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4 장

46

 

철수를 만나 확고한 결심을 말하고 결별을 선언하기까지 했지만 미순이의 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그는 철수를 사랑했던것이다. 그리하여 동요가 생길가봐 미순이는 서둘러 도농촌경리위원장에게 농촌현지로 보내줄것을 제기하였다.

미순이의 일솜씨와 녀성다운 풍모를 좋게 평가하고있는 위원장은 즉시 부결하였다. 위원장의 론거는 평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 아직 정원이 다 차지 않았다는것과 똑똑한 사람은 아래에도 있어야 하겠지만 도에 더 필요하다는것이였다.

《같이 있기요. 나는 출근해서 미순이를 한번 보기만 해도 그날은 종일 기쁘고 즐겁다니까.》 하고 위원장은 롱까지 했다.

미순이가 아무리 설명하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다. 미순이는 생각다 못해 도당위원장을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도당위원장을 만난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미순이는 녀성다운 꾀를 생각해냈다. 언제 무슨 문제를 토의하는 회의가 도당위원장사무실에서 열린다는것을 알아낸 그는 도당청사안에 미리 들어가있다가 도당위원장방이 있는 2층 복도에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회의참가자들이 몰려나오는 혼잡을 리용하여 미순은 그 누구의 허락도 받음이 없이 무작정 당위원장방으로 뛰여들어갔다.

회의참가자들의 땀내와 체온으로 하여 공기가 혼탁되고 후끈해진 방안에 미모의 처녀가 들어서자 피창린은 이게 웬 처녀인가 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신비로워했다.

《처녀동무는 누구요?》

처녀를 놀랍게 눈여겨보며 물었다.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원장동지를 만날것같지 못해서…》하며 미순이는 자기 소개를 했다.

《우선 거기에 앉소.》

미순이는 걸상에 공손하게 앉았다.

《그래 무슨 일로 갑자기 날 찾아왔소? 도농촌경리위원회의 젊은놈들이 성화를 먹이던가?》

미순이는 얼굴을 붉히였다.

《더러 그런 일이 없진 않지만 그런 일로 아무렴 도당위원장동지를 찾아왔겠습니까?》

《하하… 참 재미나게 말하는구만. 괜찮아, 평남도에 원래 똑똑하고 고운 체네들이 많지. 그래 무슨 일때문인지 어디 들어보기오.》

담배를 피워물고 처녀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처녀가 하는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었다.

다 듣고나서 말했다.

《그런거야 동무네 위원회의 행정이나 당위원회에 제기해야지.》

피창린은 시종 우선우선한 얼굴이다.

《도당위원장동지, 그분들은 저의 제기를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릇없이…》

《그러니 나더러 월권행위를 하라는건데?》

《수상동지의 교시를 받들고 농촌현지에 진출하려는 저의 제기가 잘못되였습니까?》

그러자 피창린이 껄껄 웃었다.

《막 답새겨대는군.》

피창린은 정색하여 처녀의 고향이 어딘가고 물었다.

《평생 땅을 가꾸어오는 농가에서 태여난 농민의 딸이군!》

피창린은 미순의 대답을 듣고나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겠소, 잘 알겠소. 그래 어디로 가려 하오? 고향마을에?》

미순이는 대답했다.

《예, 고향마을에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도당위원장의 시야는 넓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을 깊이하며 사무실안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미순이앞에 멈추어섰다.

《내 생각은 이렇소. 처녀가 공부를 하고 고향마을에 가서 과학기술적으로 농사를 짓겠다는것은 아주 좋소. 응당 그래야지.

그런데 말이요, 꼭 자기가 태여난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겠소? 원화협동농장은 이름난 농장이요.

