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1
(2)
저물어가는 1960년대…
바야흐로 다가오는 1970년대…
이 력사의 분
참으로 1960년대는 불같이 타번졌다.
그것은 우리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쎄브》타령을 전후 첫 5개년인민경제발전계획수행으로 두들겨부신 우리 당이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무쇠마치를 틀어쥐고 힘있게 들어선 60년대였다.
이 년대의 첫해에
《오늘 벌써 네번째 회의다. 오늘은 결정을 하게 될는지… 전후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해서 금방 허리를 좀 펴게 됐는데 숱한 자금을 또 국방공업에 밀어넣자고 하기가 정말 힘이 드는구나. 정치위원회 위원들은 다 찬성하는데 오히려 의제를 내놓은 내가 손을 들기 힘들어.》
1962년 12월, 아침마다 당중앙위원회로 출근하시며
그러나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로선은 채택되였고 우리 인민은
그럴수록
땅크와 대포, 쌀과 기름, 살림집과 옷감…
식민지농업국가가 남긴 보잘것없는 유물마저 전쟁의 포화가 깡그리 휩쓸어간 페허우에서 준엄한 정세와 인민들이 요구하는 그 많은것을 한꺼번에 다
만들어내기에는 나라의 자원도, 인력도 제한되여있었고 자금도 엄청나게 모자랐다. 그렇게 모자라는것을
대덕산… 《일당백》구호… 까리브해의 위기와 윁남전쟁…
평양시를 휩쓴 백년래의 큰물속에서 수륙량용차를 타고 수해정형을 료해하시던
빠른 물살같이 흘러가는 추억의 한끝에 《푸에블로》호의 검은 선체가 둥둥 떠오른다.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적위대복을 입고 위장망을 어깨에 걸친 로동자들이 기대곁에 자동보총을 세워놓고 일하던 모습…
그것은 그리 멀리 있었던 일도 아니였다.
적들로부터 사죄문을 받아놓고 80여명의 《푸에블로》호선원들을 공화국의 경외로 추방한것은 불과 20일전의 일이다. 증산과 돌격, 위협과 공세,
공격과 반공격으로 끊임없이 소용돌이친 그 나날에도 언제한번 비관과 동요를 모르시던
그러나 지금은 몹시도 수척하셨다.
《동북에서 반〈민생단〉투쟁을 할 때…》
어느결에 전화를 마치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신
《그때 나를 제일 괴롭힌건 함께 고생하며 싸우던 사람들이 다 〈민생단〉이 되였다는 엄청난 사실 그자체만이 아니였소. 그럼 뭐였는가? 〈혁명〉이 혁명을 타도하는 가슴아픈 희비극이였는가? 제편도 분간 못하는 얼간이들에 대한 분노였는가? 물론 그런것도 있었지. 보다는 좌경의 독물을 마신 인간들의 심장이 얼음처럼 싸늘해지는것을 본것이였소. 생명을 내대고 적구에서 쌀을 구해다가 저들에게 하루 삼시 밥을 해먹여준 친누이같은 작식대원도 누가 〈민생단〉모자만 씌우고나면 생판 처음보는 사람 대하듯이 수족을 묶어내지, 엊그제까지 언 보리밥을 나눠먹으며 피를 나누던 전우도 〈민생단〉모함에만 걸리면 언제 봤더냐 하고 짚더미속에 차던지지. … 사람들을 모두 짐승처럼 만들자고 접어들었단 말이요. 좌익소아병환자들은 아마 그런게 혁명하는 멋이로다 했던 모양인데 인간적인것을 배제한 그 어떤 혁명도 나는 찬성하질 않소. 사람이 사람으로 태여나 사람으로 살기 위해 하는것이 혁명인데 인간들을 모두 그 모양 만들어놓고서야 프로레타리아독재요, 이데올로기요 하는것이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겠는가 말이요? 참, 〈민생단〉소리가 났으니… 김택규의 아들은 지금 어쩌고있소?》
