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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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령님께서 시원스럽게 즉시에 풀어주시니 관리위원장은 더 말할것 없고 도당위원장 피창린도 가슴에 걸려 무죽하던것이 금시 내려가는것같았다. 사실 이런 공사는 도의 힘으로는 힘들었다.

《로력문제인데, 돌쌓는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이께서는 잠시 생각하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청천강사업소와 군대를 동원시킵시다.》

《그러면 농민들이 농사일에만 관심하게 될것입니다.》

피창린이 좋아했다.

《농민들이야 농사를 지어야지. 창동리농민들이 해마다 고생했는데 국가의 힘으로 장석을 입힙시다. 또 무엇이 걸리오?》

관리위원장이 《갑문이 필요합니다. 갑문이 있어야 장마때에 고이는 물을 뽑을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몇개나 필요하오?》

《4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도내 관개관리소에서 맡아할수 있지 않소?》

피창린을 바라보시였다.

《예,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기술자들을 보내서 장석을 입힐데 대한 기술보고서를 꾸밉시다. 채석장은 어디에다 하고 배는 몇척이 요구되고 자재는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가, 다 계산하게 하시오. 내가 한번 보겠습니다.》

이어 관리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또 무엇이 걸리오?》

《없습니다.》

《왜 없겠소? 내가 문화주택을 지으라고 했는데 얼마 짓지 못하지 않았는가.》

《예, 사실…》

관리위원장이 말못하는 사정을 수령님께서 헤아려보시였다.

《농사를 지을래, 동뚝과 싸우기도 할래, 자재도 로력도 딸렸겠지.》

《…》

박기석이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이 농장의 살림집건설도 국가의 자금으로 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박기석이 아파하는 문제가 또 하나 풀리게 되였다.

수상님, 정말이지…》

박기석은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했다. 피창린이도 문화주택을 짓지 않는다고 이 농장의 일군들을 비판은 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

《농촌건설대를 보내주고 자재도 해결해줍시다.

설계를 잘해야 하오. 동무들, 보시오.

저 집들의 처마가 왜 저렇게 길게 내려덮였는지 아오? 여기는 비바람이 세기때문이요. 그러니까 방안이 어둡단 말이요. 그렇기때문에 문화주택을 많이 지어서 농민들이 문화적인 생활을 하게 해야 하오. 살림집을 어떤 형식으로 짓는것이 좋겠습니까?》

수행성원들과 농장일군들이 생각을 하고있는데 김만금이 말씀드리였다.

《현재 문화주택으로 짓고있는 단층집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수령님께서 원화마을에 다층문화주택을 지어주신 후 몇년 지나 가보시니 불편한 점이 느껴지시였다.

그래서 농민들에게는 2층집이 잘 맞지 않는다고, 앞으로는 단층집으로 지으라고 말씀하시였었다.

그런데 이 고장은 사정이 달랐다.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고 비풍이 심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야 하오. 여기는 사정이 다릅니다. 여기 얼마나 파면 물이 나오오?》

관리위원장이 대답을 드리였다.

《2m 파면 물이 나옵니다.》

《여름에는 불을 때오?》

《불을 때지 않으면 습하고 방이 찹니다. 지난해에 정일룡부수상이 와서 터를 높이고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바람이 세고 습기가 많으니 사철 불을 때야 하는데 그러자면 석탄불을 피워야 하오. 석탄을 매 집에 운반하는것은 곤난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에서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며 여러모로 따져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이 지방에서 주택건설을 장차 예견성있게 해야 하오.

2~3년이 문제가 아니요. 몇십년후가 문제입니다.

한집을 두칸으로 짓되 한방을 온돌방으로 하면 될것이요. 그리고 부엌은 물론 창고도 하나 큼직하게 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문화적인 생활을 할수 있지 않겠소?》하시며 피창린을 보시였다.

《그렇게 하면 우선 아주머니들이 좋아할것입니다.》

《주택건설에서 반드시 장래를 생각해야 하오. 창동리가 1 400세대니까 한부락에 한 500세대씩 세개 부락으로 지읍시다. 부락을 형성할 때 부락둘레에 물홈을 파고 그 흙으로 집터를 돋구어 닭알처럼 두드러지게 하면 집주변의 습기도 없앨수 있고 나무를 심으면 마을의 운치를 돋굴것이요. 마을 네귀에 다리를 놓고 포전으로 나가는 길을 직선으로 뽑아 일나갈 때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가게 합시다.》

이렇게 세심하게 일러주시고 수령님께서는 문화주택을 단층으로 지을것인가 다층으로 지을것인가 하는데서 의견이 제기되였으므로 그것을 고려하시면서 김만금에게 말씀하시였다.

《농업위원회 위원장동무의 의견에 일리가 있습니다. 농민들은 다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좋아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주택을 짓는 문제를 연구해봅시다. 한 부락은 지금처럼 단층으로 짓고 한 부락은 다층으로 지어서 어느것이 더 편리한가를 봅시다. 도에서도 좀 생각해보시오.》

평남도당위원장, 농촌경리위원장이 연구해보겠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장의 기계화정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료해하시였다. 박기석은 올해에 기계로 모내기를 해보았지만 부족점이 많았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아직 익숙되지 않아서 그럴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전망적으로는 모내기뿐 아니라 가을걷이도 다 기계로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농민들을 힘든 농사일에서 해방시킬수 있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올해 가을에 호당 분배는 얼마나 예견하오?》

《호당 4t 500k정도 예견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의 투쟁목표는 농호당 알곡 3t, 현금 1 000원의 분배를 받도록 하자는것인데 이 농장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이 농장에 농산기사가 몇명 있는가 알아보시였다. 기사 한명에 기수 다섯명이였다.

농장이 크니 기사, 기수가 그쯤되는것이겠지만 기사가 적었다.

《농산기사가 여기에 참가했소?》

《농산기사와 기수 두명이 군에 기술강습갔고 여기에 두명 있는데 그들중에서 한명만이 참가했습니다.》

《누구요?》

새까만 작업복을 가뜬하게 입고 몸매가 탄력있고 균형잡힌 처녀가 일어섰다. 그 처녀에게서는 청춘의 활력이 넘치고있는듯 했다.

《제1작업반 3분조장 박미순이 수상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처녀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려펴지였다.

《분조장을 하는구만! 어느 학교를 나왔소?》

《평양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고 바로 이 농장으로 왔소?》

《평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일하다가 금년초에 진출했습니다.》

뺨이 능금처럼 익은 처녀의 씩씩하면서도 흥분에 떠는 대답을 들으시며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신천군에 가셨을 때 만나보시였던 녀성농산기사가 상기되시였다. 그 기사도 자원진출하여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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