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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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리라고 하는 전국적으로는 물론 평안남도안에서도 알려지지 않았던 가난한 고장에 련이어 경사가 났다. 관리위원장이 자동차 2대를 이끌고 평양으로 갔다.

그 자동차들은 수령님께서 몇년전에 이곳 협동농장(당시는 협동조합이였다.)에 잠간 들리시여 농사일과 사는 형편을 알아보신 후 배려하여주신 차들이였다.

오늘 그 자동차들을 가지고 도에 가서 수령님께서 또다시 배려하여주신 솜옷, 작업복, 신발, 아이들의 겨울외투와 학생복을 받아오려고 관리위원장이 떠난것이다.

숙천군의 열두삼천협동농장처럼 알곡을 많이 내고 분배도 넉넉하게 받아 부유해진 협동농장들이 해마다 늘어나고있는데 선도협동농장은 원래 땅이 척박하고 경제토대가 약해서 좀처럼 추서지 못하고있었다. 농업협동화를 끝내고 리단위로 통합이 된 협동조합들의 경제적토대를 강화하도록 국가에서는 적지 않은 대부금과 대여곡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현금분배가 별로 늘지 못했다.

그래서 선도리에는 국가에서 팔아주는 아이들의 옷이나 어른들의 동복을 사입지 못하는 세대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도당위원장과 만나신 자리에서 알게 되신 수령님께서 무상으로 옷들을 보내주시는것이였다.

관리위원장일행이 자동차 2대에 아이들과 어른들의 옷들을 싣고 마을에 도착했다. 그 도착을 아침부터 기다리며 관리위원회 마당에 모여들어 추위속에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있던 농장원들이 차들을 에워싸고 옷들을 부리우면서 웃고 울며 만세를 불렀다.

농장원들과 아이들이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김일성원수님 만세!》를 웨치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위원장도 눈물을 금치 못했다.

농장원들은 솜옷들을 입어보면서 《이렇게 폭신하고 따뜻한 솜옷을 무상으로 주시다니, 내 무엇이라고 그 고마운 심정을 다 말하겠소. 우리 수상님께 큰절을 드립니다.》하는가 하면 《집에 아이들이 넷이예요. 돈이 모자라 교복과 외투를 사입히지 못해 늘 가슴이 타고 부모구실을 못하는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는데, 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양을 좀 보시라요! 내가 무슨 어미입니까! 우리 수상님이 어버이십니다. 고맙습니다. 수상님!》 하고 눈물을 쏟는 녀인도 있었다.

돈이 모자라 겨울옷을 사입지 못했던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새옷을 입고 기뻐하며 뛰여다니는 모양을 어찌 눈물없이 바라볼수 있으랴.

뒤이어 전기를 놓는 공사가 진행되였다. 전주대가 세워지고 전기줄을 늘이였으며 전기를 못보던 농가들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이러한 때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장이 도에서 소집하는 회의에 참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두사람은 외모를 단정히 한 후 솜옷들을 입고 점심밥을 싸가지고 걸어서 도당위원회청사까지 갔다.

도당의 일군이 그들을 예술극장으로 가서 회의에 참가하라고 했다. 도내 관리위원장들과 리당위원장이상이 다 모인 큰 회의를 극장에서 한다는것이였다.

참가자들이 다 모이자 까만색닫긴옷을 입은 피창린이 사업수첩을 들고 연탁에 나와섰다.

그는 회의참가자들을 쭈욱 둘러본 다음 처음에는 낮은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으나 점차 어성이 강해지면서 회의장안이 쩡쩡 울리였다.

《며칠전에 황해북도 당 및 행정경제기관 일군협의회가 진행되였습니다. 여기에 각 도당과 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들이 방청으로 참가했습니다.

협의회에 앞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도안의 몇개 협동농장들을 돌아보시였습니다. 이제부터 협의회에서 하신 수상동지의 교시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회의참가자들이 무릎우에 사업수첩을 펼쳐놓고 만년필뚜껑을 열었다.

리규성은 미순이가 방학때 와서 준 만년필촉에서 잉크가 제대로 나오는가를 시험하려고 수첩의 귀퉁이에 그어보았다. 제대로 나왔다.

