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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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나날에 만나보시고 낯을 익히였던 농민들이
농민들은 새 옷들을 깨끗히 입고있었지만 그것에 대조되여 옹이 박히고 흙물이 밴 손들과 볕에 타고 들바람에 튼 얼굴들이 더 거칠고 컴컴해보이였다.
조국의 대지를 가꾸는 거칠고 투박한 농민들이 어려워하며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 소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우시였다.
리규성관리
전후 제대되여 오니 아버지는 모범농민이라고 적들이 학살했고 어머니는 미국놈비행기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석암저수지가 파괴되면서 물난리를 겪을 때 집과 함께 떠내려갔다.
그를 조합에서 따뜻히 보살펴주고 색시까지 얻어주었다. 그는 김덕준의 후임으로 관리
김덕준아바이는 원화마을의 로세대, 실농군이며 토지개혁후 애국미를 많이 나라에 바친 애국농민이다.
전쟁시기 마을의 첫 세포
농산3작업반장 박영준이는 농사를 자기식으로 지으려 하는 고집이 세고 성실하고 책임적인 실농군이다.
농산1작업반장 전창옥이는 원화리의 첫 세포
《영준반장동무, 군경영위원회가 나온 다음 어떻소? 달라진것이 있소?》
《그전에는 군인민위원회 지도원들이 내려와서는 저보고 날자를 지키지 않는다고 〈령감은 아직 개인농때 버릇을 못뗐단 말이요.〉하고 꽥꽥 소리쳤는데 지금은 군경영위원회 지도원들이 제가 내놓은 주장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합니다.》
《실농군의 창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김덕준이 말씀드리였다.
부관이 원화협동농장 농민들이
《고맙소, 내 그 찹쌀로 떡을 치고 오이절임을 찬으로 해서 잘 먹겠소. 덕준아바이, 고맙습니다.》
《아니올시다.
《나는 별로 도와준게 없는데 무슨 분배몫이요?》
《아니올시다.
리규성이 벌써 저금통장을 꺼내들고있다가 드리였다.
《보아주십시오.》
《이 많은 돈이 내가 번것이요? 허!… 분배몫을 어떻게 계산했소?》
《우리 농장에서 그해에 제일 많이 분배받은 농장
리규성이 대답드리였다.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 분배를 주겠으면 농장의 평균수준에서 하시오. 그리고 이 저축금으로는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사서 농장에서 쓰도록 하시오.》
또다시
《
《그리고 가능하면 돈을 좀 남겼다가 부모들을 다 잃은 고아들에게 속옷과 신발을 사주오. 학생복은 다 타입었을테니까…》
남편을 원쑤놈들에게 잃고 세 자식을 힘들게 키워온 전창옥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었다.
《진수성찬은 없소.》
《이것은 언감자국수인데 내가 산에서 싸울 때 유격구의 어머니들이 눌러주었댔소. 그때 너무 맛나게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이 언감자국수를 특식으로 먹소. 자, 듭시다.》
《천천히 많이 드시오.》
《예, 많이 들겠습니다. 국수맛이 별맛입니다.》
《한그릇씩 더 잡수시오.》
《예, 더 먹겠습니다.》
박영준이 서슴없이 대답드리는데 리규성이는 버릇없이 그런다고 좋지 않게 그를 흘끔 쏘아보았다.
《농장에서 축적은 얼마나 했소?》
리규성이에게 물으시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공동축적금과 사회문화기금, 종자를 내놓고 국가에 농업현물세와 기타 사용료는 얼마나 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리규성이 뜨락또르작업료, 관개사용료, 기본건설비(살림집, 탈곡장, 창고 등의 건설비), 비료값을 얼마씩 물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니 농장들에서 쌀을 많이 생산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농장원들에게 돌아가는 분배몫이 적어질수밖에 있는가,
《지난해에 농장이 번 돈에서 분배를 얼마큼 했소?》
《절반정도 분배했습니다.》
《우리 국가가 아직 농촌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있소.》
《개인들도 마찬가지요. 누구나 농촌에 갔다가 올 때면 쌀이든 콩이든 하여튼 무엇이든 들고오지 빈손으로 오지 않소. 이것이 다 농촌을 허술하게 보는 관점이요. 농민들을 업신여긴단 말이요.》
《이제부터는 도시사람들이 농촌에 갈 때 무엇이든 들고나가게 해야 하오. 우리 국가가 농촌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사업을 정책화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