수상동지께서 농업협동화운동을 령도하시면서 원화협동농장에 자주 나가시였지. 그래 이름이 났지. 지금은 수상동지께서 열두삼천리벌에 있는 농장들을 중시하시고 거기에 자주 나가시오.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도 숙천군에 맨 처음으로 조직해주시였지. 시대와 시기를 보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소. 나는 처녀동무가 숙천군에 가서 한번 본때있게 일했으면 하오. 어떻소?》

미순이는 부모님들을 모셔야 할 딸자식의 의리도 지켜 이미 고향으로 가기로 결심하고있었지만 사실 당의 농업정책의 현실적요구로 보아 열두삼천리벌에 진출하는것이 옳겠다고 인정하게 되였다. 그러나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숙천군에 가오. 정들면 고향이라 했는데 나도 고향은 숙천이 아니지만 숙천사람으로 되였소.

군당에서 오래 일하며 숙천사람들에게 정이 들었거던.

…물론 나는 처녀에게 강요하지는 않소. 단지 고향에 대한 좁은 견해와 인식을 넓게 가지기를 바랄뿐이요.

동무가 태여나 자란 원화땅도, 이제부터 배운 지식으로 농사지어야 할 열두삼천리벌도 다 조국이라는 하나의 넓은 품에 있는 농촌마을들이요.》

피창린위원장의 권고는 옳은것이였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이내 접수하지 못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하고 물러나왔다.

며칠을 두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내 고향마을의 부모님들만 생각하는것은 편협한 관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처녀는 도당위원장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숙천에 도착한 미순이는 원화협동농장에는 가지 않았어도 군안의 협동농장에 내려가서 일하려는 열망을 안고 군경영위원회에 강경하게 제기했다.

《동무 고집이 이만저만 아니군, 좋소. 대체로 사람들이 내려가라 하면 구실을 대며 뻗칠내기를 하는데 동무는 반대구만.

그래서 놀랍기도 하오. 나는 사실 동무가 마음에 드오.

경영위원회에 붙잡아두고싶단 말이요. 그렇지만 양보하겠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어느 협동농장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열두삼천협동농장에 보내주십시오.》

《거긴 왜 가려하오?》

《사회주의농촌건설의 현시기 수상님께서 중시하는 농장의 하나이기때문입니다.》

경영위원장은 감동되여 머리를 깊이 끄덕이였다.

《새시대 청년지식인이 다르오. 동무는 우리 군에 온 보배요.

내 동무를 적극 도와주겠소. 거기에 알맞춤한 일자리가 있소.

수상님께서 1957년 1월에 오시였을 때 서해지대에서 애로되는것이 무엇인가고 물어보시였댔소. 지금 관리위원장 박기석동무가 당시에도 관리위원장을 했는데 그가 벼종자가 해마다 잘 서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소.

수상님께서 벼종자는 어떤 종자를 심으며 종자가 잘 서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가고 다시 물으시였소.

관리위원장이 어떤 종자를 심는지 말씀드리고 종자가 잘 서지 않는 리유는 땅에 염기가 있고 봄바람이 많이 불기때문이라고 말씀드리자 수상님께서는 그러면 여기에 농학연구소 분실을 하나 두고 간석지와 서해지구 토양을 연구하여 애로를 풀어주도록 하자고 말씀하시였소.

그 분실에 온 농학자들이 일을 많이 했소. 영농과학보급실도 운영하고 특히 수상님의 말씀을 받들고 농장에서 방풍림을 조성하여 바람을 막고있소. 농학자들이 많은 일을 해놓았지만 아직 해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소. 어떻소? 열두삼천협동농장에 가서 무엇을 하겠는지 알만하오?》

《알만합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우선 농사를 지으며 농장원들에게서 배우겠습니다.》

경영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위원장이 내준 승용차를 타고 열두삼천협동농장이 있는 창동리에 도착하였다. 간석지를 거쳐 불어오는 습기와 쩝쩔한 염기와 감탕내가 밴 해풍에 미순이의 머리카락을 감싼 꽃을 수놓은 머리수건이 날리였다. 그것은 마치 그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것이라고 예고하는듯 하였다.

미순이는 바다바람을 페장깊이 들이키며 새로운 고장에서의 첫걸음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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