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서 장
백두산우뢰
(3)
그런 일이 있은 후로 투사들의 입에서는 리오송의 별칭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20년가까이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하던 별칭을 본인의 입에서 듣게 되신
《그러니 밤새 수백리길을 달려왔단 말입니까?》
《내가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젊은 사람을 놓고 호위요, 뭐요 하는 말을 일체 하지 말아달라고… 평양에서는 김일동지나 최현동지 같은분들이 자꾸 그래서 애를 먹는데 오송동지까지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여느때같으면
《최현동지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실은 제 꼭 말씀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습니다.》
리오송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기가 데리고온 군인들을 손짓해 불렀다. 눈치빠른 호위병들이 제꺽 달려와 리오송의 지시를 주의깊게 듣더니 애티나는
중위가 군인 한명과 함께 앞쪽으로 달려가고 나머지 두명은 각각 김철호와 김명화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리오송의 말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도당책임비서와 인민
이렇게 앞선 일행과 대여섯걸음쯤 간격이 생기게 되자 리오송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저… 제가 말씀드리자고 하는것은…》
말끝을 흐리는 리오송을 주의깊게 바라보시던
《혹시 21군단에서 넘어온 해안포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닙니까?》
리오송은 흠칫 놀랐다. 21군단의 해안포들을 넘겨받아 자기네 군단의 갱도들에 은페시키라는 민족보위성의 명령을 받은것이 불과 사흘전인데
그때쯤 평양을 떠나셨을
《나도 좀 들었는데… 그 문제에 대한 군단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상급의 명령이니 견해구 뭐구가 있습니까? 더우기 적들의 1차타격으로부터 귀중한 포무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라는데야…》
이것은 명실공히 비겁이고 도피이며 염전이였다. 그러나
《그런데 오송동지가 저에게 꼭 말하자는것은 무엇입니까?》
《저… 아무리 생각해봐야 해안포를 우리 군단에 대피시키는게 잘하는 일같지 않아 그럽니다.》
《잘하는 일같지 않다. …》
리오송의 말끝을 조용히 되뇌이시던
《적들의 1차타격으로부터 귀중한 무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인데도 말입니까?》
《지금 적들이 원산을 어쩌겠다고 날뛰는데 맨 1선에 서있어야 할 포들을 뒤로 끌어들이는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국해방전쟁때에두
《…이제는 민족보위상의 교만이 도수를 넘어섰습니다. 얼마전에는 47군단의 군인들을 동원해서 자기 고향에 〈민족보위상의 생가〉를 꾸리도록 내려먹였는가 하면 중국에 있던 할아버지와 부모들의 묘를 고향에 옮겨다놓고 글쎄 묘비에다가 〈신라 경순왕의 37대후손〉이라는 글까지 써넣게 했다고 합니다.
리오송부
《나도 오진우동지한테서 그러루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민족보위상은 군인들을 혹사하고 군수물자를 마구 탕진하여 별장과 객실을 짓는 놀음을
계속 벌리는가 하면 사회전화를 통하여 군사비밀이 루설된다고 하면서 당중앙위원회와 련결된 전화선까지 끊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들 돌아앉아서 이러다 큰일나겠다, 삐뚜로 나가는것 같다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것을 문제시하고 투쟁하겠다는 일군들은 왜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제쳐놓고라도 우선 동무부터 총정치국 부장으로서 응당 민족보위성안에서 나타나는 군벌관료주의적인 행동을 당적으로 제지시키고 교양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현영세는 얼굴을 붉히며 힘겹게 대답했다.
《저… 민족보위상이 오랜 투쟁경력과 공로가 있는 지휘관인데다가 성격이 워낙 거칠다보니 비판하기가 조련치 않습니다.》
지난날의 공로… 거치른 성격…
혁명가의 진가를 가르는 징표는 과거의 공적이 아니라 현재의 사업과 생활이며 당성을 떠난 성격이란 운전대가 없는 고속자동차와 같은것이다. 지난날의 혁명가가 배신의 추악한 길을 걸은 실례는 얼마든지 있으며 당성을 떠난 《실력》이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실례도 적지 않다. 그 배신, 그 해독이 총을 잡고있는 무장대오안에서 나타날 때, 더우기 무장대오를 이끄는 지휘관에게서 나타날 때 그 위험성은 몇배로 크고 무서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