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서 장

백두산우뢰

(3)

 

그런 일이 있은 후로 투사들의 입에서는 리오송의 별칭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20년가까이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하던 별칭을 본인의 입에서 듣게 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박하고도 충실한 그의 반생이 한꺼번에 어려와 가슴이 후더워나시였다.

《그러니 밤새 수백리길을 달려왔단 말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오른쪽무릎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시였다. 열한살때인가 적들의 총탄에 맞아 뼈가 상한 무릎이다. 해방산에서 수령님의 운전사로 일할 때 날씨만 좀 흐려도 동통때문에 애를 먹는것을 늘 보군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자신을 위하는 투사들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시였으나 아무래도 또 싫은소리를 할수밖에 없으시였다.

《내가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젊은 사람을 놓고 호위요, 뭐요 하는 말을 일체 하지 말아달라고… 평양에서는 김일동지나 최현동지 같은분들이 자꾸 그래서 애를 먹는데 오송동지까지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여느때같으면 그이의 이런 질책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딴전이라도 피웠을 리오송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무척 심각한 기색이다.

《최현동지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실은 제 꼭 말씀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습니다.》

리오송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기가 데리고온 군인들을 손짓해 불렀다. 눈치빠른 호위병들이 제꺽 달려와 리오송의 지시를 주의깊게 듣더니 애티나는 중위가 군인 한명과 함께 앞쪽으로 달려가고 나머지 두명은 각각 김철호와 김명화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리오송의 말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도당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은 척후로 나가는 군인들을 따라 급히 앞으로 걸어가고 김철호와 김명화도 약간 걸음을 다우쳤다.

이렇게 앞선 일행과 대여섯걸음쯤 간격이 생기게 되자 리오송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그이께로 돌아섰다.

《저… 제가 말씀드리자고 하는것은…》

말끝을 흐리는 리오송을 주의깊게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팽이를 꾹 눌러세우고 그우에 두손을 얹으시였다.

《혹시 21군단에서 넘어온 해안포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닙니까?》

리오송은 흠칫 놀랐다. 21군단의 해안포들을 넘겨받아 자기네 군단의 갱도들에 은페시키라는 민족보위성의 명령을 받은것이 불과 사흘전인데 그때쯤 평양을 떠나셨을 김정일동지께서 어떻게 벌써 이 사실을 알고계시는가. 리오송은 가슴속에 총알처럼 차곡차곡 재워넣었던 말마디들이 후두둑 튕겨나면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져달아나버리는것 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할말을 잃고 허둥거리는듯한 리오송에게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나도 좀 들었는데… 그 문제에 대한 군단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상급의 명령이니 견해구 뭐구가 있습니까? 더우기 적들의 1차타격으로부터 귀중한 포무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라는데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팽이를 눌러짚으신 두손이 부르르 떨리는것을 가까스로 자제하시였다. 사실 그 포무기로 말하면 바로 얼마전 어버이수령님께서 21군단방어지대와 가까운 어느한 섬에 갱도를 굴설하고 바다쪽으로 썩 내다앉히라고 명령하신 무기들이였다. 올해 1월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당한 적들이 원산항을 공격할수 있다는것을 예측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산방어지대에 배비한 해안포들을 바다기슭에 그냥 앉혀두지 말고 대담하게 전진배치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던것이다. 그러나 민족보위상은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이 교시를 아래에 전달도 하지 않고 섬진지공사도 조직하지 않고있다가 얼마전에 적들이 원산을 폭격하겠다고 하자 왕청같은 해안포대피소동을 벌려놓았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그이께서도 사흘전에야 알게 되시였다.

