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제 4 장

48

(3)

 

박미순이라고 하는 처녀가 기특했다. 지금 당의 호소를 받들고 각지에서 로동자, 사무원들이 광범하게 농촌에 진출하고있는데 그중에는 자원진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출자로 지명되였어도 이핑게저핑게를 대며 진출자대렬에서 빠지거나 빠지려하는 경향도 나타나고있어 그 사업이 일정하게 난관을 겪고있었다.

《농촌에 가라면 다들 좋아하지 않고 지어 끔찍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처녀동무는 참 기특하오.》

수령님께서는 볼수록 처녀가 대견하여 고향은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순안군 원화마을입니다.》

《아, 원화처녀구만!》

수령님께서 무척 반가와하시였다. 여기서 원화리의 처녀를 만나다니!

《내가 전후에 원화협동농장에 많이 다녔는데 그때는 학생이였겠지. 여기서 나와 인연이 깊은 농촌마을의 처녀를 만나니 반갑구만. 부모님들이 다 농민들이겠지?》

혹시 아시는 농장원일수도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품으시고 물으시였다.

《예, 원화협동농장 암적에서 태여나 지금껏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원화협동농장의 오랜 농사군가문이면 내가 아버지를 알수도 있겠는데?》

원화협동농장의 많은 농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계시는 수령님이시였다.

미순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눈이 유난히 반짝이였다.

수상님, 저의 아버지는 3작업반장을 하는데 수상님을 여러번 만나뵙는 영광을 지닌 농민입니다.》

《그럼 동무 아버지가 박영준반장이요?》

《예, 수상님! 금년 4월 수상님의 저택에 찾아가서 수상님께 생신날 인사를 드리고 언감자국수를 잘 대접받았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즐겁게 웃어댔다.

수령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생일날에 원화마을 농민들을 만나보았다고, 내가 지금은 그곳에 다니지 않는데도 그들은 나를 여전히 명예농장원으로 등록하고 매해 나에게도 분배몫을 계산해서 저금통장에 올리고있다고, 고마운 농민들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원화처녀가 어떻게 고향에 가지 않고 창동리에 와있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미순이가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머뭇거리자 도당위원장 피창린이 그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사실은 아버지가 딸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꼭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했고 딸도 그렇게 할 결심이 확고했는데 고향에 대한 애착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시기 사회주의농촌건설의 본보기농장에 진출하는것이 옳겠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설복시켰으며 그래서 열두삼천협동조합에 오게 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 그의 설명을 대단히 흥미있게 들으시며 줄곧 미순이에게 눈길을 주고계시였다.

《똑똑한 동무요. 우리가 농업협동화를 하던 시기에는 원화협동조합에 자주 다녔지만 그후 사회주의농촌건설시기에 들어서서는 여기 숙천과 문덕에 자주 다니오.

숙천군은 농촌기계화의 모범단위요. 이 열두삼천협동농장에만도 수십대의 뜨락또르가 일하고있소.

그러니까 원화처녀가 원화벌을 떠나 창동리에 나타난것은 우리 농촌의 발전력사를 상징한다고 말할수 있소!》

수령님께서 하신 뜻깊은 말씀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곳 농장사람들, 중앙에서 내려온 농업부문일군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미순이는 더 말할것 없다. 자기가 숙천에 진출한것을 그토록 높이 평가해주시니 크나큰 감격이 가슴을 꽉 메우고 눈굽을 뜨겁게 했다.

《동무와 같이 공부한 기술자들이 농촌에 많아야 하오. 동무는 평양에서 농촌에 진출했으니 당의 뜻을 옳게 받들었소.

농업을 공부한 사람이야 농촌에 나와서 농사를 지어야지 도시에 앉아서 입으로 농사 지으면 되겠소?

당중앙은 동무같은 진출자들을 평가하오.》

참가자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드리였다.

미순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였다.

나도 신천군의 그 녀기사처럼 농촌에 진출하여 수상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다는 긍지, 무한한 행복감으로 충만되여 심장이 세차게 맥박쳤다.

내 이 영광과 은덕을 어머니조국의 대지에 씨앗으로 뿌려 풍작의 보답으로 가꾸어가리라.

《관리위원장동무, 처녀동무가 분조장을 한다는데 내 생각에는 작업반장이나 작업반기술지도원을 시키는것이 좋을것같소. 한개 분조는 너무 범위가 좁소.》 수령님께서 의견을 내시였다.

《저희들이 작업반기술지도원을 하라고 권고했었는데 미순동무는 우선 농민들과 같이 땅을 다루며 손부터 익히겠다고 했습니다.》

《호미를 쥐고 밭고랑을 타고 앉아야 땅을 다루는것인가.

공부한 사람은 기술적지도를 통해 땅을 다루어야지, 그렇지 않소? 응, 처녀농산기수동무!》

미순이는 해볕에 하얀 이를 눈부시게 빛내이며 밝게 웃었다.

수상님 말씀대로 조국의 대지를 풍요한 옥토로 가꾸어가겠습니다.》

《아주 좋아, 원화처녀!》

사람들이 즐겁게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시여 박기석이에게 해안방조제공사를 하면 정보당 평균수확고를 얼마나 높일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5t은 낼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5t이면 괜찮지. 해안방조제공사도 해, 문화주택도 지어줘, 끌끌한 로력을 보충해주어, 뜨락또르도 더 주어, 이러면 1만t을 할수 있겠지?》하시며 미소을 지으시였다.

수상님, 꼭 1만t농장으로 되겠습니다.》

그이께서 고개를 끄덕이시고 말씀하시였다.

《이제 중국에서 숙천군에 견학옵니다. 우리의 군경영위원회가 어떤것이고 어떻게 생활력을 나타내고있는지 보게 됩니다.

여기 창동리에도 와볼수 있습니다. 현재 창동리는 호당 분배가 4. 5t을 내다보는 발전하고 부유한 농장으로 되였습니다.

동무들은 긍지를 가지고 알곡생산을 더 늘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다른 나라 손님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어느 나라 국가수반은 우리의 현실을 보고 조선은 새 농촌, 새 도시, 새 사람, 새 사상, 새 경제를 가진 새 국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사회주의나라들과 새로 독립한 나라들에서 온 손님들은 우리 나라를 대단히 칭찬하고 갔습니다. 그들은 주로 우리 농촌을 보려 합니다. 우리 나라는 도시와 농촌 그 어디서나 창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으며 천리마의 기상이 나래치고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농촌에서 할일이 아직 많습니다. 창동리는 앞선 농장으로서 잘살지만 그렇지 못한 협동농장들이 있습니다. 있어도 많습니다.》

그렇다, 아직도 어렵게 사는 협동농장들이 적지 않다.

전기를 못보는 마을, 덮을 이불도 없는 세대, 겨울외투를 입지 못한 어린이들, 작업복을 공급받지 못한 농장원들, 땅이 척박한 농장들…

무엇보다도 이처럼 뒤떨어진 협동농장들에 국가적방조와 지원의 손길이 가닿아야 할것이다.

우리가 알곡생산을 늘이고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대책을 취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가는 농촌사업의 획기적발전을 위해 더 많은것을 해야 한다. 공업이 농업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도시가 농촌을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