《수상동지께서는 협동농장들에서 올농사를 잘 지었지만 생활이 아직 펴이지 못하고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겨울옷을 변변히 입지 못하고 다니는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고 하시면서 황북도의 은파군 묵천협동농장을 비롯한 여러 농장들에 가서 볼수 있었는데 국가에 농업현물세를 바치고 농촌기본건설비와 뜨락또르작업료, 비료값을 내고 빚도 물며 종자와 공동축적자금 같은것들을 제하고나면 어린이들에게 옷을 해입힐 형편이 못되는것같다, 농민들이 일을 힘들게 하여 알곡도 많이 생산하고 돈도 적지 않게 벌지만 이것저것 제하는것이 많기때문에 실지 손에 쥐는 현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빨리 농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여 로동자들의 생활수준에 도달하게 하기 위하여서 농촌에 대한 국가적방조와 지원을 강화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체없이 공업에서 번 자금을 농촌에 더 돌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려 한다. … 이와 같이 말씀하시였습니다.

이제부터 경애하는 수상동지께서 우리 농민들에게 베풀어주신 은덕에 대하여 하나하나 말하겠습니다.

수상동지께서는 먼저 농업현물세제를 페지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생활이 어려운 농장부터 순차적으로 3년동안에 농업현물세를 없애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일군들이 협동농장들에 나가서 구체적으로 따져본 다음 농업현물세를 어느 농장은 어느 해에 면제해준다는것을 농장별로 정확히 규정하는것입니다. 순차를 정하는데서 관료주의적으로 책상머리에 앉아 주먹치기로 써놓는식으로 하여서는 안된다고 수상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 도에서는 군마다 소조를 무어 편향이 없도록 하려고 합니다.

수상동지께서는 다음으로 농촌기본건설을 국가자금으로 하여준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농업생산에 필요한 관개시설, 탈곡장, 종자창고, 과일창고, 축사, 건조장, 전기화에 필요한 시설들, 문화주택과 학교건설을 비롯한 모든 기본건설과 양수기, 탈곡기, 가마니짜는기계, 집짐승먹이분쇄기와 같은 기계설비들을 사는데 드는 비용을 다 국가가 부담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국가에 지고있는 빚을 면제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면제해줄 항목은 농촌기본건설비, 대여받은 식량값과 비료값 같은것들입니다.

수상동지께서는 농촌학생들과 어린이들의 옷문제를 해결하며 농민들에게 작업복을 만들어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한해에 천을 2억m이상 생산하고있는데 왜 농촌에 겨울옷을 입지 못한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적지 않게 있는가? 첫째로 농민들의 생활수준이 아직 낮고 국가에 진 빚이 많은데 있으며 둘째로 중앙과 지방의 지도일군들이 농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없고 상업일군들이 일을 잘하지 못한데 있다고 하시면서 학생들과 어린이들의 옷은 군당위원장과 군인민위원장들이 책임지고 군에서 해결하여야 한다, 농장원들가운데서 돈이 없어서 옷값을 다 물수 없거나 아이들이 많은 집에는 옷값을 눅게 해서라도 농장원들이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다 사입히게 하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수상동지께서는 농민들에게 솜옷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먼저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입힐 겨울옷을 만들고 어른들의 솜옷은 좀 참았다가 다음해에 만들도록 하자, 전번 당중앙위원회 부장회의에서는 다음해에 솜저고리 100만벌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공급할데 대하여 토의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

리규성이는 생신날에 수령님의 저택을 찾아갔을 때 그이께서 농민들에게 국가가 지나친 부담을 주고있다고 심려하시며 농민들을 동정하시던 모습이 눈에 떠올라 눈굽이 화끈해졌다.

도당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다음 경애하는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토론들이 있었다.

먼저 도농촌경리위원장이 명년도에 도가 받아안은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기 위하여 정당수확고를 높이며 논면적을 확장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을 수행할 결의를 다졌다.

다음으로 선도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의 토론이 있었다.

그의 격동적인 토론은 듣는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였다. 이어 군당위원장, 군경영위원장, 리당위원장, 관리위원장들이 련속 연탁에 나가 연설을 하였다.

그들은 흥분으로 달아오른 심정을 억제 못하며 열변을 토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풍요한 가을에나 언제나 농촌의 포전길을 걸으시며 우리 농민들을 찾아주시고 농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보시며 한없는 사랑과 은덕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수령님은 우리 농업근로자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김일성동지께 깊이 머리숙여 인사를 드린다. 더 많은 알곡생산으로 이 은혜에 보답하겠다. …

토론자들이 계속 연단에 나오기때문에 회의가 길어졌으나 피창린도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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