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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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안에는 엄숙한 고요가 깃들어있었다. 창문들에 묵직한 창가림천들이 빈틈없이 드리워져있어 해빛은 더 말할것 없고 바람소리도, 나무들이 설레임소리도, 그 어떤 잡음도 새여들지 않았다.
방열기에서 증기 흐르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린다. 밖은 2월의 추위가 맴돌고있었지만 방안은 훈훈했다.
그 의견들이란 주로 이 로작이 주옥같은 명문장들로 이루어져있지만 너무나도 평이하고 겸손하게 서술한 대목들이 있다는것이였다.
일부 사람들은 이 로작이 우리 나라는 더 말할것 없고 세계적으로 농촌문제해결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심오하게 천명한 고전적문헌인데 제목에서 《우리 나라》를 빼고 그냥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로 하자는 의견도 제기하였다.
《모든 당과 모든 나라에 다 그대로 들어맞는 그런 처방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일부 큰 나라 당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저들의 립장과 방식을 내리먹이는것을 받아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주의농촌건설과정에서 얻은 진리, 경험과 교훈을 내놓으면 그것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에 참고로 될것이다, 이것이 세계혁명에 기여하는것이며 국제주의입니다.》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은 농민문제, 농업문제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이 문제의 해결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 특히 레닌은 농민문제를 혁명의 기본적인 전략적문제로 내세웠으며 농촌문제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의 가장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인정하였다.》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다음에도 농촌문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농민은 로동계급의 믿음직한 동맹자이며 사회주의건설의 강력한 력량이다. 로동계급의 령도밑에 로농동맹을 부단히 강화하여야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을 힘있게 추진시킬수 있다.
농업은 공업과 함께 인민경제의 2대부문의 하나이며 그것은 주민들에게 식량을 보장하고 경공업에 원료를 공급한다. 공업을 발전시키고 그 지도적역할을 부단히 높이는 동시에 농촌경리를 공업의 발전에 따라세워야만 전체 인민경제의 빠른 발전을 바랄수 있으며 인민생활의 체계적인 향상을 보장할수 있다.
농민문제, 농업문제는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 로동계급과 농민간의 계급적차이를 없애야만 종국적으로 해결된다.》
대기하고있던 서기가 소리나지 않게 사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타자에 넘기시오.》
어느덧 22시가 지났다.
회의는 래일 오전에 평양대극장에서 시작한다. 김만금농업위원회
오후회의에
오후회의 첫 토론을 벽성군농기계작업소 뜨락또르중대장인 처녀운전수가 했다.
《뜨락또르운전수를 언제 시작했소?》
토론이 끝나자
《1959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처녀뜨락또르중대장은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던 그 기백으로 대답을 드리였다.
《그만하면 오래했소. 운전수들이 벌판에서 춥지 않소?》
《춥지 않습니다.》
《왜 춥지 않겠소. 나는 차를 타고다니다가 세우고 운전수들과 이야기하고싶어도 운전수들은 추워하는데 수상은 뜨뜻한 차를 타고다닌다고 할것같아서 차를 세우지 못했소.》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애로가 있으면 제기하오.》
《작업복을 인민군대 땅크병식으로 해주면 좋겠습니다.》
처녀는 뜨락또르운전수답게 씨원씨원했다.
《경공업상동무 왔습니까?》
경공업상이 앞줄에서 일어섰다.
《경공업성에서 책임지고 겨울작업복, 솜모자, 솜신, 장갑을 해결해주시오.》
《알았습니다.》
《기양뜨락또르공장 기사장동무 왔소?》
회의장에서 기사장이 일어섰다.
《뜨락또르는 자동차처럼 하기 곤난하지만 춥지 않게 해줍시다.》
다음은 순안농기계작업소 중대장 최동익이 연단에 나섰다.
최동익운전수는 어느해 봄날 영광스럽게도
그는 포전정리와 새땅을 개간하는 전투를 집단의 힘으로 매해 진행하여 수십정보의 논과 밭을 확장한데 대하여 그리고 중대의 뜨락또르대수가 12대, 운전수들은 24명으로 늘어난 큰 집단을 이끌어 기술학습과 기술전습을 어떻게 하여 기술기능이 아직 어린 운전수들의 수준을 높이였으며 뜨락또르작업이 어려워 대오를 리탈하여 자기 집으로 가버린 운전수, 안해가 있는 고향에 갔다가는 보름이나 한달씩 돌아오지 않은 운전수, 작업에 성실하지 못하고 건달을 부리며 농민들로부터 대접이나 받으려 하는 운전수, 술마시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하는 운전수들을 어떻게 교양개조했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동한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였다.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대오를 이끌자니 솔선 모든 면에서 앞장서야 했으므로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논두렁에 쓰러지기를 그 몇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속이 뗑하고 어지러울 때 코피를 쏟으면 오히려 시원했던 일… 실로 그의 토론은 커다란 감동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