 미순이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철수의 손은 차거웠다. 미순이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차츰 철수의 손도 따뜻해졌다.

철수가 잎이 다 떨어진 키작은 나무아래에 놓인 긴걸상우의 눈을 장갑으로 털고 처녀를 앉히고 자기도 그옆에 붙어앉았다. 앉아서 잠시 마음을 갈아앉힌 철수가 침착한 목소리로, 그러나 열정적으로 말했다.

《나는 오늘 도저히 견딜수 없고 나자신을 더는 걷잡을수 없어 이렇게 찾아왔소. 나는 미순이를 사랑하오.》

그의 눈은 애정의 열기로 불타고있었다.

미순이는 숨이 콱 막혀왔다. 남자에게서 듣는 첫사랑의 고백이였다.

《내가 오늘까지 어떻게 참아왔는지 그것은 아마 사업때문이였겠지. 성산하 기계공장들을 돌아다니느라 바삐 지냈소. 그건 사실이요. 하지만 시간을 내면 내는것이였소. 다만 동무의 공부에 방해될가봐 참았소. 참고참았단 말이요.

미순이, 나를 동무의 심장에 받아주겠소?》

이미 추위도, 바람도, 오가는 행인도 다 느끼지 못하고있는 미순이는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일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동무가 도에 배치받은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요.》

철수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미순이는 문득 정신이 들었다. 리성이 되살아났던것이다.

미순이는 그윽해진 고운 눈으로 불이 황황 이는 철수의 눈을 마주 보았다.

《고마워요, 철수동무! 나같은 보잘것없는 녀자를 사랑한다니 저는 정말 행복감에 취할것 같애요.》 그는 가까스로 말했다.

《미순이!》

철수는 미순이의 두손을 꼭 그러쥐려 했다. 미순이는 그것을 가볍게 제지했다.

《내 말을 마저 들어주세요. 철수동무는 높이 서있는 사람이예요. 나같은 농촌출신의 전문학교졸업생은 감히 쳐다볼수 없는 큰 사람이예요.》

《무슨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오? 인간적가치와 미는 그의 직급이나 학력에 의해 좌우될수 없소. 서로 정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융합이 되면 되는거요. 자, 어서 대답해주오. 내 심장이 불에 타서 재가 되기 전에!》

철수는 애가 타서 어쩔줄 몰라하며 소리쳤다.

미순이도 안타까웠다. 처녀는 철수에 대한 애정과 동정에 이끌려 그의 품에 와락 안기고싶었다. 모든것을 다 잊고 청년의 사랑에 취하고싶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치받은데 가서 일을 잘해라.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너만 잘되면 한이 없겠다.》

서글픈 목소리였다. 외동딸을 키우고 공부시켜 날려보내고 고향에 남아있는 아버지, 어머니!

…그분들을 평양에 모셔다 내가 봉양해야 한다고 결심했었지만 그분들은 고향땅에 깊이 뿌리내린 이 나라의 농민들로서 그 뿌리를 뽑아 옮길수 없는것이다.

…며칠을 두고 밤을 밝혀가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미순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나는 연약한 녀자예요.》

《미안하오. 내가 그만…》

철수는 처녀의 눈물을 보자 괴로움에 심장이 터질듯 했다.

미순이는 그가 가엾게 생각되였다.

(철수동무, 나도 동무를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철수동무, 미안한건 접니다. 내가 동무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니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융합될수 없어요. 철수동무는 우리 나라 기계공업분야의 귀중한 존재예요.

수상님의 평가도 받은 나라의 인재, 수재입니다. 앞길이 창창해요. 여기에 제가 장애로 될수 없습니다.》

철수는 억이 막혀 처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 들어보세요. 다시말하지만 우린 융합될수 없어요. 인생길이 합쳐질수 없으니까요.

저는 방금 경애하는 수상님께서 하신 교시를 전달받았습니다.

수상님께서는 농업학교를 나왔으면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직접 지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공부를 하고 도시에서 건들거리는것은 잘못하는것이지요. 건들거리지 않는다 해도 지금 당은 농촌으로 청년들을 특히 농업기사, 기수들을 부르고있지요. 저는 결심했어요. 고향 농촌에 가서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으려고 이미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을 누구도, 그 무엇도 바꾸게 할수는 없어요.》

미순이는 숨이 차 할딱이며 잠시 쉬고 깊은 마음속을 헤치였다.

《철수동무, 저는 동무의 사랑을 귀중히 여기며… 저도…》

미순이는 철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마음이 달라질가봐 얼른 머리를 들고 걸상에서 일어섰다.

암담해진 철수는 그저 묵묵히 처녀를 지켜볼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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