이것은 명실공히 비겁이고 도피이며 염전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 보다 위험하다고 보신것은 어느한 개인의 존재가 웃천정이 되여 수령님의 뜻을 가리우게 되면 인민군대지휘관들을 모두 눈뜬 소경으로 만들수 있다는 바로 그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끓어오르는 의분을 누르며 리오송에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오송동지가 저에게 꼭 말하자는것은 무엇입니까?》

《저… 아무리 생각해봐야 해안포를 우리 군단에 대피시키는게 잘하는 일같지 않아 그럽니다.》

《잘하는 일같지 않다. …》

리오송의 말끝을 조용히 되뇌이시던 그이께서 재차 물으시였다.

《적들의 1차타격으로부터 귀중한 무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인데도 말입니까?》

그이께서 자신의 마음속을 내비치지 않고 진중하게 물으시자 리오송은 약간 주저하는듯 하면서도 거침없이 대답올렸다.

《지금 적들이 원산을 어쩌겠다고 날뛰는데 맨 1선에 서있어야 할 포들을 뒤로 끌어들이는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국해방전쟁때에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적들의 공격을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쳐물리치셨지 뒤로 물러섰다가 공격하라거나 적들의 1차타격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은페시키라는 명령은 하신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김창봉의 명령이 암만 봐두 수령님의 뜻같지 않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민족보위상의 이름을 거칠게 내뱉는 리오송의 어조에 많은것이 축적되여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언제인가 총정치국의 현영세부장이 자신을 찾아왔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시절도 그래, 친위중대시절도 그래 자신과는 각별한 사이여서 생활은 물론 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까지도 숨김없이 터놓군 하는 인민군대의 젊은 정치일군이였다.

《…이제는 민족보위상의 교만이 도수를 넘어섰습니다. 얼마전에는 47군단의 군인들을 동원해서 자기 고향에 민족보위상의 생가를 꾸리도록 내려먹였는가 하면 중국에 있던 할아버지와 부모들의 묘를 고향에 옮겨다놓고 글쎄 묘비에다가 신라 경순왕의 37대후손이라는 글까지 써넣게 했다고 합니다.

리오송부사령관이 보다못해 우리 총정치국에 신소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가의 초보적인 인격마저 상실한 이런 작태를 《교만》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그의 어조에 의혹을 느끼며 말씀하시였다.

《나도 오진우동지한테서 그러루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민족보위상은 군인들을 혹사하고 군수물자를 마구 탕진하여 별장과 객실을 짓는 놀음을 계속 벌리는가 하면 사회전화를 통하여 군사비밀이 루설된다고 하면서 당중앙위원회와 련결된 전화선까지 끊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군사전략적으로 중시하시는 일부 려단을 제멋대로 해산한것을 비롯해서 그의 군벌관료주의적인 행위들을 다 꼽자면 내가 들은것만 하여도 미처 셀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에두름이 없이 직방으로 물으시였다.

《다들 돌아앉아서 이러다 큰일나겠다, 삐뚜로 나가는것 같다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것을 문제시하고 투쟁하겠다는 일군들은 왜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제쳐놓고라도 우선 동무부터 총정치국 부장으로서 응당 민족보위성안에서 나타나는 군벌관료주의적인 행동을 당적으로 제지시키고 교양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현영세는 얼굴을 붉히며 힘겹게 대답했다.

《저… 민족보위상이 오랜 투쟁경력과 공로가 있는 지휘관인데다가 성격이 워낙 거칠다보니 비판하기가 조련치 않습니다.》

지난날의 공로… 거치른 성격…

김정일동지께서는 현영세의 말을 속으로 뇌이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혁명가의 진가를 가르는 징표는 과거의 공적이 아니라 현재의 사업과 생활이며 당성을 떠난 성격이란 운전대가 없는 고속자동차와 같은것이다. 지난날의 혁명가가 배신의 추악한 길을 걸은 실례는 얼마든지 있으며 당성을 떠난 《실력》이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실례도 적지 않다. 그 배신, 그 해독이 총을 잡고있는 무장대오안에서 나타날 때, 더우기 무장대오를 이끄는 지휘관에게서 나타날 때 그 위험성은 몇배로 크고 무서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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