아동단원 김금순의 남동생인 김량남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예, 지금 당중앙위원회에서 문화예술부문을 맡아보고있는데 재능도 있고 열성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김택규는 좋은 사람이고…》
《동만특위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내려와서 〈숙반공작위원회〉를 꽁무니에 달고다니던 그자가 나쁜놈이였소. 최광이한테도 그 패당들이 불을 걸었댔지. 밥 한번 설군걸 의식적인 해독행위라고 허위자백까지 시켜서… 그런걸 화룡유격대 정치위원이 보증을 해서 살려놨는데 제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정치위원의 아들을 이번엔 그 최광이가 내딸구자고 접어들었소.》
《최현동지두 그 문제때문에 격해서 심장발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후회의땐 보이지 않는것 같더니 언제 벌써?》
《최현동지의 부관에게서 들었습니다.》
《물론… 유자녀들도 결함이 있으면 비판하고 교양해야지. 내가 기막힌건 그래도 사람의 운명문젠데 어쩌면 눈섭 한번 까딱 안하구 망탕 내딸구는가
하는거요. 혁명가유자녀들을 몽땅 〈조상뼈다귀 깎아먹는 건달군〉이라고 헐뜯는자들앞에서 왜 날을 못세우는가? 우리가 어떻게 품들여 키운 유자녀들인지
최광이가 모른단 말이요? 난 지금두 해방직후에
격해지신
해방산기슭의 오또기… 차락차락 울리던 짤락돈소리…
진정 어떻게 키워온 사람들인가!
《물론 고지식한 최광이가 딴마음먹고 그런것이야 아니겠지. 그도 군벌관료주의자들한테 어지간히 업히운 모양이요. 하지만 제 수하장병들을 풀대처럼 뚝뚝 꺾어내치는데 총참모장이란 사람이 당에 보고두 안하구 여봐라소리 한번 치지 못하구서야 어떻게 군대를 통솔해내오? 이따위 맹종맹동은 되게 종아릴 쳐야 돼!》
가슴이 답답해나신듯 창턱에 놓인 물주전자를 끄당기시는
열흘가까이 진행된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진행정형을 수록한 회의록이였다.
주동은 누구이고 피동은 누구인가?
의식적인 추종인가, 무의식적인 맹종인가?
단호히 결별해야 할 배신자는 누구이고 끝까지 데리고가야 할 동지는 누구이며 어차피 생겨날 빈자리에는 누구를 들여세울것인가?
군대의 창건자로서,
《과오가 엄중한 사람들은 붙들어앉혀서 공불 시키든 단련을 시키든 해야겠고…》
집무탁우에 놓인 회의록을 손끝으로 무겁게 다독이시던
《이제 곧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내용을 가지고 전군적인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진행하게 되는것만큼 당에서는 이 사업이 편향없이 진행되도록 총정치국을 잘 도와주면서 군벌관료주의자들이 남긴 후과들을 하루빨리 가시기 위한 투쟁에 힘을 넣어야 하겠소. 인민군대에서 정치기관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문제, 군인들의 사상사업문제, 해군문제, 유자녀들 문제… 두루 꼽자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뭐니뭐니해도 사상이 첫째요.》
《이번 회의를 통해서도 다시한번 느꼈지만 사상이란 고정불변한것이 아니거던. 지난날에 잘 싸우던 사람들도 사상단련을 잘하지 않으면 변질되는데 자라나는 새세대들이야 더 말해 뭘하겠소? 이제 얼마 안있으면 빨찌산출신의 지휘관들 대신 젊은 세대가 인민군대의 골간을 이루게 되겠는데 그들에게 우리 바통을 어떻게 넘겨주겠는가? 이것이 중요하오. 때문에 당에서는 혁명가유자녀들을 비롯한 핵심들을 잘 키우고 전군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과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겠소.》
《알았습니다.